제주공항 특수경비원 故 김동희씨
직장 내 괴롭힘 시달리다 바다 투신
유족들 “산업재해 심사에서 두 번 죽어”

故 김동희씨가 생활하던 방에는 그의 영정사진이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8년 12월 11일 제주시 애월읍 가문동 해안가에서 고 김동희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당시 나이 27세였다. 제주해경에 따르면 이듬해 4월 12일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하고 내사를 종결처리 했다.

제주해경은 김씨가 평소 직장동료의 폭언으로 힘들어했던 점,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했던 점, 실종되기 전인 12월 5일 제주시내 한 대형할인매장에서 번개탄과 가스점화기 등을 구입하고, 그 물품이 차량에서 발견된 점 등을 들어 스스로 바다에 투신해 사망에 이른 것으로 결론지었다.

“항상 밝게 웃으며 먼저 인사하던 아이”

김씨의 비운은 제주국제공항에서 특수경비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2016년 5월 14일부터 시작됐다. 당시 김씨는 그의 상급자였던 A씨로부터 입사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2년여 동안 반복된 폭언과 욕설에 시달렸다.

김씨와 함께 근무한 직장동료들은 김씨를 항상 밝게 웃으며 먼저 인사하는 성격으로 평소 직원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김씨가 A씨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사실도 전했다.

김씨는 2018년 10월 3일 직장동료 2명과 함께 A씨로부터의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작성하고 회사에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김씨가 제출한 진정서는 모두 6장으로, 2년여 동안 A씨로부터 받은 피해사실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김씨의 관리자인 조장 B씨는 진술서를 토대로 교대순번을 다른 동료와 조정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동료가 조정을 거부하자 김씨는 A씨와 분리되지 못한 채 A씨와 또다시 마주하며 불편한 근무를 이어가야 했다.

A씨는 당시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 중이었지만 김씨는 이미 몇 달 전 노조를 탈퇴한 상태였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 판정서에 따르면 노조는 김씨의 고발에 A씨를 두둔하기 시작했고, 김씨는 노조의 보복이 두려워 10월 5일부터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아야 했다.

회사와 노조는 김씨와 A씨를 화해하도록 유도했다. 회사 관계자, 노조지회장, 김씨, A씨 등이 참석한 상태에서 진행된 면담에서 오히려 회사와 노조가 A씨를 감싸면서 화해는 실패로 끝이 난다.

길고 긴 공방 끝에 김씨는 12월 1일부터 5일까지 마음을 추스르기로 결정하고 잠시 휴가를 떠난다. 다른 동료들조차 노조의 눈치를 보며 김씨를 따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노조지회장으로부터 단체SNS 메신저에 ‘A씨에게 힘이 돼주겠다’는 취지의 전체 공지글이 게시됐다. 메시지를 확인한 김씨는 그 뒤로 종적을 감췄고, 돌아오지 않았다.

◇산업재해 불승인… 직장내 괴롭힘 인정 안돼

산업재해보상보호법에선 자살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노동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간호업계의 ‘태움(직장 내 괴롭힘)’ 문화를 고발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간호사, 디자인업계의 연장근무로 인한 과로스트레스로 목숨을 끊은 디자이너가 그 예이다.

김동희씨 사망사건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급자인 A씨에게 장기간 욕설 등 괴롭힘, 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상해이다. 특히 회사와 노동조합이 상급자를 두둔한 사실에 충격을 받아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것은 법에서 정하고 있는 산재인정 기준에 충분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는 2020년 1월 15일 유족들에게 불승인을 통보했다. 그 이유는 고인의 극단적 선택이 업무보다는 개인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단 관계자는 “스트레스 요인이 업무보다는 상급자와의 개인적 관계가 더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며 “자살의 유발요인이 상급자와의 폭언보다는 노동조합이나 사업장의 행위에 대한 분노 등인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김동희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현재 산업재해 재심사 청구를 담당하고 있는 김혜선 노무사는 ‘논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는 판정’이라고 비판했다.

◇재심사  청구, “유족들 두 번 죽이는 일”

유족과 민주노총제주본부는 3월 13일 오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 승인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재심사 청구서를 공단에 제출했다.

이들은 이날 “근로복지공단은 해당 사건에 대한 원처분기관으로서 판정의 오류를 진정하라”면서 “해당사건을 다루게 될 재심사위원회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김씨의 산업재해를 승인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제출한 재심사 청구서는 원처분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을 거쳐 고용노동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로 전달된다.

김씨의 아버지 김만범씨는 “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서를 받고 읽어본 결과 ‘판정위는 우리 아들을 두 번 죽이는구나’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그러한 결정이 내려졌다는 게 참 답답하기만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본사 운영팀장은 2018년 11월 13일 동희와 면담 후 십여일 지나 간부와의 면담에서 ‘동희는 순하고 착한 애인 것 같다’, ‘그간의 오해가 풀렸다’, ‘가해자가 잘못한 것 같다’고 분명히 인정했지만, 회사에서 내민 서류는 이와 달랐다”며 “진실이 밝혀지고 부디 재심에서는 자료를 보다 깊고 폭넓게 살펴 우리 아들의 영혼이 더 이상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김혜선 노무사는 “재심사 이전에 다른 노무사가 산업재해 승인 신청을 맡았지만, 그 분이 누락하거나 잘못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며 “오히려 그분이 제출한 서류는 누가 보더라도 당연히 인정돼야 했던 것인데 판정결과가 그렇지 못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그러면서 “직장내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은 것에는 근로복지공단의 업무과실과 진술오류 등 몇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살기 위해 친한 척 할 수밖에 없었다’는 김씨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친분이 두터웠다는 A씨의 주장을 공단은 들어줬다”며 “이러한 오류들을 재차 주장해 재심사위원회가 다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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