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소멸위기 언어’로 지정된 지 10년 흘러
방언을 너머 제주 문화와 제주인의 정체성 상징
국어문화원 “연구ㆍ교육 활성화 될 필요 있어”

2019 제주어 말하기 대회 시상식 (출처=헤드라인제주, 위). 국어문화원에서 발간한 제주어 도서들 (아래).

“혼저 옵서. 제주어로 말 호난 무신 거옌 고람 신디 몰르쿠게? 게메 마씀, 귀눈이 왁왁하우다. 경해도 고만히 생각호멍 들으민 조금씩 알아집니다.”

(어서 오세요. 제주어로 말하니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지요? 그래도 가만히 생각하며 들으면 조금씩 알게 됩니다) 
고재환, < 제주어 나들이 中>

제주어가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2010년 제주어를 소멸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심각한 소멸위기의 언어’로 올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주어는 여전히 노령인구를 중심으로 부분적이고 드물게 사용된다. 제주어를 옛 녹음 자료와 문헌으로만 마주할 날이 그리 멀지 않다.

◇ ‘제주 방언’과 ‘제주어

제주어는 제주말, 제주 방언, 제주도 사투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 중 ‘제주어’는 석주명의 <제주도방언집>에서 처음 사용돼 1995년 편찬된 <제주어 사전> 이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07년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제정해 ‘제주어’라는 용어에 공식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이 조례는 제주어를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데 쓰는 전례적 언어’로 정의했다.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언어의 관점에서 ‘심각한 소멸위기의 언어’로 봤다. ‘제주어’를 방언이 아닌 언어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제주대학교 권미소 국어문화원(원장 배영환) 특별연구원은 “우리가 ‘제주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제주어를 한국어의 한 변종 수준을 넘어서는 하나의 독립된 언어의 수준으로 보려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표준어와 차별화되는 제주어의 독특함과 제주도민이 제주어에 대해 가지는 주체적인 시각을 반영했다는 의미에서 ‘제주어’라는 용어가 활발히 쓰이는 듯하다”고 말했다.

‘제주어’라는 용어의 사용은 ‘방언’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내고 그 위상을 높이는데 의의를 둔 것이다.

◇ 제주어의 연구적 가치

국어학자들은 일찍이 제주어의 학문적 가치에 주목했다. 강정희 박사는 자신의 저서 <제주 방언 연구>에서 “(제주어에서의) 많은 고어의 잔존형들은 국어사연구는 물론 이 방언의 통시론적 연구까지 용이하게 해 준다”며 제주어의 학문적 가치를 강조했다.

제주어는 표준어와 다른 지역 방언에서는 일찍이 사라진 중세국어의 흔적을 많이 품고 있다. ‘ㅁㆍㄹ(馬)’, ‘말(語)’과 같이 18세기 이후 ‘아’ 발음으로 대체된 아래아(ㆍ) 발음의 보전과 더불어 옛 문헌에 나오는 어두자음군들이 거센소리로 나타나는 등의 특성 때문에 매우 중요한 국어사 연구자료로 활용된다.

제주어는 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제주 지역은 제주어라는 언어 변이형을 공유하고 있는 언어 공동체다. 언어 공동체는 언어를 통해 집단 정체성과 문화를 공유한다. 권미소 특별연구원은 제주어가 ‘제주의 문화와 제주인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핵심적인 도구’임을 강조했다.

그는 “제주어는 제주인의 정체성을 알려 주는 징표일 뿐만 아니라 제주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제주어 보존을 위한 노력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가 지정된 이후 제주어 보존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19년도 ‘제주 역사문화 정체성 창달 사업’의 일환으로 제주어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사업으로 △제주학연구센터 독립 운영 △계층별 제주어 교육 △제주어 홍보사업 △제주어 종합상담실 운영 등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어대사전’ 편찬사업 또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총 20억원을 투입해 이전에 발간된 제주어 사전의 자료를 수정, 보완하고 사용예시를 추가해 4만 개 이상의 어휘를 ‘제주어대사전’에 수록한다.

제주대학교도 제주어 보존에 힘쓰고 있다.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은 올해 전 도민을 대상으로 한 ‘제주어에 대한 인식과 사용 실태 조사’를 펼칠 계획이라 밝혔다.

국어문화원 측은 “소멸 위기에 처한 제주어에 대한 인식과 사용 실태를 파악해 제주어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계획 수립의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국어문화원은 제주어 보존을 목적으로 해마다 ‘제주어 구술 총서’를 발간하고 도내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주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권미소 특별연구원은 “유네스코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현재의 상태가 지속될 경우 제주어는 조만간 사라질 수 있다”며 “제주어 진흥을 위해 제주어 연구·교육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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