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시간 (b.read), 김민식

우리가 우리의 주변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항상 접하고, 항상 만지고, 항상 느끼고…. 그러나 그 존재에 대해 가슴 시리도록 사고(思考)해본 적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특별한 기회에 그 존재가 없을 때에서야 비로서 그 가치를 다시금 인식하게 되고 나의 주변에 있었던 그 존재에 의해 나의 삶이 영유(領有)될 수 있었음을 깨닫고 탄식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인간 생명의 시간보다 더 오래동안 이 지구상에 존재해 오던 나무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에게 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참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나라 정부의 시책이 나와 나무를 이어주는 출발선이 되어 내 삶에 나무는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은 비공휴일이 되어 그 의미가 점점 잊혀지고 있으나, 우리나라 국토의 색을 푸르게 바꾸어 온 개발도상국 시절의 추억을 장식하던 식목일이 바로 나의 생일이다. 항상 식목일이 되면 쉬는 날이라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 하기가 쉽지 않아서 아쉽던, 그러나 나에게는 석가모니나 예수님의 탄생일처럼 나의 탄생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축하해주는 날로 착각하는 기쁨을 느끼게 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해주었다.

단순히 식목일에 태어나서 나무와의 인연을 언급하기보다 그냥 나무가 항상 내 주변에 있었다. 그것도 손이 닿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나 나무를 잘 몰랐다. 심지어 그냥 봄이 되면 나에게는 삼나무 꽃가루 때문에 심한 알러지를 일으키는 귀찮은 존재라고까지 여겼다. 이 <나무의 시간>이라는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우리나라 수출의 주역으로 한국 역동기의 해외무역을 담당하던 종합상사의 상사맨으로 시작하여 40년 가까이 합판제품을 수출하고 목재를 수입해오던 저자 김민식씨의 특이한 경력을 뒤로하고도 나무에 대해서는 국내 1인자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나무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총 막라된 한 권이 책이 바로 <나무의 시간>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은 영국 앨리자베스여왕이 타는 6두마차 ‘스테이트 코치 브리타니아’의 내장재로 뉴턴의 사과나무, 셰익스피어의 뽕나무, 범선 커티사크의 목재 일부, 스콧의 남극탐험 썰매 목재의 일부 등 영국의 역사를 함축한 목재들을 사용했다는 비화로 시작한다. 북반구를 대표하는 닥터지바고, 안나카레리나, 부활 등 소설속의 자작나무를 비롯하여, 레바논의 국기에 그려있는 삼나무는 레바논을 대표하고 그 나무로 솔로몬왕이 예루살렘 궁전을 지었으며, 이집트의 나일강에도 그 나무로 배를 만들어 곡물을 운반했고 페니키아의 갤리선의 주재료로 사용되어 로마를 위협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영국내의 참나무, 호두나무, 가문비나무를 소진 시켰고 결국 목재 자원을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 신대륙으로 눈을 돌리는 식민지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원산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티크, 마호가니, 로즈우드, 흑단과 같은 최고급 목재로 만든 가구와 갑판, 심지어 마루바닥까지 유럽의 교회, 요트, 미술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가로수는 나폴레옹이 병사들의 휴식을 위해 처음 심게 했으며 그러한 가로수는 피사로, 반고호, 클램트, 뭉크의 그림속에 묘사되고 있다. 또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가 동백아가씨란 의미인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제 2장에서는 나무의 실용적 이용에 대해 언급하여 벤츠,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고급차 내장재로 로즈우드, 티크, 제브라우드, 호두나무, 참나무, 단풍나무를 사용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깁슨 기타는 마호가니,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같은 유명 현악기는 가문비나무, 프랑스의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와 그 운반상자에는 오동나무가 쓰이는 이유를 열거하고 있으며, 3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소나무, 잣나무 느티나무 등 역사를 장식했던 목재 이야기를 펼치고, 다시 4장에서는 인간과 나무 이야기를 중심으로 저자의 지식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끝은 목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나무는 무엇일까?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나무가 없는 나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에 대한 감사함도 되내여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여러분도 나무와의 인연을 다시금 되새겨 보는 시간으로 이 책 나무에 올라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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