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건
정치외교학과 4

졸업을 눈앞에 두니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열심히 살았을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매일같이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지만 나 또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했다. 각종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특별했고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미래를 설계하기도, 자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각자 꿈과 목표를 달려가면서 몇몇 교류는 조금씩 끊기기 시작했고 그 자리는 다시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누군가의 의도가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만남과 이별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의 곁을 지키는 동료가 있었다. 술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과 나를 이어주던 매개체는 술이었다. 술자리에서 타인과 술잔을 기울이며 기쁨을 나누기도, 슬픔을 덮기도 했다. 술 친구는 달랐지만 술은 항상 자리를 지켰다. 

2011년 취업포털 커리어가 대학생 350명에게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66.3%의 학생들이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를 위해서’ 마신다고 응답했다. 

많은 학생들이 술의 힘을 빌려 관계를 발전시켰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거 나는 유주무량(唯酒無量)이라 불릴 정도로 주량이 셌다. 하지만 좋아해서 마시지는 않았다.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면 ‘진솔하다, 용기를 얻는다’의 효과에 큰 매력을 느꼈지, 그 맛에는 미온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과의 진솔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위해 술의 힘을 빌렸다. 

술을 마시면 용기가 생겼다. 기쁨, 슬픔, 섭섭함 등의 감정들은 취중상태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또한 도저히 맨정신에서는 할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이 날개를 달고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심도 깊은 대화를 위해서는 술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나에게 술은 진솔함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수불가결한 도구가 돼버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얘기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진정성 있게 말하지 못하는 술의 노예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자신의 감정을 얘기한다. 하지만 더 이상 술의 뒤에 숨어 자신을 표현하지 말자. 술을 마시지 않고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자. 

희로애락을 함께 한 술과 우리의 관계, 주체적인 나를 위해서도 이제 조금은 헐거워져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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