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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만들어낸 제주의 역사와 문화제주국립박물관, ‘바람 고백’ 특별 전시 개최
희귀한 기상 기록 자료와 유물 만날 수 있어
제주와 바람 주제로 10여개의 작품 전시
바람을 주제로한 작품들(위). 영등굿에 사용된 띠배(아래).

샛보름, 하늬보름, 건들마…. 제주에는 유독 ‘바람’을 칭하는 단어가 많다. 제주는 지형적 특성상 일년 내내 바람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반영하듯 제주에는 바람을 지칭하는 단어만 40여 개에 이른다. 이누이트족의 언어에는 ‘눈(雪)’,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모래’와 관련된 어휘가 많다. 바람을 지칭하는 다양한 제주어는 바람이 제주인의 삶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태풍 고백’ 기획전시가 5월 12일부터 7월 5일까지 국립제주박물관 주최로 열리고 있다. 때로는 온화한 모습으로 때로는 거대한 자연재해의 모습으로 제주와 함께해온 ‘바람’과 ‘태풍’의 모습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태풍의 길목 제주

제주에는 하늘의 신 천지왕과 그의 아들 대별왕·소별왕이 해와 달, 추위와 더위를 조절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일 년 내내 바람이 끊이지 않는다. 여름과 가을에는 태풍 피해가 빈번해 집과 다리가 무너지고 논밭이 물에 잠기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조선 후기 제주읍성도를 보면 홍수때 마다 읍성의 남수구와 북수구가 무너져 내려 수차례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제주의 태풍은 우연한 기회와 보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바닷길을 통해 주변나라와 교류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으로 침몰하거나 표류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기록들은 과거를 들여다 보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하멜 표류기〉,〈지영록〉과 난파된 원나라 무역선인 신안선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태풍이 가져다준 과거의 기록을 그대로 간직한 채 전시관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태풍의 길목에 위치한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태풍을 맞이한다. 1923년도 제주 측후소가 설립된 이래로 제주는 태풍예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장 먼저 태풍을 관측해 태풍의 이동 경로와 강도와 같은 기상정보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주 기상 관측의 역사는 제주측후소 시절 기상연보와 제주 지역 신문 기상관련 자료철에 그대로 담겨 있다.

◇바람이 만든 제주의 문화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바람을 “땅덩어리가 뿜어내는 숨결”로 표현했다. “바람은 일어나지 않을 때는 조용하지만 한번 일어나면 온갖 구멍이 소리를 질러대고 바람이 멈추면 모두 고요해진다”며 바람의 속성을 말했다.

옛 제주 사람들은 이러한 바람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붕을 낮추고 돌담과 올레를 만들어 거센 태풍과 비바람을 받아들이며 태풍과 바람을 지혜롭게 받아들였다. 둥글고 나지막한 지붕, 바둑판처럼 촘촘히 얽은 새끼줄, 가장자리를 통나무로 누르는 건축 방식은 바람의 저항을 낮추고 강풍에 지붕이 파손되는 것을 막았다. 

굴곡진 올레는 강한 바람이 집안으로 직접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고 돌담은 돌 사이사이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쌓아져 바람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탐라순력도 귤림풍악〉 전시자료에서는 과원 경계에 돌담을 쌓고 대나무를 조밀하게 심어 방풍림을 조성한 모습도 담고 있다.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과 태풍은 제주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풍요를 가져다 주는 존재였다. 그들은 음력 2월에 불어오는 봄바람은 풍작과 풍어를 가져오는 고마운 대상이라 믿었다. 제주 사람들은 바람의 신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의례를 행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풍운뇌우제(風雲雷雨祭)와 영등굿이다. 풍운뇌우제는 기후를 다스리는 신에게 지내는 의례로, 국가에서 주간했으며 민간에서는 영등굿을 행했다.

영등굿은 용왕과 바람의 여신 영등할망에게 지내는 굿이다. 이러한 의례를 〈신증동국여지슬람 東國輿地勝覽〉과 〈탐라지〉 등에는 ‘약마회’라고 했다. 

영등굿은 형등환영제와 영등송별제로 나눠서 진행된다. 영등환영제에는 신령을 부르는 의례, 풍어에 대한 기원, 조상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3개의 연희 등이 포함돼 있다. 영등환영제가 시작되고 2주 뒤 영등송별제가 열린다. 이때는 용왕을 맞아들이는 의례인 용왕맞이를 하며, 수수의 씨를 가지고 점(點)을 치는 씨점을 치고 마을 노인들은 짚으로 만든 띠배를 바다로 내보내는 행사를 치른다. 

전시관에는 영등굿에 사용했던 띠배와 사진기록, 〈탐라지〉가 전시돼 영등굿의 모습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바람이 만든 예술

제주의 바람과 태풍이 예술로 다시 태어났다. 화가들은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굴복하지 않는 섬과 그 섬에 담긴 것들을 화폭으로 담아냈다. 유리 너머에 있는 10개의 화폭은 바람을 품고 사는 섬과 그 섬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각 작품들은 제주 사람으로 태어나 바람과 함께하는 제주의 모습을 담은 화백들의 평범하지만 각별한 세상을 보여준다.

먹으로 태풍의 모습을 그린 강요배 화백은 “자신은 그저 관찰자이며 가슴과 머리 소게 저장해두었던 장면에 어떤 느낌이 들 때 붓을 든다”고 한다. 그가 그린 태풍과 바람의 모습은 진한 몸국처럼 그림에 우려져 그 깊이를 더한다. 빛과 바람의 화가 변시지도 제주 바람의 길을 묵묵히 황토빛과 먹색으로 그려내 제주를 세계에 알렸다. 

파괴와 생명력을 동시에 간직한 바람은 수많은 현대 작가들에게 다가와 다양한 이야기들을 속삭였을 것이다. ‘태풍 고백’은 바람이 만든 제주 문화 그리고 바람을 담아낸 화폭 너머에서 바람의 고백에 귀를 귀를 귀울이게 한다.

이진이 기자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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