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유해야생동물 지정 후 7년간 7000여 마리 사냥
비과학적 방식으로 특정종 멸종 담보 비판ㆍ소모적 논쟁

제주의 상징 노루가 2013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한 이후 7000마리 이상 살상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때 대대적인 먹이주기 운동까지 펼치며 보호했던 제주 노루가 이젠 대량 살상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제주도가 2013년 처음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한 뒤 지금까지 7000마리가 넘는 노루를 살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운동 후 증가 농작물 피해

제주 노루는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도 그 화석뼈가 발견될 만큼 제주의 터줏대감격인 동물이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노루는 오랫동안 제주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면서 식량과 가죽을 제공해왔다. 4·3 당시 입산금지령으로 개체수가 증가한 노루는 1954년 9월 입산이 허용된 이후 밀렵이 성행해 위기를 맞기도 했다. 개사냥과 올가미를 이용해 겨울철 한 마을에서 60~70여 마리의 노루를 포획할 정도였다.

그 후 개체수가 급감하자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1987년부터 노루를 제주의 상징 동물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후 민·관·군 합동으로 제주 전역에서 보호운동이 펼쳐져 올가미를 수거하고 겨울철에는 제주도 곳곳에서 먹이주기 운동이 진행됐다.

 보호운동 이후 10여 년 동안 노루의 개체수가 계속 증가하자 사람과 충돌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고 교통사고 피해를 주고 받게 된 것이다. 그러자 농가에서는 경작지에 개를 키우고, 꽹과리로 소음을 내거나 허수아비를 세우는 등 노루 퇴치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제주도는 노루 출입 방지 그물망을 지원하고, 피해 보상에도 나섰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찾지 못했다.

◇제주도의회 유해야생동물 지정

피해가 계속되자 제주도의회는 2012년 10월 ‘제주특별자치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조례는 1조(목적)에 ‘생물의 다양성 증진과 생태계 균형 등을 유지하고, 인간과 야생생물이 공존하는 건전한 자연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조례는 유해야생동물 관리 규정을 담아 총기류를 이용해 노루를 살상할 수 있는 길도 마련했다. 도의회는 2013년 7월 1일부터 2016년 6월 30일까지 3년간 노루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다. 이때부터 제주 전역에서 노루 살상이 시작됐다.

당시 조례안이 발의되자 제주환경운동연합과 제주도수의사회 등 6개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노루의 유해동물 지정 추진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제주도와 도의회 등 관계당국이 노루의 농작물 피해 예방과 피해보상을 위한 예산 및 정책 지원에는 인색하면서도 야생동물 관리방안 중 가장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고 비판했다. 도의회가 유해동물 지정 근거로 제시한 개체수의 급증과 서식밀도 포화 문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노루 생태연구와 연도별 개체수 변화상 등의 조사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상포획 후 ‘식용’ 소비

포획이 시작되자 제주도는 1년 만인 2014년 9월 ‘노루 포획 시행 후 농작물 피해 확 줄어들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제도의 성과를 홍보했다. 제도 시행 후 1년간 노루에 의한 농작물 피해 면적이 28%(95㏊→68㏊) 감소하고, 농작물 피해에 따른 보상금액도 21%(4억8500만원→3억8200만원) 줄었다는 것이다.

2016년 2월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농작물 피해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노루 포획을 위해 설정한 한시적 기간의 종료일이 다가옴에 따라 이를 연장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어 제주도와 도의회는 2016년 5월 노루의 유해야생동물 지정을 연장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만들어 노루 포획 기간을 2019년 6월 30일까지 3년간 연장했다.

살상포획이 시작된 첫해에 제주 노루는 모두 1285마리가 포획됐다. 이어 2014년 1675마리, 2015년 1637마리, 2016년 974마리, 2017년 691마리, 2018년 770마리가 포획됐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로드킬에 의해 희생된 2757마리를 포함하면 모두 7032마리가 희생됐다. 7월부터 노루 유해야생동물 지정이 해제된 2019년에는 6월까지 130마리가 포획됐다.

포획된 노루들은 대부분 해당 농가와 대리포획 단체로 지정된 야생생물관리협회에 의해 식용으로 소비됐으며, 일부는 매장됐다. 제주도는 이밖에 생포한 노루들을 자연생태공원에 방사하고 있지만 산채로 잡는 일이 쉽지 않아 2017년 20마리, 2018년 35마리, 2019년 47마리에 불과했다.

◇비과학적 방식으로 멸종 위기 비판

제주도는 최근 노루 개체수가 감소하자 지난 4월 5일 ‘적정 개체수를 회복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아 포획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체수가 늘면 언제든지 다시 살상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제주도가 노루 포획 금지 방침을 밝히기 일주일 전인 지난 3월 29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는 노루 개체수 모니터링 결과가 담긴 ‘제19호 조사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제주도가 포획 금지 결정을 내리는 데 참고자료로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 보고서는 2019년 노루 개체수를 4500여 마리로 기술해 제주도가 발표한 4400여 마리와 차이를 보였다. 그동안 제주도가 발표해온 노루 개체수는 포획을 위해 부풀려졌거나 부실 조사라는 의혹이 제기돼 신뢰성을 얻지 못했다.

제주도가 밝힌 연간 적정 포획량 산정 방식 역시 비과학적이고, 특정 종의 멸종을 담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노루 적정 개체수 산정을 위한 먹이식물총량 조사가 산림지역에 한정되고 주요 서식지이자 먹이 공급원인 대규모 초지를 누락해 실제 적정 개체수는 훨씬 더 높게 형성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적정 개체수를 절대치로 두고 포획을 감행하는 방식으로 개체수를 조절해 노루를 멸종 위기로 내몰았다고도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 낙선하고 약 5개월 후 제주사람들과 함께 오른 백록담에서 ‘백록(흰노루)’을 목격한 일이 있었다. 조금 과한 털갈이 또는 알비노(백색증) 현상일 수 있지만 훗날 대통령이 된 대권주자와 전설 속의 백록이 만났다는 소문은 과학적 사실과 무관하게 날개를 달고 확산됐다. 하지만 제주는 한라산 ‘장소 마케팅’에 훌륭한 소재인 노루를 죽이느냐 마느냐는 문제로 10년 가까이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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