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하면 사람들은 흔히 무성한 잡목들 사이로 인적이 끊긴 낡고 초라한 건물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밤이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이야기까지 꼬리를 이어 동네 아이들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한다.
하지만 이제 폐교가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해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갈옷 작업장, 청소년 수련 시설, 조형 작업장 등 이용 형태도 다양하다. 현 도내 폐교 중 20여 곳이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문화 공간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찬 바람이 얼마남지 않은 잎사귀들을 떨궈내던 주말 오후, 새로운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신창중과 신도교를 찾아가 봤다.
⊙신창중
☜ '제2회 제주국제 판화제' 전시 작품
한경면 신창리에 위치한 이 곳은 ‘예을문화(대표 전홍식)’가 산양폐교와 더불어 꾸려가는 곳이다. 입구에서 복도를 따라 길게 뻗은 복도로 들어서면 ‘제2회 제주국제 판화제’ 전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인간, 그 속에서 이어지는 관계, 혹은 일상의 순간들이 벽면에 고정돼 있는 듯 하다. 강렬한 색으로 표현되는가 하면, 세심한 터치와 단순화된 표현들로 구성된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낯익은 사물들이 낯설게 다가와 작은 전시 공간들이 각각의 또 다른 세계인 듯한 착각에 빠진다.
☜ 「뭍으로」박싱환 작
제주 작가 11명과 외국 작가 24명의 작품들로 구성된 이 전시회는 오는 2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야외 운동장에서는 ‘개관 기념 조각전’을 볼 수 있다. 하늘과 바람, 나무들과 한데 어우러진 작품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넓은 운동장 둘레를 한 바퀴 돌면 전시 작품들을 하나 하나 감상할 수 있다. 작품들은 하나의 구조물이라기 보다는 마치 자연 속에 자리잡은 커다란 공원의 일부인 듯 하다.
지금은 부산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이 전시가 끝나는 2월 이후에는 제주 중견 작가들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을 초대해 전시를 계속할 예정이다. 전홍식씨는 “통합 문화의 기획은 지역 문화 저변 확보에 도움이 된다”며 “폐교는 공간이 넓어 전시실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 곳은 문화 환경면에서 소외된 지역이라 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이 공간이 이 지역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다.
⊙신도교
☜ 어린이들이 만든 찰흙 작품
‘흙으로 만나는 사람들-산경도예’, 대정읍 신도리에 위치한 이 곳은 도예 작업은 물론 전시와 교육, 판매까지 이뤄지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지난 5월부터 손질을 시작한 이 곳은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황토빛이 인상적이다. 길게 늘어선 교실들은 교육실, 전시 및 판매실, 작업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한 켠에는 차 마시는 공간도 아담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자기 사이로 차 향기가 배어나는 황토빛 공간이 따뜻하다.
긴 복도에는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이 차곡차곡 놓여 있다. 완성을 기다리는 찰흙 작품에서 아이들의 정성스런 작은 손놀림이 그대로 느껴진다. 전통 물레와 탁자들이 자리잡은 교육실에서는 ‘1일 도예 교실’을 열고 있는데, 아동을 비롯한 일반 성인들까지 도예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도자기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 곳은 공방의 성격을 띄고 있어 일반인들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지만 저변 확대를 위해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 ‘가족 교실’을 열고 있다.
☜ '산경도예'에서 만든 전시물
그러나 ‘산경도예’라는 공간이 마련되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사업 설명회까지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주민들이 열렬한 후원자가 되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컵이며, 수저, 받침들은 모두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모양과 빛깔이 소박하면서도 곱다.
현재는 4명이 공방을 꾸려가는 터라 일손이 많이 부족해 함께 배우면서 작업할 사람을 찾고 있다.
김경우씨는 “이 곳이 가까이 있는 분들에게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제주 작가들과 연계해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전통 장작 가마와 도자기 장승을 세우는 것도 그의 작은 바람 중의 하나이다.
공간은 그 안에 어떤 것들이 담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아무리 화려한 외관을 지니고 있어도 사람들의 따뜻한 온정과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 곳의 존재는 무의미해진다.
그 동안 잡목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모습을 감췄던 폐교가 많은 이들의 땀과 애정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차가운 기운이 감돌던 복도에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의 단계라 완벽하거나 화려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모아진다면 이 공간들은 소박하고 따뜻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