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해 솔 철학과 3

필자는 부모와 의절했다. 사촌이나 친척들과는 전부터 왕래가 없었다. 현재 혈연으로 이어진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과거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생활을 계속 할 계획이다. 

그러나 국가 또는 사회는 나를 부정한다. 그들에게 사람은 반드시 ‘가족’이란 집단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족’은 마치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가 있는 화목한 가족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이란 단어가 싫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불행의 종류만큼 가족의 형태도 다양하다. 바람나서 집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하시는 어머니와 투잡을 뛰는 아버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 맡겨진 아이, 싱글 맘과 싱글 대디 그리고 같은 성을 가졌지만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 

이들이 불행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결손 가정’이란 말로 불행하게 만든다. 

필자는 혼자지만 나름 잘 산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서 성적 장학금도 받고 괜찮은 직장에 다닌다. 문제는 그래도 돈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교통비, 식비, 통신비, 병원비. 생존을 위해 드는 돈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한국장학재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국가장학금 대신 학자금대출을 받는다. 부모와 의절하기 전에도 똑같았다. 기형적인 가족을 가진 나에게 한국장학재단의 장학금 지원은 애초 불가능했다. 이유는 ‘가구원 정보’에 있다. 한국장학재단은 모와 부 모두의 공인인증서를 요구한다. 

세상에는 가출 청소년만큼 가출한 부모도 많다. 서류상 가족이지만 이미 가족이 아닌 관계도 있다. 반대로 분명히 가족이지만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공인인증서를 제출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나도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는 평범한 가족을 가지고 싶었다. 다정하신 어머니와 엄격한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중산층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가족은 선택할 수도,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국가와 사회가 말하는 평범한 가족과 다르다고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평범함’이 올바른 것도 아니다. 앞으로도 사회와 국가는 나에게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동일하게 말할 것이다. “나는 혼자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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