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매달린 논문 주제 바꾸며 슬럼프 오기도
차(茶)를 다루면서 자연스레 다례(茶禮)접해
적자 보면서도 행사 열어… 결국 농가 살리는 일

≫ 다른 길, 다른 삶을 묻는다    < 11 > 오은의 티 스페셜리스트ㆍ농학 박사

오은의 박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연구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 이끌려 스무 살 여름방학이 끝나고 연구실에 찾아갔다. 때마침 자리를 얻었다. 학사 졸업 후에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대로는 연구직 시험을 치러도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일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 후 석사, 박사까지 만 13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었고 4~5년을 매달린 논문 주제를 바꿔야 했지만 학교를 떠난 적은 없었다.

박사 논문을 쓰기까지 그간 지난한 시간을 견디고 지난 2월 <Assessment of Artiflcial Pollination Factors Related to Fruit Set, Fruit Quality, and Seed Formation in Yellow-fleshed Kiwifruits>라는 주제로 마침내 오은의(원예학과 07학번)씨는 농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지도교수와 동료들, 그리고 농가들을 만나며 꾸준히 트레이닝을 받은 결실이다. 새 학기부터 그는 제주대학교 박사후연구원으로, 더불어 ‘식물자원ㆍ조경교과논리및논술’ 강사로 학부생들을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오 박사의 주된 연구 분야는 감귤, 키위, 차나무의 육종이다. 학교 실험실에 앉아 연구만 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학교 바깥에서도 공부할 거리를 찾아다녔다.

티 스페셜리스트(tea specialist)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연구 과제 간사를 맡고 제주도 내 녹차 농가를 이곳저곳 찾아다닌 것이 계기였다.

차를 다루면서 다례(茶禮)를 모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스물한 살 때부터 차(茶)를 접하고 공부하고 알아가며 맛을 깨우쳤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고 주변 네트워크도 확장되면서 티 클래스, 티 파티 등 다양한 곳에 불려 다니기도 하고 스스로 수업을 열기도 한다.

최근엔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제주 안에서도 차 마시는 문화코드를 확신시키려고 여러 가지 문화 기획과 시도를 벌여오고 있다. 지난해엔 적자를 감수하면서 티 파티를 열기도 했다. 차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이 결국엔 농가를 살리는 길인 까닭에서다.

▶전공은 선택해서 대학에 진학했는지. 막상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전공은 잘 맞았는지 궁금하다.

연구직에 관심 있어서 원예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신입생이었던 여름 방학에 농업기술원에서 인턴 실습하고 나서 9월에 바로 연구실에 들어왔다. 과수육종연구실인데 과수생리, 육종 등을 다룬다. 주 작물은 감귤, 키위, 차나무다. 원예학 안에서 크게 화훼, 채소, 과수 이 세 가지로 나뉘는데 나는 과수를 선택했다. 당시에도 실험실이 활성화돼 있었고 지도교수인 송관정 교수님을 만나게 돼서 쭉 함께 해오고 있다. 

▶어떤 계기로 대학원에 진학했는지. 대학원 생활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학부 졸업하고 학교에 더 남아있기로 했다. 기관으로 가거나 연구직 공무원이 된다고 해도 아직은 내가 원하는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데다 입사 후에 발령이 나면 거기에 맞춰서 자리 이동하면 전공을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르게 되니까 석사 과정 진학하기 전엔 학교를 옮기는 것도 생각했다. 스무 살 때부터 해왔던 트레이닝 과정도 있고 서울에 가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교수님께서도 그럴 시간이면 박사 과정 때 외국으로 가거나 박사후 과정으로 외국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셨다.

이후 쉬지도 않고 쭉 달려왔다. 만 13년 여기서 지냈는데, 지난해에 출산할 때 한 달 쉰 거 빼고는 쉰 적 없었다. 졸업 준비하고 있어서 쉴 시간이 없었다. 여기는 결국 데이터 입증이 핵심인데 그게 어려웠다. 박사 논문도 초반엔 감귤로 4-5년 끌어오다가 데이터가 안 나와서 키위로 넘어갔다. 슬럼프 때는 신나게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시면서 해소하려고 했다.

박사 논문에 감사의 글을 쓰는데 학문의 길이 굉장히 긴 데 돌아보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에 대한 회의감도 올 때도 있지만 끝을 보고 성취감도 있는 반면에 졸업식 전날엔 회의감, 고독감, 허탈한 감정도 들었다. 대개 지도교수를 뛰어넘어야 박사학위를 준다는 데 그러지는 못하는 거 같다. 그러니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적지 않은 경우에 취업 과정을 좀 더 미루기 위해서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 전공은 그런 이유로 온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연구사 시험을 보려면 석사까지는 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연구소에 간다고 해도 시험만 봐서 통과한 학생들이 업무를 하기가 어렵다.

요즘엔 학사, 석사 연계과정이 잘 돼있어서 5학년이면 석사 졸업한다. 연구실에 그런 후배들도 늘어나고 있다. 석사까지는 할 만한 것 같다.

대학원도 작은 사회인데 연구자로서 자질을 여기서 트레이닝 받는 것이고 연구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까지도 익힐 수 있다.

▶학위 과정에 있으면서 티(tea)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 티 클래스, 티파티 등등.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티 스페셜리스트는 내가 붙인 이름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민간 자격증 중에는 3일 만에 속성으로 취득할 수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 생리나 육종도 했었고 스물한 살 때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청정제주녹차특화작목 산학협력단에서 제주도의 차 농가 70여 곳에서 컨설팅하는 과제의 간사를 8년 이상 했다. 그러면서 차 마시는 방법을 모르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고 호기심도 있어서 그때 차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차인회 제주지부에서 4년 동안 다례 과정을 이수했다. 후에는 중국공인자격증인 품평사와 다예사 자격증을 땄다. 그러고 나니 주변에 차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아졌고 교류도 늘어났다. 한 3년 전에는 프랑스 차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올 때 티파티도 하고 티 클래스도 하는 일에 참여했다. 그런 것들이 바탕이 돼서 제주에서도 차 마시는 문화코드를 자리 잡게 하고 싶었다.

최근에 차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 가서 공부할 시간이면 여기에서 충분히 마실 수도 있고 즐길 수도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싶었다. 지난해엔 적자 보면서도 행사를 치렀다. 교훈도 많았다. 이런 인식들이 결국에는 농가들을 살리는 것이니까.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내고 싶은지.

요즘엔 프로젝트를 맡으면 지역농가를 만나러 다니기도 하고 졸업하고 나서는 학부 과정에서 수업도 하고 있고, 영농조합에서 자문을 요청한 게 있어서 그것도 다니고 있다.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박사후연구원을 충실하게 해내고 싶다. 실적도 그렇고 활동도 그렇고 그게 내 길이다. 아이가 돌이 갓 지났는데 육아보다도 더 여기에 몰두하게 된다. 엄마로서 공부하긴 정말 쉽지 않다. 여기에선 선생님이지만 누군가의 엄마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누구 아내, 누구 엄마보다도 너의 이름 석 자로 살라고 응원해준다. 부모님 덕분에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는 조건이 가능했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건 유튜브로 제주의 좋은 곳을 소개하고 차 마시는 문화도 알리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한 달에 한 번은 좋은 곳에 가서 새소리 바닷소리 물소리 나는 곳에서 연 찻자리를 소리 중심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서양식 티파티를 진행했는데 올해는 중국차와 다예를 시연하는 행사도 열 계획이긴 한데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져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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