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네스코 등재 유산 소개하는 세계유산축전 개최
월정리까지 흐른 용암 흔적 따라 걷는 신규 코스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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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세계유산축전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천장이 무너져 내린 웃산전굴(위). ‘용암의 길’탐방로 입구를 지나는 참가자들(아래).

 

세계유산축전은 국내 유네스크 등재 세계유산을 소개하고 향유하는 전국적인 행사다. 지난 7월 한국의 서원을 시작으로 8월 경상북도, 9월 제주특별자치도로 이어졌다. 2020년 처음 추진하며 공연, 전시는 물론 전문가 동반 워킹투어, 세계유산 교육 등이 결합한 복합 축전 행사다.

제주에서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주제로 9월 4일에서 20일까지 개최됐다.

'불의 숨길’은 거문오름에서 시작한 용암의 흐름을 따라 누구나 걸을 수 있도록 특별 개발된 세계유산 트래킹 코스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공간들을 직접 탐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거문오름에서 월정리 신규 개설 구간까지 약 21km를 3개의 코스로 구성했다. 

첫 번째 코스는 용암 길로, 거문오름에서 대형 동굴인 웃산전굴까지다. 두 번째 코스는 동굴 길로, 용암교에서 만장굴까지다. 세 번째 코스는 돌과 새 생명 길로, 만장굴에서 용암대지가 펼쳐진 월정리 해안까지다.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소수 인원만 출입이 가능하며 사전예약이 필수다. 세계유산 보호를 위해 음식물, 등산스틱, 셀카봉 반입 등이 금지다. 첫 코스인 용암의 길에 다녀왔다. 〈편집자주〉

 

◇용암이 분출한 거문오름에서 천연 에어컨이라 불리는 풍혈까지

숨길 탐방 참가자들이 예약한 시간에 맞춰 제주세계유산센터에 모였다. 안내원에게 인적사항 확인과 방역을 마친 후 파란색 종이 팔찌를 받는다. 참가자임을 확인하는 용도로 탐방로 입구 안내원에게 제시해야 한다. 해설사 포함 총 7명이 팀을 이뤄 서로 간단한 소개 후 출발했다. 통나무와 짚을 엮어 만든 입구를 지나면 구부정하게 자라난 나무가 울창한 숲을 만난다. 현경숙 해설사는 “이곳은 용암 줄기가 흐르면서 지반이 약해져 내려앉은 붕괴도랑이다”며 “식물들이 흙이 아닌 돌을 오랜 시간 쪼개며 자라나기에 곧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는 반쯤 누운 나무를 가리키며 “나무뿌리 단면을 보면 뿌리가 어떻게 나무를 지탱하는지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울퉁불퉁하고 질펀한 숲길을 걷다보면 아트 프로젝트 일환으로 탄생한 예술작품이 곳곳에 보인다. 고승현 작가의 작품 ‘오름의 기억’은 나뭇가지에 끈을 묶어 돌을 공중에 매달았다. 그 아래 돌탑을 쌓아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이승수 작가의 작품 ‘태초’는 줄기 식물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거대한 알을 구현했다. 고사목과 넝쿨줄기 및 현무암을 이용해 만든 알의 형상은 인간 문명 이전 자연의 모태를 나타낸다.

한참 동안 앞서 걷던 해설사가 갑자기 멈춰 서서 무성한 수풀을 가리킨다. 가시딸기 군락지임을 알리는 푯말이 서있다. 그는 “가시딸기로 가득 찼던 곳이지만 지금은 하나도 없다.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인데 기후 변화로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며 “이 뿐만 아니라 요 근래 갑작스런 기상 변화로 그냥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축축했던 주변 공기가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 찬다. 천연 에어컨이라 불리는 ‘풍혈(風穴)’에 도착했다. 바람이 불어 나오는 바위 구멍으로 숨골이라고도 불린다. 틈새가 많은 돌 틈으로 외부 공기가 들어가 땅 속을 돌아다니다 밖으로 나올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정한 온도를 띠기에 여름철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철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빗물을 빨아들여 지하수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풍혈을 배경 삼아 김기대 작가의 작품 ‘환상어’가 허공에 떠있다. 작가가 어릴 적 물웅덩이에서 발견한 신비한 생물을 떠올리며 구현했다. 반짝이는 무지갯빛 연등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바람에 물결처럼 흔들리는 비늘을 보면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떠오른다.


◇동굴이 무너져 형성된 용암협곡에서 용암동굴 웃산전굴까지

탐방로 오른편 낭떠러지에는 깊고 길게 패어 계곡처럼 생긴 지형을 볼 수 있다. 용암동굴 천장이 무너져서 생긴 용암협곡이다. 분화구와 가까울수록 분출한 용암의 양이 일정치 않다. 때문에 용암동굴의 천장이 불안정하게 형성되며 붕괴되기 쉽다. 무너진 동굴이 계곡 형태로 남는다.

현경숙 해설사는 “옛날 여기서 흘러내린 용암으로 선흘곶이라는 커다란 몇 만평 가량 숲이 형성됐다”며 “우리나라 난대림 숲 중 가장 크며 온갖 생활 자재가 보급됐을 만큼 목재가 풍부하다”고 말했다.

이끼 낀 투박한 돌덩이에 나무로 만든 입마개가 씌어있다. 서성봉 작가의 작품 ‘녹색펜스와 입마개’다. 녹색펜스는 궁극적으로 자연과 생명 보호라는 희망을 담고 있지만, 구속의 느낌으로도 다가온다. 작가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기심 혹은 과도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가두거나 또는 훼손하는 문제를 거론한다. 그의 작품은 그동안 자연을 어떻게 대했는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코스 중반을 지나자 하이라이트인 웃산전굴이 나온다. 거문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으로 만들어진 대형동굴이다. 관람을 위해 내려가는 길이 경사지고 험하다. 밧줄을 잡고 몸을 돌린 채 뒷걸음을 천천히 내딛어야 한다. 동굴 벽면에는 용암이 겹겹이 흐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높이와 넓이가 만장굴에 버금갈 만큼 웅장하다. 지금은 대부분의 동굴 구간이 천장이나 벽 붕괴, 바닥 함몰 등으로 무너져 내렸다. 

현경숙 해설사는 “용암이 한꺼번에 흐르지 않고 여러 번 흐르기에 그 흔적과 층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동굴에 흐르는 물과 나무뿌리로 인해 돌들이 쪼개지고 있어 언제 또 다시 붕괴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탐방로 끝자락에 다다르자 평평하고 드넓은 평지가 나온다. ‘너럭 바위’를 뜻하는 빌레라고 불린다. 넓은 용암대지로, 용암 수축 시 형성된 다각형 절리와 용암 표면 팽창으로 생성된 작은 언덕이 관찰 가능하다. 탁 트인 주변을 둘러보면 탐방 시작점인 거문오름과 그 옆에 거친오름, 다랑쇠오름이 있다. 검고 신령스럽다는 뜻을 지닌 거문오름, 어느 곳을 거칠 때 만난다 해서 거친오름, 달이 분화구에 가득 찼다는 의미인 다랑쇠오름. 각 오름 마다 저마다 이름의 유래가 나타난다.

탐방이 계속되며 단단한 암반이 바닥에 서서히 드러난다. 돌 때문에 물이 땅 밑으로 빠질 수 없기에 곳곳에서 웅덩이를 볼 수 있다. 이곳 웅덩이 중 독특한 습지 특성을 지닌 웃산전못이 대표적이다. 용암 위에 물이 고인 형태로 과거 중산간 마을 주민과 가축 식용수로 쓰였다. 지금은 순채, 어리연, 물달개비 등 야생 동식물들의 중요한 서식처다. 잔잔한 연못에는 은색 반원이 군데군데 떠있다. 부지현 작가의 작품 ‘비추고 반사하다’로 수면에 반원이 반사됨으로써 완전한 하나의 원을 이룬다. 자연에 개입하면서 자연을 비추어 내는 이 작품은 공생을 위한 인간과 자연 쌍방의 노력을 상징한다. 탐방로 마지막 출구에 설치된 부스에 도착하며 탐방이 끝났다.

현경숙 해설사는 “처음에는 해설사 참여를 고사했으나 이제와 생각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간 쉽게 공개되지 않던 길이기에 많은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산은 세계적인 보물이다. 기록유산은 한글에서 5ㆍ18까지 13개나 등재될 만큼 많았지만 자연유산은 지금껏 없었다”며 “학술적으로나 가치 면에서 소중한 곳이기에 후세에게 곱게 물려줘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주춤이 귀한 정신을 지켜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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