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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비치는 달 애월(涯月), 그 속에서 신당을 바라보다마을 공동체 뿌리가 된 신당 속 다양한 이야기
제주도에 숨겨져 있는 1만8천 신들의 집이자 고향
가치 품고 있는 제주 설화… 우리가 관심 가져야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우리 신화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

≫ 길 위의 인문학 "신화, 제주의 삶을 만들다"

2020 길 위의 인문학 3회차 강연을 들은 학생들의 단체 사진(위). 가문동 해신당의 모습(아래).

 

중앙도서관(관장 김소미 생명공학부 교수)이 지난 9월 12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2020 길 위의 인문학’ 3회차 프로그램으로 ‘신화의 현장을 가다’ 강연을 열었다.  

강문종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진행한 이번 강연은 중앙디지털도서관 주차장에 집결해 애월읍 하귀리 가문동 해신당. 중엉본향당, 애월해신당 등 제주도 내에 있는 신당을 직접 찾아가 설명을 듣는 답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강연으로 제주 신당에 대해 알아가고  우리 신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바다로 나가기 위해 꼭 찾아야 했던 곳  

버스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가문동 포구다. 바다 경관을 따라 카페와 펜션이 늘어져 있는 이곳에 작은 돌담 뒤에 숨어져 있는 가문동 해신당이 있다. 

신당의 안쪽으로 굽어 자란 팽나무가 신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밑으로 시멘트로 만들어진 제단과 본향당지신단(本鄕堂之神壇)이라고 적혀 있는 위패가 있다. 그 흔한 안내문도 설명판 하나 없이 돌담을 경계로 가려진 해신당에는 여행객의 쓰레기만 나뒹구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바다를 거치는 사람들은 이곳에 좌정한 오씨할망에게 꼭 제를 지내고 나가야 했다고 한다. 주로 어부와 해녀들이 이 신당을 다녀갔다. 오씨할망은 바닷사람들이 바다로 나가기 전에 허락을 맡아야 하는, 오늘날로 치면 해경과 같은 역할이었다. 제물로 메(쌀밥)는 3기를 올렸다 하는데. 오씨할망 몫 외에도 요왕인 개할망과 개하르방을 위한 것이다.

해신당 바로 옆에는 제단이 있다. 해신당과는 돌담을 경계로 나뉘어 있고, 동사지단(洞社之壇)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인 동제를 원래는 각 마을마다 따로 실시했다고 한다. 동제는 천신(天神), 토신(土神), 해신(海神)을 대상으로 하는데, 예전에는 5개 마을이 전부 동제를 지냈으나 해방과 4ㆍ3사건을 거치면서 다른 마을 동제들은 사라지고 미수동과 가문동만 남았다. 하지만 미수동도 30여 년 전에 동제를 그만두며 가문동만 명맥을 잇고 있다.

 

◇사라져가는 전통

다음으로 찾은 곳은 중엄본향당이다. 중엄본향당은 마을 안에서 ‘당동산’이라는 속칭으로 부르곤 한다. 전체적으로 돌담으로 둘러져 있고 당 자체에도 돌담이 있다.

하지만 중엄본향당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건물을 지어 건물 안에 신당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자연석을 쌓아 당 안에 만들어 둔 당집과 팽나무 두 그루 사이에 존재하는 제단의 모습을 아쉽게도 직접 살펴볼 수 없었다. 본래 제주 신당은 건물 안이 아닌 바깥의 트인 공간에 있어야 한다. 전통성의 훼손인 셈이다.

중엄본향당의 당신은 ‘송씨할망’이다. 송 씨가 제주도에 입도하여 살게된 것은 400여 년 전이라고 하는데, 송씨할망에 대한 신앙은 애월읍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본향지신위(本鄕之神位)라는 비석을 세워 위패로 삼았다. 자료에 따르면 왼쪽에 팽나무와 당집의 벽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 이 제단은 송씨할망의 남편인 ‘김씨영감’을 위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추석 같은 명절에도 이 당을 찾는다. 가정에서 명절을 지내기 전에 당을 먼저 찾아 다녀온다. 비념은 송씨할망에게 먼저 하고 김씨하르방은 나중에 한다. 중엄리에서는 마을제를 매해 이 본향당에서 유교식으로 지낸다. 본향제인 당제가 마을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다신의 자리

애월 해신당은 애월항 서쪽 해안가에 있다. 해안로에서 쉽게 당을 찾을 수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남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담이 있고 다시 제단으로 가는 입구를 만들었다.제단 위에 해령지신위(海靈之神位)라고 새긴 돌로 된 위패를 모셨다. 하지만 본래 해령지신위라 부르는 것이 아닌, 평소에 바다신이라 불렀다고 한다. ‘바다신의 자리’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옮겨 적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이다.

이 당은 애월리 본향당이며 어업도 관장한다. 해신당에서는 포제를 지내고 난 뒤 날이 밝으면 해신제를 지낸다. 현재는 마을 남성들이 주도하는 유교식 의례로 행해진다. 단골들은 해신당에 주로 정월과 팔월 명절을 이틀 앞두고 다녀간다. 이를 ‘벳멩질(어선을 위한 명절)’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초하루, 보름에 가는 이도 있다. 

 

◇송씨할망

곽지본향당은 ‘송씨할망당’이라고 부른다. 당은 과오름의 3개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말젯오름의 아래쪽에 있다. 당의 바로 밑에는 포제단이 있다. 원래 이 당은 지금의 리사무소 입구에 있었으나 1960년대 마을 개발로 길을 정비하면서 당을 옮겼다.

송씨할망은 ‘문씨하르방’과 부부인데 송씨할망이 돼지고기를 먹어 부정했기 때문에 바람 위와 아래로 따로 떨어져서 좌정하였다. 문씨하르방이 좌정한 당은 과거에 마을회관 앞 밭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할망당과 하르방당이 약 100여 미터 정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르방당이 아주 오래전에 없어지고 할망당만 남게 되자 할망당에 같이 모셨다고 한다.

 

◇고난과 낙방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한담마을이었다. 이곳은 18세기에 큰 꿈을 안고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던 한 사람의 꿈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한담해변에서부터 곽지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에는 그 사람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있다. 

장한철(張漢喆)은 조선 영조시대인 1770년 12월 25일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가다 풍량을 만나 표류하다 류큐제도(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이후 어렵게 서울로 가서 과거시험을 치렀으나 낙방하고 돌아와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표해록’을 집필한다. 이 자료는 제주의 삼성신화에 관한 이야기, 백록담과 설문대할망 이야기, 류큐 태자에 관한 전설 등이 풍부하게 실려 있어 설화집으로서의 가치 역시 높다고 한다.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제주대 중앙디지털도서관에서 진행된다. 제주지역 대학생 및 일반시민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중앙도서관은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 따라 10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의 대면 강연과 온라인 강연을 병행해 운영한다.  

 송성현 기자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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