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언론홍보학과 2

“누군가 열세 살의 나한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 외딴 산꼭대기 건물에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살아야 해. 그게 가족의 결정이고 너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어. 네가 장애를 타고났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제작한 장혜영 감독은 한 살 어린 동생 혜정의 삶을 이렇게 돌이켰다.

‘어른이 되면’은 감독이 발달 장애를 가진 동생과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동생 혜정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18년 동안 장애인 보호 시설에서 지내오다 감독과 사회로 나와 살게 된다. 그녀가 보낸 18년은 내가 살아온 18년과는 너무도 달랐다. 긴 시간 동안 그녀는 보호랍시고 감금, 폭행 등의 인권 침해를 일상처럼 겪었으며 기본적인 사회화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닌 말 그대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수용시설에 불과했다. 모든 국민이 공동체 속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우리의 평범함은 왜 장애의 유무로 달라져야 했을까. 평범하다 느꼈던 내 일상이 왜 그녀에게는 평범하지 못했는지 착잡할 뿐이다. 

장애인이 집단시설에서의 수동적인 생활을 탈피하고 지역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자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탈시설’이라고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탈시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스웨덴에서는 1997년 ‘특정 기능의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지원 및 서비스 관련법(LSS)’을 제정해 장애인들의 완전한 사회참여를 지원했다. LSS 제정과 더불어 장애인 공동주택에서 당사자들이 같이 생활하는 ‘그룹하우징(grouphousing)’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 작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 제정 공청회를 열면서 탈시설-지역사회 중심의 복지체계 마련의 내용을 담은 ‘탈시설 지원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아직까지는 관련 제도와 정책 추진이 더딘 수준이지만 지난해 12월 서울시에서 장애인 공공임대주택 운영을 시작하면서 정책이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

장애는 선천적으로 가질 수도 있지만 사고처럼 후천적인 영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결국 장애인의 인권문제는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웃, 가족, 친구의 문제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우리 모두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다. 우리 삶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탈시설도 마찬가지다. 탈시설을 현실로 이루려면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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