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권력 집중 현상 분열
아닌 단합 위해 반대 정치 경계해야

김치완
철학과 교수

들은 지 꽤 되는 이야기라 출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애석한 금언이 하나 있다. “대립하는 두 가지 주장 중간에 진리가 있다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진리는 정치가 아니라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뜻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표현을 기억하지 못하니 말 그대로 애석하다. 

내 주장에 반대하거나, 거부(veto)하는 누군가와 맞설 때면 늘 떠올리는 말이다. 나를 방어하면서 상대를 공격하기 딱 좋은 말이니까 더 그렇다.

공자가 미혹됨이 없었다고 회고한  마흔을 훌쩍 넘기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됐다고 회고한 쉰을 넘기고 보니, 곁에서 지켜보는 눈과 입들이 무서워서라도 이 금언을 기억 저편에 묻어 놓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래도 가끔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정치적 수사만큼 인간을 병들게 하는 건 없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앞서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아직 순수하신 거 같아요”라는 말이 위로가 아니라 꾸짖음으로 들리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는 금언을 떠올리며 금세 시무룩해진다.

반대와 정치하면 떠오르는 게 비토크라시(Vetocracy)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만든 용어다. ‘민주주의’의 어원인 희랍어 데모(demos; 민중)를 비토(veto; 거부)와 바꾸어서, 민중의 지배(kratos)가 아니라 ‘거부의 지배’가 됐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의 입법과 정책 활동에 거부하는 공화당을 비판하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2012년에 소개된 일이 있지만, 촛불시민혁명 이후 태극기가 광장을 두고 대립하면서 자주 인용됐다.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철학이 발전했던 동아시아에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 패거리 정치가 경계의 대상이었다. 조선의 사색당파(四色黨派)가 훗날 식민지 사관에서 오명을 뒤집어쓴 까닭도 패거리 정치에 대한 논어의 비판 때문이었다. 위정편에서 “군자는 두루 미치지만 좇지 않고, 소인은 좇지만 두루 미치지는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라고 한 것은 대동소동론(大同小同論)과 함께 정치철학의 근간을 이뤘다. 이렇게 볼 때, 공자의 ‘성인(聖人)다움’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준거인 인의(仁義)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자로편에 나오는 자공과 공자의 문답으로 이어갈까 한다.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괜찮을까요?”라고 자공이 묻자 공자는 “아직 괜찮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모두가 싫어하면 괜찮을까요?”라고 물었는데 공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을 사람 가운데 선량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선량하지 못한 사람이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이렇게 하고 보니 이야기는 다시 이 시론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또 민망하다.

미국 대선 사상 최대 득표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Joe Biden) 당선인은 ‘분열이 아닌 단합(not to divide, but to unify), 그리고 하나의 미국(a United States)’을 강조하는 대국민 연설을 했다. 거기에 비토크라시의 우려를 포갠 보수 언론의 기사를 대하면서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와 하나 된 대한민국, 그리고 아직도 완수되지 않은 적폐청산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하나는 온 나라가 변화와 청산에 집중하던 때에 심지어는 “미움조차 받지 못해서”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나”의 민망함이다.

지난 정권에서 대한민국 고등교육기관은 간선제 총장선출로 자유권을 “대놓고” 침해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재정지원사업으로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법인화로 국립대학을 압박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제주 출신 고현철 교수님의 희생을 필두로 직선제가 부활했고 진보 정부가 들어섰지만, 대학 상황은 여전하다. 팬데믹으로 인한 결집효과 때문에 권력이 집중되는 정부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학에서 집중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라는 게 간선제 때와 똑같기 때문이다. 

쉰넷의 고현철 교수님은 순수했던 것일까?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