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지 한참 지났지만 경제적 이유와 사회적 조건을 핑계로 대응은 지지부진하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이런저런 핑계를 일순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상점과 카페가 폐쇄됐고 외출조차 금지되는 초유의 조치가 강행됐다. 그런데 코로나19처럼 지금 당장의 문제로 체감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기후위기는 팬데믹보다 훨씬 큰 충격을 몰고 올 것이다. 과학적 데이터가 가리키고 있는 것, 그리고 이미 저발전국 사람들의 체험이 말해주고 있는 것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보다 더 강력하고 급진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기후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원고갈, 해수면 상승, 질소화합물의 증가, 플라스틱 폐기물과 전자제품 폐기물 등은 계속해서 위험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거의 고민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신기술개발과 그에 따르는 이윤 창출을 말했을 뿐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패널(IPCC)의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예측마저도 파국을 예상하고 있는데 자본은 여전히 투자된 자본을 모조리 회수할 때까지 기존의 생산과 유통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고 정치인들은 ‘현실적’이라는 핑계로 파국의 길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으로 좁혀 생각해봐도 문제가 심각하다. 코로나19는 이전에 발생했던 감염병으로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지만 공적 의료를 중심으로 한 의료체계의 전환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쟁점조차 되지 못했다. 여전히 개발독재 시절처럼 일선노동자들의 헌신만을 요구하고 있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그들의 헌신에 기댄 방역은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엘리트들의 ‘전리품’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오직 선거 정치를 위해 활용 가능한 주먹구구식 정책만이 발표될 뿐이다. 마치 코로나19가 마지막이라는 듯이,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세계는 인공지능과 스마트기술로 완전히 극복 가능할 것처럼 말하면서 정작 필요한 녹색사회로의 전환은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 해결에 대한 환상과 이윤추구라는 맹목적 목적이 지배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쇠고기, 대두, 팜오일, 목재를 원하고 그 결과는 열대우림의 파괴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사라지는 열대우림은 인간과 바이러스 사이에 완충지대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는 기술적으로 돌파해야 할 ‘한계’가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는’ 삶의 양식에 대한 경고이다. 

지난 1년 동안 정치인들은 ‘전쟁’, ‘전시상황’, ‘뉴딜’의 구호를 외쳤다. 평상시라면 할 수 없는 것들을 추진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이제 기후위기, 그리고 기후위기로 드러나고 있는 생태ㆍ사회적 위기도 이러한 비상한 사태로 인식돼야 한다. 코로나19는 ‘전환’을 통한 생존과 ‘관행대로’의 파국 사이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상징적 사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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