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학정책과 지방대학의 역할

 

김동전 사학과 교수

◇ 위기의 대학, 그 대안은?

문을 닫아야 할 대학은 이참에 빨리 망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대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 입시에서 입학충원율을 채우지 못한 지방대학이 허다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임한 총장도 있다. 구성원이 총장 사퇴를 요구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 우리 대학이 입학 충원율 100%를 달성한 것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결코 아니다.

대학은 죽었고, 전통적 대학은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작 대학은 무엇이고, 대학은 왜 있어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탐색 중이다. 대학이 인류의 미래를 창출해 나갈 소중한 보루라는 오래된 믿음에서 출발하여 지식의 원천, 혁신의 씨앗, 혁신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보다 더 현실적인 해답이 필요하다. 현재 추진되는 대학 정책을 기초로 우리 대학에 절실한 문제를 짚어보고 대안을 생각해 보자.

◇ 구조조정, 특성화 강화 계기로

우선, 대학구조조정 문제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대학구조조정은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한 현실이 됐다. 그런데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정원자율화와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추진한 과거 정부의 교육정책에 기인한다. 그러나 대학과 학생 수 급증이라는 교육환경 변화에는 구조조정이라는 땜질식 처방을 내렸다.

대학도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재정의 건전한 확보와 집행을 요구하기보다는 학생을 소비자로 취급하면서,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을 사기업처럼 자본에 종속시켰다. 『폐허의 대학』 저자 빌 레딩스(Bill Readings)는 이를 두고 “빠른 속도로 ‘수월성’을 좌우명으로 삼으면서, 철저히 회계논리에 굴복해 나갔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런 교육정책의 문제가 사회 전체의 변화를 내세우고 있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3주기 대학평가를 앞두고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대학평가로는 지방대학의 위기와 부실, 학문생태계의 붕괴, 지역 소멸이라는 악순환을 더욱 재촉할 뿐이다. 

교육환경변화에 따른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 민주성과 투명성, 그리고 지역 환경을 반영한 특성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교육정책당국은 대학의 상생과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 대학의 과밀, 집중을 분산시킬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입학정원관리 정책과 함께 지역 국가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학문생태계를 확보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교육재정 확보와 분배를 이뤄내야 한다. 그리고 대학은 이러한 교육정책변화를 이끌고, 성취해내는 주체로서 실효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 4차 산업혁명시대 혁신생태계 조성

다음으로는 4차 산업혁명 대응 대학 혁신사업과 관련한 문제이다. ‘4차 산업혁명 혁신선도대학’ 사업은 4차 산업혁명 신산업 분야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수의 학과가 참여하여 융합 교육과정을 구성·운영하고, 그에 걸맞는 혁신적인 교육 방법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캠퍼스 혁신파크’ 사업은 교육부·국토부·중기부 연계 사업으로, 대학을 거점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연구소·창업자가 대학 캠퍼스에 입주하여 전통적인 학문공동체인 대학을 혁신생태계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공유대학’ 사업은 공유대학 체계 구축을 통한 신기술분야 인재 10만 명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서 손꼽히는 신기술 첨단 분야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차세대 반도체, 미래자동차, 바이오헬스, 실감미디어콘텐츠, 지능형 로봇, 에너지 신산업 등 8개 분야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궁극적으로 정해진 부지 위에 조성된 캠퍼스를 벗어나 ‘미네르바 대학’과 같은 개방과 협력, 연결을 통한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공유대학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제주지역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대학도 타지역 국가거점국립대학과의 컨소시엄 등을 구성해 적극적인 참여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공동체라는 전통적인 대학의 사회적 책무가 동시적으로 상기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 대학과 지역혁신, 협력과 상생 

한편, 현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 및 국립대학 육성 정책은 그동안 수도권 중심의 교육정책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정부는 국립대학 재정확충 및 자율성 확대, 지자체의 재정지원 등의 안정적 추진을 위한 ‘국립대학법’을 2021년에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은 전국 14개 지자체와 지역대학을 연계하여 ‘지역혁신 플랫폼’을 구축하고 지역의 교육·산업 여건을 반영한 ‘지역혁신 핵심 분야’를 선정해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미리 사업을 정해 선정 대학을 지원하는 형태가 아니라 지자체와 대학이 조성한 맞춤 사업에 정부가 지원한다는 점은 유의미한 교육정책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주도의 지역혁신사업 ‘I-제주 플랫폼(웰니스관광)’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학이 전문인 공동체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 플랫폼과 미래가치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다른 지자체와 대학으로 촘촘하게 확장 연계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해외대학을 활용한 온라인 강의방식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 지역인재의 양성과 정착

나아가 지난 2월 26일에 교육부는 ‘지방대육성법’에 근거하여 ‘제2차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서는 ‘대학과 지역. 미래를 여는 혁신공동체’를 비전으로 ‘지방대학 역량 강화를 위한 대학혁신’, ‘지역인재 정착을 위한 지역혁신’, ‘지역혁신 주체간 협업 촉진’이라는 3대 정책영역을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3단계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을 통한 한국판·지역 뉴딜 인재 양성 지원, 지자체의 지역인재 양성 총괄 기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우리 대학은 국가와 지역의 경쟁력을 견인하는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 지역혁신과 혁신성장의 주체로 지방정부인 제주특별자치도와의 동반성장을 위한 다양한 협업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스탠포드대학이 없는 실리콘밸리를 상상하기 어렵듯 제주대학교와 제주특별자치도는 상생발전의 공동체이다. 우리 대학은 지역혁신의 주체로 제주특별자치도를 거점으로 하는 제주대학교를 넘어서 제주대학교를 거점으로 하는 제주와 대한민국을 상상하고 실현해야 한다.

◇ 새로운 목표와 비전, 공론장 필요

대학 위기 극복을 위해 제주대학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발상의 전환을 성취해내야 한다. 특히 이미 시작된 시대적 대전환기에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 창출과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학문 균형과 포용의 대학 철학과 비전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양적 성장의 성과, 시대변화에 따른 교육 개혁 혁신의 정도, 발전의 발목을 잡는 대학의 여러 요소, 도민들의 신뢰 회복 방안 등을 냉철하게 진단해야 한다. 진단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대학구성원들과의 소통과 협력에 기반한 역량을 결집하여 특성화 전략과 대학구조조정, 4차 산업혁명 교육혁신, 뉴노멀시대의 대학 혁신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선제적이고 성공적으로 안착해야 한다.

그 길은 피부의 가죽을 벗겨내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 길만이 우리대학이 생존을 넘어 명문으로 도약하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기도 하다. 도끼자루를 할 나무를 패는 도끼자루처럼 미래는 멀리 있지 않고 늘 우리 손에 있다. 모두가 역량을 결집해서 대학 발전을 위한 구체적이고 치밀한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이라는 말은 곧 누구나 대학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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