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림이시돌 맥그린치 신부 / 양영철 /2016

외가가 상명이고, 명월, 한림, 화순에 외삼촌이 살았다. 금악은 눈보라 너머의 마을 느낌으로 내게 남았다. 

초등학생 시절 겨울방학이었다. 상명리 외할머니네 집에서 혼자 놀기 심심해서 오후 늦게 걸어서 명월리까지 걸어갔다. 한참을 걷는데 눈보라가 일기 시작했다. 돌아가기에도 멀어 눈보라 속을 뚫고 명월리 외삼촌 집까지 걸었다. 그때 눈보라가 금악리 쪽에서 불어왔다. 금악은 눈의 나라였다. 마침내 외삼촌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외사촌들이 잠자리에 든 시간이었다. 외숙모가 혼자 걸어온 나를 보고 놀랐다. 

금악초등학교는 어머니가 졸업한 학교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일 때 세상을 떠났다. 금악은 더 먼 곳이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한림수직 스웨터 한 벌이 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스웨터에 코를 묻곤 했다.

금악리에 온 맥그린치 신부(한국명 임피제, 1928-2018)에 의해 완성된 한림수직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어린 나이에 일찍 뭍으로 돈 벌러 간 소녀가 목숨을 잃어 유골함으로 돌아온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고향을 떠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한림수직을 만들었다.

한수풀도서관에서 마련한 4ㆍ3길 걷기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길라잡이를 했던 김세홍 시인이 맹게낭 이야기를 들려줬다. 맹게낭은 청미래덩굴의 제주어다. 4ㆍ3 당시 산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불을 피울 때는 연기가 나지 않는 맹게낭을 썼다는 이야기였다. 서늘한 바람 속에 맺힌 빨간 열매들이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  

금오름 분화구는 물이 고여 있어서 신비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금오름에 이어 내친김에 정물오름까지 오르고 내려와 이시돌목장 옆을 지나다 차를 세우고 들판 위에 있는 양들을 사진기에 담았다. 

이제 맥그린치 신부는 없다. 맥그린치 신부를 미화한 책일 것 같아 주저하다 읽은 이 책에는 그의 제주 사랑이 녹아 있다. 

그의 제주에 대한 사랑은 한림성당을 지을 때부터였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데, 마을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성당을 짓는 일을 도와줬다. 한 번은 바닷가에서 목재를 나를 일이 있었는데, 새벽부터 한림 사람들 수백 명이 나와 목재를 운반해 주었다. 그때 맥그린치 신부는 감복했다. 신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와줄 생각을 했는지 물으니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이 우리를 위해 애쓰는데 우리가 당신을 돕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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