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대학원생의 시간표 < 1 > 유서진 서양화과 석사과정

개인전 <유서진 : 바람꽃>을 진행한 유서진씨.

제주대학교에는 ‘1만아라’라고 부르는 학부생들과 더불어 약 2000명(2020년 기준)에 가까운 대학원생들도 캠퍼스를 누비고 있다. 일반대학원을 포함해 10개 대학원에서 각자 전공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들은 전공처럼 나이도 이력도 목표도 생활 반경도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대학원생의 존재는 좀처럼 학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이번 기획에서 대학원생들의 시간표를 물으며 그들의 처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편집자 주>

지난 1월에 개인전을 선보이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유서진(25, 서양화과 석사과정 수료)씨는 2019년,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작가가 되려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성 작가로 활동하다 필요할 때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다수인 분위기에선 드문 일이었다.
작업은 혼자 하는 것이라는 각오도 있었지만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대학원에 발을 딛을 때부터 학생보다는 ‘작가’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부담이었다. 이론과 실기 수업 외에도 작업 시간까지 확보해야 하기에 전업을 택했다. 학교에 붙박여 지내며 4학기가 숨 가쁘게 지났다. 이번 학기부턴 연구조교로 일하면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대학원 진학 계기는.
부모님 영향으로 학부 때부터 당연하게 대학원에 갈 거라고 계획했다. 학부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전업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어서 곧바로 진학했다. 학부 동기 서른 명 중에 다섯 명이 대학원에 진학했으니까 우리 전공에서는 대학원에 가는 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일반대학원이냐 교육대학원이냐 두 길로 갈린다. 전자는 작가의 길인 것이고 후자는 교직이나 다른 직업을 얻는 자격을 준비하는 길이다. 나처럼 바로 진학하는 경우는 드물고, 준비 시간을 갖고 오기도 하고 대부분은 전업 작가들이 온다. 육지부로 나가는 학생들도 있는데, 환경의 차이 때문에 나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 현실적인 여건, 예를 들어 생계가 여기에 있거나 지역사회에서 뭔가를 하려는 사람들은 남는다.

▶어떤 마음으로 전업/비전업을 골랐는지.
과정 때는 전업이었다. 일을 해볼까도 고민했지만 막상 학기가 시작되니 2년밖에 되지 않는 대학원 과정이 돌이킬 수 없는 중요한 시기라는 판단이 들었다. 학교생활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전업 학생이 경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잘 돼있지는 않다. 전일제 지원이 전부여서 가족의 도움 없이는 하기가 어렵다. 겸업인 경우는 학교생활을 병행하기가 빠듯해서 휴학을 반복하기도 한다.

▶ 입학 전에 예상한 대학원 생활과 많이 다른가.
작업은 각자 하는 거라 입학하기 전에도 ‘많이 외로울 거다’, ‘혼자만의 싸움이다’,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예상은 했고 실제로도 맞았다. 그런데도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 있다. 학부 때 작업과 연장선일 줄 알았는데 주변의 기대가 달라져 버렸다. 학생이 아니라 작가의 작업물로 보이게 되면서 엄청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짧은 시간 내에는 끝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어서 휴학만 생각했다. 우리는 석사과정생 나이대 구성도 폭이 넓다. 이미 개인전을 몇 번씩 한 선생님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달라지고 분위기도 예상한 것과 달랐다.

▶하루 일과는.
개인마다 작업하는 스타일이 다른데, 수업이 있든 없든 학교에는 매일 나와서 작업을 하고 교수님께 진행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주된 일과다. 아침부터 낮까지는 주로 이론 수업 과제나 자료를 수집하러 다니고 낮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작업하는 것이 루틴이다. 다른 학생들은 이미 활동하는 전업작가가 많아서 자신의 작업실을 확보해 있는데, 아직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갈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작업실을 구하기가 망설여진다.

▶전공 중에서도 어떤 연구 주제에 집중하고 있는가.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고 아크릴 기법으로 식물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대학원에 처음 진학하고 나서는 기초적인 재료인 유화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노력했지만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 아크릴이 맞아서 좀 더 연구해보려고 했다. 식물을 소재로 선택한 계기는 정형화되지 않고 자유롭게 바람에 흔들리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공부를 하니 제주의 자생식물들과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이 주제를 좀 더 파보려고 한다. 석사학위 청구를 위한 개인전은 제주 자생식물의 현실을 조명하는 것이었다. 유화와 아크릴 두 가지 기법으로 제작한 30점을 선정해 전시했다. 하반기에는 학위청구논문을 준비할 계획이다.

▶대학원이 개선됐으면 하는 점은.
우리는 그래도 대학원 연구실 지원이 아주 잘 되는 편인데, 학생들끼리 입을 모아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없어도 너무 없다는 말을 한다. 다른 곳은 전공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우리는 전시 지원이 절실하다. 대학원에서 단체 전시회를 하는데 전시관 대여나 작품연구에 대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학교 생활에 점수를 매겨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8점이다. 이론 수업이 재미있고 유익하다.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진학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처음에는 외로웠다. 그래도 연구실이 넓다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주고 싶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다른 학교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
수업 끝나면 흩어진다. 그런 커뮤니티가 없다. 인맥이 이미 있어서 결집할 이유가 크게 없기도 하다. 3학기 때 석사학위 청구전을 하고 4학기에 청구논문을 쓰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고 4학기에 하고 논문은 쓰는 사람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학위를 이수하고 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전업작가 생활을 하는 걸 가장 선호한다. 학위를 이수한다면 폭이 넓어져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들도 있다. 아트센터나 미술관, 박물관에서도 일해보고 싶다. 일반대학원으로 온 사람들의 고민이, 졸업하고 나면 석사학위는 땄지만 그 외에는 뭘 하려고 해도 자격증을 따야 한다. 그게 우선 쉽지 않다. 그러려면 교육대학원에 가는 게 훨씬 낫고 자격증을 아예 준비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고민이 될 것 같다.

▶동료 대학원생들과는 주로 어떤 고민을 나누는지.
학교에서 연구조교로 일하고 있는데 대학원을 졸업해서 행정직보다는 기획이나 진로를 좀 더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일하면서 많이 고민하고 있다. 대학원 들어오고 서러웠던 게 이야기를 나눌 동료들이 없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작가 생활을 하다가 오신 분들이 다수여서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었다. 학부 때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한다니까 선배가 많이 외로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진학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어서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막상 와보니 헤매면서 물어볼 사람은 없고 또래가 없어서 더 외로웠다.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부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면 휴학 생각만 간절해진다. 전공마다 공부의 의미가 다를 텐데, 여기에서는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건 작가의 길을 걷겠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자신만의 정의,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교수님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뚜렷한 주관도 중요하다.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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