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을 위한 특별한 자치의 필요성

강호진

제주대 안연구공동체

공공정책센터장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 상투적이지만 그 고전적 명제마저 설 자리를 잃었다. 1980∼90년대 ‘사회변혁’을 꿈꿨던 대학.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취준생’, ‘공시족’이라는 단어가 지배하는 곳으로 변했다. 수직 서열화 된 한국대학. 그 구조 속에 지역대학의 위상은 주변부의 위치를 강요 받아왔다. 특히 ‘서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소위 일자리 대책은 국립 제주대를 포함해 지역사회의 핵심적인 문제가 됐다.

 

◇고용 할당제가 지금도 있었더라면


제주에는 일자리 문제를 비교적 덜 고민하게 할 수 있던 제도가 존재했다. 1991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제주특별법에 ‘주민우선고용제도’가 있었다. 일정 규모 이상 제주에서 관광ㆍ개발 사업을 할 경우 고용인원의 80%를 주민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었다. 쉽게 ‘지역 고용 할당제’였다. 당시 계산으로는 제주에 필요한 2만명의 일자리 가운데 1만6000명을 채용해야 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2006년 특별자치도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몰아친 것은 ‘특별한 자치’가 아니라 ‘규제자유화’의 깃발이었다. 여세를 몰아 재벌기업들의 연합체인 전경련의 요구를 제주도가 수용했고, 정부와 국회가 동의하면서 이 조항은 폐지됐다.‘투자진흥지구’의 이름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장 등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이 줄줄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투자진흥지구에 따라 감면된 국세 지방세 합은 8500억원을 넘어섰다. 대다수 제주지역 서민들에게는 단돈 1원의 혜택도 없던 시절이다.


가정법이지만 이 제도가 2021년에도 특별법에 의무 규정으로 효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제주도의회에서는 매해 행정감사 등을 통해 주민우선고용제에 따라 실제 채용이 이뤄지고 있는지 감시하고 평가했을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단순 고용의 숫자만이 아닌 질적 수준까지 평가하는 일자리영향평가제 입법운동을 했을 것이다.


제주대 총학생회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 ‘이름만 화려한 IT 기업의 자회사’가 아닌 ‘더 좋은 일자리’ 제도를 만들겠다는 내용을 선거공약을 내새웠을 것이다.

 

◇화려한 성장, 특별자치도


지난 2006년 제주는 법률상 ‘특별자치도’로 전환됐다. 정부와 제주도는 ‘지방분권의 백미(白眉)’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외교 국방 사법을 제외하고, ‘1국가 2체제’라는 연방제 수준의 시범지역을 선포했다. 도민이 스스로 결정하는 체제를 만들겠다는 친절한 정부의 각오에 가까운 설명도 곁들였다.


이 특별자치도 도입을 시작으로 정부는 ‘권한이양’이라는 제목으로 1단계에서 6단계까지 특별법 개정이라는 제도개선을 진행했다. 실적은 있었다. 4500여건의 정부권한이 제주도로 이양됐다. 사람, 상품,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이념으로 하는 ‘국제자유도시’를 향해 질주했다. 외형은 제법 화려해졌다. 20년 전 55만이던 인구는 현재 7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고교 시절 교과서에 외웠던 지역내경제총생산(GRDP)은 2006년에 비해 3배 증가했고, 경제성장률 역시 전국 평균을 압도했다.


제주도청 예산은 2006년 2조5000억원에서 2018년 이후 5조원을 넘어섰고, 지방세 징수액도 4300억원에서 2018년 1조4000억원으로 3배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 2006년 500백만 수준이던 관광객은 2013년 1000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 19 시대 잠시 주춤했던 관광객은 해외 관광객 수요를 유입시키면서 ‘제주허씨’로 명명된 ‘허하호’ 번호판을 단 자동차들이 최근 다시 주말 제주 섬을 점령하고 있다. 여기가 뉴욕도 아닌데 제주공항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름 군락과 한라산이 아니라 38층 ‘드림타워’가 됐다.

 

◇누구를 위한 특별함인가?


국제자유도시를 목표로 질주해 온 제주특별자치도의 이면은 통계적으로 도민에게 가혹했다.


2006년 전국 최고 수준이던 비정규직 비율은 2021년에도 43%로 여전히 전국 최고 수준이다. 노동의 질적 조건을 나타내는 중요지표인 노동자 평균 임금은 2000년 초반 전국 10위권이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전국 최하위로 추락했다. 2020년 전국 노동자 평균 월급은 344만원이다. 제주 노동자 평균임금은 272만원이다. 외형적 경제성장은 이뤄졌지만 특별자치도가 시작된 후 그 격차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 늘어났다.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인 농업은 전국 농가부채 수준 최고라는 기사가 20년째 매해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50대 이상 농업 종사자 비율은 2020년 65%를 넘어서면서 고령화가 대세가 됐다.


영리병원의 이름으로 전국 최초의 주식회사 병원을 꿈꿨던 제주. 김태환, 우근민 지사에 이어 대를 잇듯이 원희룡 도지사까지 도민의 뜻을 외면하는 동안 제주의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은 더뎠다. 그 결과 외래환자유출률은 여전히 전국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아프고 나면 제주가 아니라 서울로 가는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는 말이다. 


1인당 연 8000만원 이상 들어가는 주식회사 학교인 국제학교는 서민들에게는 ‘귀족학교’로 명명되면서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됐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학교가 선택되는 국제학교 2단계 계획은 여전히 멈춰지지 않고 있다.


서민에게는 중요한 정책지표인 제주도청 사회복지예산 비중은 2020년 전국 평균 34%인 반면 제주는 ‘전국 꼴등’인 20%를 겨우 턱걸이했다. ‘내 집 마련의 꿈’으로 표현되는 ‘주택구입부담지수’ 역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높다. 대학 졸업하고 ‘비트코인’이나 주식이 아닌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월급 노동자라면 꼬박꼬박 모아도 30년 이상 걸린다는 이야기다. 쓰레기 대란, 이미 포화된 매립장, 일상이 된 교통체증 등은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현실에서 날마다 체험하는 중이다.


반면 최근 코로나 19로 어려움은 있지만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운영하는 제주공항 면세점 등 3군데 매출액이 2019년에는 2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JDC는 이 면세점으로만 그동안 1조4000억원을 벌어 들였다.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있던 특별함인지 답안지를 공개할 필요도 없는 결과다.  

 

◇도지사를 위한 특별한 자치인가?


자치분야에서는 정부와 제주도가 자랑했던 특별자치도 역시 사실은 누더기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종시를 뺀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기초자치단체가 없는 유일한 지역이 제주특별자치도다. 도민들의 자기결정권은 도청 홍보물이나 관제 전광판 광고 속에서만 존재한지도 오래다. 그동안 제주의 갈등사안이던 영리병원에 이어 최근 제2공항 도민 여론조사 결과가 외면됐듯이 도민은 들러리고 도지사가 맘대로 결정하는 통치체제가 강화됐다. 4000여건의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 것만이 아닌 현실 정책에서도 ‘제왕적 도지사’는 더 이상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50만 제주시민들을 대표하는 제주시장을 시민들이 뽑지 못하는 체제, 도지사가 임명하는 시스템을 바꿔달라는 요구를 15년째 시민들은 제기하고 있지만 하나도 진척이 없다. 대학으로 치면 학생들이 선출한 총학생회장이 단대 학생회장을 임명하는 격이다. 대학생들이라면 이를 인정할 수 있을까? 1987년 6월 항쟁 당시 ‘대통령을 우리의 손으로’라고 외쳤던 민주시민들의 외침을 제주에서는 2021년에 ‘제주시장을 시민의 손으로’ 외쳐야 할 판이다. 이는 백번양보해도 혁신이 아닌 퇴행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새로운 간판이 필요하다


이제 도민을 위한 특별한 자치가 필요하다. 새로운 간판으로 교체해야 한다. 50대 이상이나 기억할 70∼80년대 대처, 레이건 시대의 유물인 신자유주의에 포장지를 씌운 제주국제자유도시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인간과 자연을 위한 제주가 아니라 자본과 권력을 독점한 도지사만을 위한 특별자치라면 차라리 간판을 내리는 것이 제주도민들에게는 1000배 이익이다.


특별자치도의 효용성도 사라졌다. 2020년 12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제주의 특별한 자치실험은 전국화의 길로 가고 있다. 제주는 더 이상 특별자치도가 아닌 평균자치도 또는 평균이하 자치도가 될 수 밖에 없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정치적으로 ‘레임덕’이 와버린 문재인 정부지만 최근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간판은 고집하고 있지만 그 내용물 속에는 변화가 생겼다. ‘고도의 자치권 보장과 경제와 환경의 조화 속에 지속가능한 발전 추구’가 핵심적인 내용으로 포함됐다. 제주 미래 비전의 변화를 법률 개정을 통해서 전환 시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제 도민들이 나서 간판까지 바꿀 차례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드림타워. 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가장 눈에 띈다(출처=롯데관광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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