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복지시대 이전만 하더라도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었다. 게으름, 나태, 무능력, 무책임, 무지 등 개인의 모자람 때문에 가난하다고 했다. 허가받은 사람만이 정해진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매우 굴욕적인 자세로 사적부조를 받을 수 있었다. 1886년 찰스 부스의 ‘빈곤조사’ 이후에야 빈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구조적 빈곤관이 나타났다.


그제서야 빈곤은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사회ㆍ경제적 상황에 따른 결과이며 해당 사회의 제도와 관습, 정치체제와 권력, 시장 구조와 의사결정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기 시작했다. 점차 국가의 재정과 정책을 통해 빈곤의 해결, 해소, 완화할 수 있으며 빈곤해결은 곧 ‘국가의 책임이다’라는 인식이 확대됐다.


빈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노동시장분절이론에 따르면, 노동시장은 분절되어 있으며 분리된 노동시장의 임금경쟁과정은 다르다. 노동시장 분절을 설명해 주는 내부노동시장에서의 임금은 전통적인 경쟁시장과 달리 특정의 행정적 규칙과 절차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시장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율적으로 형성되지 않고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가 생겨난다는 말이다.


이에서 보면 일자리 역시 빈곤처럼 국가와 지역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지방대를 나왔다. 스펙이 부족하다. 눈높이를 낮춰라. 몇 년 더 준비해 공시나 봐라 등의 상처 주는 ‘석 되 부조’는 없어져야 한다.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지만 취업의 어려움을 개인의 모자람이나 준비부족, 심지어 숙명으로 몰고 가는 황당함은 사라져야 한다.


이제 당연히 좋은 일자리 창출과 공급은 지역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다.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 가고 싶은 일자리, 맞춤형 일자리, 누구나 인정하는 일자리가 충분해야 한다. 그걸 믿고 어려서부터 지금껏 제도권교육을 충실히 이수해 왔지 않았나. 지역별ㆍ산업별 불균형, 노동시장의 미래예측실패, 노동력 수급실패 등은 정책의 실패, 정부의 실패이다. 절대 개인적 숙명이나 역량부족, 노력부족 때문이 아니다.


지자체 최초로 강원도에서 ‘코로나19’로 발생한 도내 실직자를 구제하고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강원형 취직 사회책임제’를 추진하고 있다. 근본적 해결방안은 일자리에 있으며 그 문제해결을 위한 지역사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그간 기업차원에서 꾸준히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며 청년일자리 창출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 왔다. 지자체 수준에서 일자리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정책화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는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 그렇게 키운 아이의 일자리는 당연히 지역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우리도도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일자리 정책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기업, 지자체, 지역사회 모두 미래주역인 청년일자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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