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M.C.에셔의 '낮과 밤', 위-'삼각체계', 아래-'뫼비우스의 띠'

  크레타섬의 에피메니데스가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른바 거짓말쟁이의 패러독스이다.

  패러독스는 논리학, 수학, 심리학, 경제학 등의 학문 분야는 물론이고 예술에서까지 인간의 사고와 지각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M.C. 에셔는 패러독스를 담은 걸작품을 여러 편 남긴 대표적인 화가이다. 에셔는 1926년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에 가서 무어 왕들의 옛 궁전인 할함브라를 본 뒤로부터는 궁전의 벽과 마루를 장식한 타일의 모자이크에 완전히 심취했고, 곧 모자이크를 이용한 조형미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했다.

  에셔의 모자이크 심취는 형태주의와 결합하며 더욱 강해졌다.

  1920년대에 독일 심리학자들에 의해 태동한 형태주의는 단편적인 감각자료와 통합시킴으로써 인간의 지각이 가능하다고 보는 구조주의를 반박한다. 형태주의는 감각 대신에 형태를 지각 단위로 여기고 지각은 과거 경험과는 무관하고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에셔는 형태주의로부터 이미지를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바꾸는 방법과,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림의 전경을 배경으로 또는 배경을 전경으로 지각하도록 명도대비를 바꾸는 방법을 배웠다. 초기의 목판화 중에서 가장 완벽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는 「낮과 밤」(1938)을 보면 모자이크 형식과 형태주의 심리학이 에셔의 작품을 밑받침함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림 아래에는 바둑판 무늬의 땅이 있는데 위로 올라가면서 네모꼴이 양지바른 마을 위로 나는 검은 거위와 밤을 맞은 마을로 향하는 하얀 거위의 모양으로 바뀐다. 2차원의 들판이 3차원의 거위로 변형된 것이다. 또 하얀 거위 무리가 지각될 때 검은 거위들은 배경에 불과하므로 새로 지각되지 않는다. 거꾸로 검은 새가 전경이 되면 하얀 새는 지각되지 않는다. 명도 대비와 명암을 적절히 사용한 결과이다.

  에셔는 평면 분할 개념으로 1백 50개 이상의 작품을 그렸다. 모양이 비슷한 나비, 백조, 물고기, 파충류 따위가 평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대칭성을 보여 주었으며 동시에 유한한 공간으로 무한을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삼각체계」(1928)를 보면, 여섯 마리의 나비가 항상 왼쪽 날개의 끝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소용돌이 꼴이 된다. 또한 항상 세 마리씩 오른쪽 날개의 뒷부분이 닿은 채 회전하고 있다. 이러한 대칭성의 그림은 모든 방향으로 영원히 계속될 수 있기 때문에 무한의 메타포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 펜로즈의 삼각막대기를 세 개 연결해 그린 에셔의 '폭포' 

  에셔는 말년에 이른바 불가능한 물체의 일종인 삼각 막대기를 응용한 작품을 남겼다, 1958년 영국 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가 발견한 삼각막대기는 삼각형의 각 부분에서는 오류를 발견할 수 없으나 실제로는 만들 수가 없다. 에셔는 펜로즈의 삼각막대기를 세 개 연결하여 「폭포」(1961)를 그렸다. 패러독스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폭포의 물길을 따라 계속해 내려가다 보면 놀랍게도 처음에 출발했던 장소로 되돌아오게 된다. 고리의 각 부분에서는 한 곳도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지 않지만 전체적인 시각으로 보면 고리 전체가 분명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패러독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2년 뒤에 에셔는 자기 언급에서 비롯되는 패러독스를 실감나게 보여 준 「뫼비우스의 띠」(1963)를 그렸다. 띠를 한 차례 비튼 다음에 양쪽 끝을 이어서 만든 고리를 개미들이 기어 다니는 그림이다. 고리의 각 부분에서 보면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리의 한 면을 줄곧 따라가면 어느덧 원점에 되돌아오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 개의 면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즉 자기 언급에서는 똑같은 논리를 몇 번이고 되풀이 사용해 끝없이 결과로부터 원인으로 소급하는 무한 역행의 패러독스가 생긴다.

  M.C.에셔는 1972년 사망했다. 이렇게 미술과 수학의 결합을 시도해 자연의 숨겨진 모습을 독특하게 들추어 낸 패러독스는, 불가능을 가상가능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던 이른바 인공물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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