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담동 선사 무덤 유적

 제주대학교 사학과에서는 매년 두차례에 걸쳐 제주도 유적지를 답사한다. 선사, 고려, 조선, 일제와 4·3사건의 네 개 조로 구성되며 필자는 선사시대 유적지 답사조에 소속되었다.

  5월 2일부터 4일까지 진행된 이번 춘계답사에서 처음으로 간 곳은 제주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용담동 선사무덤유적이었다.

  1984년에 용담동 주택공사 현장에서 합구식 독무덤이 발견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발굴을 행한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는 합구식 독무덤과 타원형의 석곽묘, 장방형의 석곽묘가 발굴되었는데 이 구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질립구연토기, 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 흑색의 간토기 등의 토기류와 여러 가지의 철기 유물들이다. 이곳에서 선사시대 제주의 매장문화에 대해 알 수 있었다.

  ◆ 용담동에서도 발굴된 간토기

  용담동에서 벗어나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화북의 주공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삼사석을 볼 수 있다. 지방 기념물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유적은 탐라의 시조인 ‘고·양·부’ 3신인이 벽랑국의 3공주를 배필로 정하고 활을 쏘아 거처할 터전을 정할 때, 그 화살이 꽂혔던 돌이다.

  동쪽의 삼양동에 다다르면 초기 철기시대 마을유적을 볼 수 있다. 이 유적은 1∼2세기 고대 탐라국 형성기 당시의 사회상을 고고학적으로 밝혀준 중요한 유적이다. 유적발굴이 끝난 지금 이곳에 공원조성 계획이 있어 사람들이 더 쉽게 유적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 3신인의 활을 맞았다는 삼사석

 북촌리에 있는 신석기 바위그늘 유적지에서는 여러 종류의 석기와 토기, 골각기, 패류, 동물뼈, 탄화열매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출토 유물들로 인해 당시의 채집·어로·수렵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동쪽에 있는 성산읍 온평리에는 삼사석과 관련이 있는 3신인 혼인지가 위치해 있다. 이곳은 3신인이 벽랑국의 3공주를 맞이하여 혼례를 치른 곳이며 혼인지 안에는 첫날밤을 치렀다고 하는 조그마한 동굴도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신풍리 선사동의 굴유적은 선사시대의 주거유적이며 이로써 당시의 주거생활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첫째날 마지막으로 찾은 유 적은 천지연 폭포 근처 해안가에 있는 화석 유적이었다. 여러군데 조금씩 화석유적은 남아 있었지만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둘째날 찾은 곳은 고산리. 이 곳 신석기 유적은 제주도민이라면 중요히 여겨야 할 유적이다. 고산리 유적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석기 유적으로 얼마 전 교과서에 등재되기도 한 유적이기 때문이다.

  고산리유적은 BC1200∼1000년경의 유적이며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타제석기, 성형석기, 폐기석기, 화살대를 만드는데 이용하는 시병연마석기, 융기문 토기, 원시무문 토기, 압인문 토기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곳은 남한 최초의 신석기 유적으로 보존되어 다음해부터 경작도 금지된다고 한다. 고산리 유적을 둘러보고 난 후 곽지리 일주도로 변에 있는 곽지패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약 10,000여평 이상의 대규모 유적으로 초행인은 유적을 쉽게 감별할 수가 없다.

  광령리 고인돌은 보존상태도 양호했고 유적주위로 경계 구조물도 있어서 유적보호의 모습이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고인돌 유적에 대한 설명을 알려주는 간판은 오래되서 그런지 설명을 읽을 수 없을만큼 지워져 있었다.

  이 유적 답사를 마지막으로 이틀간의 제주도내의 선사유적 학술답사는 끝이 났다.

  유적지들은 대부분이 소수인원만 찾아간다. 제주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대부분의 제주인들은 앞장서 제주도내에 있는 여러 유적을 보호하고 많은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할 것이다.

  또 도내에 자리잡은 중요한 유적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백번을 설명하기 이전에, 정기적인 답사를 통해 유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우선이다. 이영호(사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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