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홍 아무개라는 재상이 길에서 소나기를 만나 잠시 비를 피하려고 길 옆에 있는 작은 골짜기로 들어 갔다.

  골짜기 한쪽에 작은 암자가 있고 거기에 17,8세 정도의 아리따운 한 비구니가 있었다. 달리 묵을 곳도 없고 해서 홍은 마침내 이 비구니와 사랑을 나누게 됐다. 비가 개이고 돌아가려고 할 즈음에 몇년 몇월에 이곳으로 돌아와 아내로 삼겠다고 약속하고 홍은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기일이 지나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불쌍하게도 이 가련한 비구니는 홍을 그리워하다 마침내 병이 들어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다.

  홍은 그 후에 출세해서 남방의 절도사가 되어 임지인 진영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홍의 깔개 위를 기어다니자 역인을 시켜 이 도마뱀을 죽여버렸다. 그런데 그 다음날에도 이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제서야 홍은 오래 전에 젊은 비구니와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하지만 권세를 지닌 자신에게 어떤 짓을 할 수 있으랴 싶어 무력으로 섬멸하기로 결심하고 나오는 대로 죽여버리라고 역인에게 명령하였다. 그후 매일같이 나오는 대로 죽여버렸지만 죽여버릴수록 그 크기가 커지는 바람에 마침내는 큰뱀이 되어 나타났다. 모든 방법을 강구하였으나 결국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 홍은 할 수 없이 뱀을 자기의 낡은 속하의에 싸서 상자에 넣고 침소에 두기로 했다. 낮에는 그 뚜껑을 덮고 밤에는 뚜껑을 열어놓았을 때서야 겨우 뱀이 나오지 않게 되었으나, 순행 때 이 상자가 없으면 가는 데마다 큰뱀이 나타나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홍은 이 상자를 끼고 다녀야만 했다. 그 후 홍의 정신은 점점 쇠약해지고, 안색도 초췌해져 마침내는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심령(psychic)현상에 관한 한국의 이야기이다. 심령이란 마음속의 영혼, 즉 육체를 떠나서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마음의 주체이다.

  인류는 적어도 2000년 이상 심령현상을 경험하였으나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심령현상을 과학의 주제로 삼아 연구하는 분야가 초심리학(parapsychology)이다. 초심리학에서 연구하는 심령현상은 다섯 분야로 구분된다. 그 중 사이(psi)라고 칭하는 두 분야는 다음이다. ▲초감각적 지각(extrasensory perception): 사람이 오감을 사용하지 않고 논리적 추론 없이 정보를 얻는 능력 △텔레파시(정신감응): 두 사람 이상의 마음 사이에 오감을 사용하지 않고 정보를 직접 교환하는 능력 △투시: 마음으로 멀리 떨어진 곳의 물체나 사건에 관한 정보를 얻는 능력 △예지: 미래의 사건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인지하는 능력 ▲염력(psychokinesis): 사람이 육체적 힘을 사용하지 않고 마음만으로 물체, 사건 또는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 △매크로 염력: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처럼 큰 물체에 작용하는 염력 △마이크로 염력: 전자장치를 사용해 마음으로 원자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

  사이(psi)가 아닌 나머지 세 분야는 과학적 설명이 쉽지 않은 심령현상들이다. ▲사람의 유령 또는 귀신이 나타나는 현상: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장난꾸러기 유령인 폴터가이스트, 특정장소에 주기적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현상 등의 연구도 포함된다. 초기의 심령연구가들은 유령을 사람이 죽은 뒤에도 영혼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초심리학의 연구대상에 포함시켰다. ▲임사체험: 죽을 고비에 임했던 경험을 말한다. 이는 초심리학과 의학의 경계에 있는 분야이다. 종종 임사체험과 함께 일어나는 현상인 유체이탈경험도 연구대상이다. 이는 육체와는 별개의 것으로 믿어진 영체가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경험하는 현상이다. ▲심령요법: 치료자가 정통의학과 무관한 방법으로 환자의 신체에 영향을 미쳐 질병을 고치는 분야이다. 심령요법은 치료자와 환자가 서로 몸에 지닌 특유의 에너지를 교환하는 것으로 전제한다. 이러한 생명에너지는 역사를 통해 수많은 문화에서 그 존재가 보고되었다. 힌두교도의 프라나, 중국인들의 기 등을 들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초심리학에서 연구하는 다섯 가지 심령현상의 어느 한두 가지를 겪어본 사람은 세계 인구의 50∼75% 가량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심령현상은 마술사나 무당과 결부되어 미신으로 간주되었다.

  초심리학을 둘러싼 논쟁의 초점은 반복가능성으로 모아진다. 무릇 과학은 한 현상이 발견되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과정을 통해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즉 초심리학이 제시한 실험결과가 이러한 과학의 전제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는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복가능성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심령현상의 본질에서 비롯된다. 가령 텔레파시를 되풀이해서 실험했을 경우 유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물론 비판자들은 이러한 초심리학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진다.

  초심리학에서는 반복가능성의 난관을 메타분석(meta-analysis)으로 돌파한다. 말 그대로 분석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초심리학자들은 라인 이후 50여 년 간 실험을 통해 수집된 자료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는 과학적 증거로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초심리학은 과학이 현 상태에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람이 정보를 얻거나 물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오늘날 과학이 자연의 본질과 인간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모든 과학의 법칙이 재검토되어야 하며 우리의 세계관 역시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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