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로드(Culture Road) 2002-해외로 진출하는 신진예술인 3부작’이 지난 1월 17일부터 2월 17일까지 한 달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열렸다. 국립극장, 독립예술제 사무국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독특한 방식으로 나름의 예술형식을 추구해 자생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한 바 있는 연출가들의 2002년 해외 진출 프로젝트를 한자리에 모았다.

  공연은 스튜디오 몽골몽골의 ‘마이 올드 자이언트 슈즈(My Old Giant Shoes)’(강론 작/연출)와 극단 노뜰의 ‘동방의 햄릿’(셰익스피어 작/원영오 각색·연출), 극단 여행자의 ‘연(緣)’(양정웅 작/연출) 순으로 진행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별오름극장을 찾았을 때에는 ‘동방의 햄릿’ 마지막 공연이 있었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 만큼이나 오랜 정적을 깨고 작은 외침들이 시작된다. 각각의 외침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울린다. 햄릿, 햄릿, 햄릿. 햄릿 앞에 서 있는 것은 그의 죽은 아버지이다. 햄릿은 오늘도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가며 분노하고 절망한다. 권력 놀음에 휘둘리는 현실 속에서 그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희미해져만 간다.

  그는 오늘도 꿈 속을 헤맨다. 그 곳에는 두 눈 가득 희망을 머금은 어린 시절의 그가 있다. 현재의 혼돈과 고통의 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극은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을 연장선상에 길게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하나의 연결고리를 갖는다.

  배우들의 몸에서 만들어지는 신체 언어들은 차마 손댈 수 없을만큼 자유롭고, 아름답다. 허공을 향해 쏟아지고, 이내 부유하는 수많은 언어들. 마음 깊이 감춰뒀던 꿈, 혹은 기억의 파편들이 시간이라는 강을 거슬러 하나 둘 올라온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극 안에 갇혀 안주하지 않는다. 그들의 움직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관객들은 햄릿의 모습을 보는 동시에 가슴 한 켠에 밀어 두었던 자신의 기억들을 꺼내볼 수 있다. 기억으로부터 되살아나는 꿈의 자취들. 우리에겐 언제나 크고 작은 꿈이 있지 않았던가.

  극을 휘감아 흐르는 이상은의 ‘어기야 디여라’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함께 우리 고유의 색이 묻어나 극의 분위기를 더한다. 그녀의 투명한 음색은 마법의 가루를 뿌려놓은 듯 오래도록 귓가를 맴돈다. 그녀의 노랫소리 아래 한껏 발돋움하는 어린 햄릿을 보고 있으려니 까슬까슬한 잔디밭을 맨발로 거닐거나, 혹은 긴 대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한껏 이마를 맞대고 있는 듯 하다. 햄릿, 그의 삶 안에는 바래지 않는 꿈이 있다.

  이번 공연은 연극인과 관객 사이에 소통의 폭을 넓혔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무대에 오른 작품들 모두 ‘인디’, 혹은 ‘반(反)안티’의 개념이 짙다. 그들은 장르, 제도라는 형식적인 틀을 벗어나 자유로운 몸부림을 통해 관객들과의 공유점을 찾기 때문이다. 이 공연을 계기로 보다 다양한 무대 공연이 관객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