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 힘겹게 몸을 비틀어가며 힘겨운 걸음을 내딛었던 영화 ‘오아시스’의 중증장애인 공주도, 마라톤을 통해 인생을 재발견한 영화 ‘말아톤’의 자폐아 초원이도 타인에게 원했던 것은 매우 소박했다. 자신을 향한 편견 없는 눈빛과 한 인격체로서의 관심 단지 이게 전부였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듯 장애인들은 사회의 편견으로 아파하고 괴로워하지만 그 상처는 누군가의 관심과 따스한 손길로 금새 치유된다.

  지난달 20일 제25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일부 장애인들은 “겉치레적인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진심으로 자신들을 이해하는 행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진심으로 자신들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단체에서는 ‘비장애인의 장애인체험’과 ‘관련 영화 감상하기’ 등의 진부적인 행사 내용을 과감히 삭제하고 장애인의 현실을 바로 보는 방향으로 행사를 마련했다. 도내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 되어 축제를 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정작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제주대는 잠잠하기만 하다. 아직 보름이나 남은 학교축제인 ‘대동제’에 대해 공동의 관심사를 모으고 목소리를 모을 때 장애학생을 좀 더 이해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장애인의 날’은 외면받기 일쑤다.

  제주대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의 수는 통계된 바 48명. 무려 238명이 다니고 있는 대구대에 비하면 적은 수지만 학창 시절 한 학급의 학생 수와 맞먹는 이 숫자는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문제연구회 ‘바른누리’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상영했고 장애인인권대책위원회에서는 ‘장애인의 날의 의미를 바로 알자’는 취지의 대자보들을 단과대마다 붙였다. 장애인을 위한다는 명목상의 장애인의 날이 실제로는 그들을 동정하는 위선의 날이 되고 있으며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서 의미를 새겨보자는 내용들이 다 옳은 말이다. 장애인의 날, 뉴스 일면을 차지했던 장애인들의 시위는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이 차별을 받고 있으며 일년에 단 하루 있는 ‘장애인의 날’도 그들의 울분을 풀어주기에는 역부족임을 말한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을 좀 더 이해하고 그들에게 동정이 아닌 사랑으로 다가가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장애인들의 고충과 그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알아야만 그들의 편에서 장애인의 날을 새롭게 바라보고 접근할 수 있을텐데 학생들은 그 방법을 모른 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안건을 제시했으면 방법을 제시할 차례 아닌가. 대자보에 올린 말이 무색하듯, 올해 장애인의 날도 장애 학생들의 고충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채 일회적인 소모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언제쯤이면 학생들의 관심사가 일만 학생들과의 축제에 대한 설레임에서 나와 조금 다른 이들을 이해하며 느끼는 마음 속의 설레임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될까.

  의미를 갖고 진지하게 대해야 할 날을 별 것 아닌 날로 치부해버렸는지, 너무나도 조용한 학생대표들을바라보면 말문이 막히는 일은 어제 오늘일이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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