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때로 화려하게 치장된 드라마 속 주인공을 동경한다. 그들의 삶은 나의 소박하고 단조로운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을 대면하는 잠시 동안이나마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지리함을 잊고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되어 유쾌해 한다. 그것이 비록 오랜 시간에 걸쳐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기계적인 반응일지라도.

  그러나 최근 ‘드라마보다 극적인 것이 우리의 일상’이라며 쉴새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최근 각 방송사를 휩쓸고 있는 VJ들이다. VJ란 Video Journalist 혹은 Video Journalism의 약자로, 소형(6mm, 8mm) 카메라를 사용해 기획, 연출, 촬영, 편집 등 프로그램 제작의 전 과정을 PD, 개인이 하는 1인 제작 시스템을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VJ’라는 단어는 생소한 단어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들의 저돌적인 행진은 ‘VJ 돌풍’을 가져왔다. VJ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VJ 양성 프로그램이 운영되는가 하면, 각 방송사에서는 ‘VJ 특공대’, ‘리얼 코리아’ 등 VJ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VJ 돌풍’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VJ들은 소형 카메라를 들고 직접 어떠한 현장에 뛰어들어 그 곳의 생생한 정보와 느낌들을 담아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선택한 소재 혹은 현장이 화려한 무대가 아닌, 바로 우리 주변의 일상이라는 점이다. 골목 어귀에 자리잡은 오래된 해장국집 할머니의 인심과 긴장과 기쁨이 교차하는 분만실의 하루, 작은 시골 마을의 운동회 풍경 등 그 소재도 각양각색이다.

  그것은 낯익지만 낯선 우리들의 하루, 해도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할머니, 우리 동네, 내 친구들의 이야기가 여과 없이 펼쳐지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입가에 웃음을 띄게 된다. 바쁜 일상 아래 묻어 두었던 과거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기도 하고, 매일 아침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갔던 거리의 풍경 하나하나가 정겹게 다가온다. 때로는 드라마 보다 극적이고 우연의 연속인 우리들의 삶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VJ들은 어떻게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이처럼 담백하게 담아낼 수 있는 걸까. 무엇보다 VJ들의 참신한 아이템과 치밀한 기획력이 밑바탕을 이룬다. 그들은 우리가 무심결에 스치는 작은 소리와 움직임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따라서 카메라 안에는 VJ들이 발로 뛴 흔적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소방관 아저씨와 퀵 서비스맨을 뒤쫓아 뛰느라 어느 새 가빠진 숨소리가 들어 있는가 하면, 수줍어 하는 노점상 할머니에게 건네는 정감 어린 말들이 있다.

  그들은 단순히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는다. VJ라는 이름이 빛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이웃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는 데 있다. 화려한 포장에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다양한 색을 지닌 사람들과 그들의 공간, 혹은 삶을 따져 묻기에 앞서 감싸 안는다. 그들의 카메라는 바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VJ 돌풍’ 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근 각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VJ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 지금까지 VJ들이 보여줬던 순수한 의미의 기록들이 자칫 퇴색되지 않을까라는 염려 때문이다. 시청률과 같은 물리적인 현상이나 여건에 쫓겨 중첩되는 이야기들을 반복적으로 나열한다거나 의도적인 상황들을 곁들여 희화화시킨다면 그 기록들은 결국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보는 이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지 못함은 물론이고, VJ라는 이름이 지금의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연과 의도의 경계선에 놓여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진행되는 우리의 일상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디에서도 똑같은 것을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색을 지닌다. 바로 그러한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포착해 내고, 기록하는 이들이 VJ, 그들인 것이다.

  아름다움, 기쁨, 행복……. 이 단어들은 결코 드라마 속 주인공들에게나 부여되는 치장품이 아니다. 바로 당신과 나,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이 서 있는 일상 안에 꼭꼭 숨겨져 있을 따름이다. 잠시 잊고 있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사람들 VJ, 그들의 거침없는 도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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