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선물 느끼도록 노인요양시설 세워달라”

▲ 제주대에 노인요양시설을 지어달라며 땅 15만4000㎡을 기부한 김두림(85세) 할아버지가 기부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골고루 나누며 살겠다는 김두림씨의 아름다운 기부

 

‘국내 최고의 노인요양시설’을 지어달라며 제주대에 땅을 기부한 사람이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주인공은 제주 출신 수의사 김두림(85세) 할아버지. 그는 지난 5월 25일 제주대에 땅 15만4171㎡(약 4만6000여평)을 기부했다. 돈을 받고 팔았으면 많은 돈을 거머쥘 수 있었을 땅을 선뜻 대학에 기부한 사연이 궁금했다.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목장 입구에서 그를 만나 차를 얻어 타고 오솔길을 달렸다. 편백나무와 삼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나자 나무들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가 드러났다. 150년 이상 된 소나무가 100그루 가까이 심어져 있었다.

김두림 할아버지가 처음 이곳을 인수한 것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도지사를 지낸 고(故) 이승택씨의 친척인 김두림 할아버지는 “팔기 아까운 땅이니 관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다.

“처음 이곳은 온통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어서 기어서 지나가야 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 보니 제주시내가 한번에 다 보이고 한라산이 손앞에 있는 것처럼 깨끗하게 보였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에 감동해 이곳을 인수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후 목장을 인수한 그는 30여년 동안 땅을 가꾸며 사슴을 키웠다. 그런 그에게 자연은 예기치 못한 선물을 줬다. 그를 포함해 이곳에서 일하던 인부들의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

“인부들이 폐결핵이나 당뇨, 고혈압 환자가 많았는데 이곳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병이 낫는 겁니다. 이곳이 워낙 공기와 물이 좋고 인부들이 더덕 등 약이 되는 것들을 자주 먹어서 건강이 좋아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피톤치드’라는 성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물질이다.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살균작용과 함께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좋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김두림 할아버지가 기부한 땅은 움푹 파인 분지지형이다.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이러한 지형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

“전국에 삼림욕을 하는 곳은 많지만 바람이 불면 피톤치드가 거의 날아가 버리죠. 하지만 이곳은 움푹 파여진 지형이라 피톤치드가 오랜 시간 머물러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폐병 등을 앓던 인부들이 이곳에서 살며 저절로 병이 낫게 된거죠.”

'자연의 선물'인 이 땅을

대학이 영원히 거꿔주길

그는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더 이상 자연이 준 선물을 혼자 독점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이 땅을 대학에 기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선물’을 느끼길 바란 것이다.

“사람들은 공짜로 넓은 땅을 기부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개발을 위해 나무를 베어내면 이 땅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누구든 이곳의 도움을 받아 건강해질 수 있도록 대학이 영원히 가꿔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함께 그가 넓은 땅을 선뜻 기부하기까지는 제주에 대한 애착도 영향이 컸다. 제주 출신인 그는 제주공립농업학교, 전라남도 축산시험장을 거쳐 광주에서 ‘김수의과 병원’을 17년간 운영했다. 고향을 물으면 항상 ‘제주도 출신’이라고 당당히 밝힌다는 그는 광주에서 오랜 시간 살며 서러움도 컸다고 했다.

“광주에서 ‘제주도 섬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어요. 보통 서러운 게 아니었죠. 그러는 동안 제주를 잊은 적이 한번도 없어요. 서러움도 많았지만 저에게 ‘제주도 사람’이라는 이름이 걸려있었기에 평생을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그를 하늘이 도운 것일까.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

그는 축협조합장 등을 지낼 1970년대 당시 세계은행이 ‘소 한 마리 당 1500평의 땅이 있어야 광주에 젖소지구를 만들 차관을 주겠다’는 말에 아등바등 돈을 끌어모아 2만평정도 밭을 샀다. 그 후 그 땅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게 돼 땅값이 크게 올라 순식간에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됐다. 그 돈으로 현재 그가 제주대에 기부한 땅도 인수할 수 있었다.

“나랏일 덕에 돈을 벌었으니 이제 제가 베풀 차례죠. 이 땅을 누군가 영업적으로 사간다면 나무를 쉽게 베어내고 훼손시켰을 거에요. 자연의 선물인 이 땅을 그대로 보존해 많은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지길 바라는 것이 저희 가족 전체의 염원입니다.”

그는 이곳에 노인요양시설을 짓고 워킹코스와 운동시설도 마련하길 원했다. 요양시설이 단순히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소가 아니라 노인들이 여생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버타운이 아닌

서민을 위한 시설 염원

“자연이 만든 ‘피톤치드 보호막’ 속에서 병도 낫고 노인들의 고독병도 나았으면 좋겠어요. 이곳에서 노인들이 산책이나 운동을 즐기며 모든 아픔을 씻어나가길 빕니다.”

이와 함께 그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누구나’ 이 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요양시설이 지어지는 것이다.

“실버타운처럼 영리목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됩니다. 건물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비용을 받고 서민들도 쉽게 들어와서 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돈 많은 사람들만 자연의 혜택을 받게 된다면 제가 땅을 ‘기부’한 의미가 사라질 겁니다. 부자 노인이든 가난한 노인이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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