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육식주의다. 늘 밥상에 고기가 빠지면 어딘가 허전하다. 덕분에 12살 꼬마 용희는 ‘옆으로 성장’을 계속해 갔다. 사실 기억을 되돌려보면 그렇게 심각할 정도의 비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통통한 볼 살이 귀엽기까지 했다. 그러나 꼬마 용희는 그 통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죄도 없는 삼겹살구이를 탓하며 ‘다이어트’를 선포했다. 한창 성장기였음에도 밥 먹던 양을 반으로 줄이고, 집에서 삼겹살을 먹을 때면 방안에 꽁꽁 숨어있기도 했다. 덕분에 내 키는 160cm다.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며 마음껏 밥을 먹은 여동생의 키가 173cm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어째서 통통함을 걱정하게 된 걸까?

그 무렵 TV에서는 ‘진실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이색적인 소재의 주인공들이 등장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내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TV를 틀었을 때 나왔던 출연진은 10kg 이상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TV에 비춰진 그들의 모습은 단순히 건강함을 되찾았기에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돼지 같았던 예전의 모습을 죄스럽게 생각하는 듯 했다. 다른 패널들은 그들이 건강을 되찾았다는 사실보다 뚱뚱했을 때에는 ‘못생긴 돼지’였던 사람이 살을 빼서 ‘S라인’이 됐다는 사실을 더 칭찬했다. 내 볼 살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살이 찐 것이 나쁜 것인 마냥 죄책감이 들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원한다. 때문에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성형수술을 한다. 사람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하기에는 요즘 사회가 너무 이상하게 돌아간다. 마른 여자도 저녁만 되면 배가 고파도 밥을 굶는다. 거식증에 걸려서 살이 빠진 가수 코요테 신지를 보며 모두들 부러워한다.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왜 사회가 이상해진 것인가?

7ㆍ80년대 미인은 자연이 낳은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90년대 이후부터는 서구영화의 영향으로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이 미인으로 여겨졌다. 포토샵 등 프로그램이 개발되며 여성의 몸은 비현실적으로 조작됐다. 요즘에는 일명 ‘골프채 몸매’라 불리는 빼빼마른 몸에 풍만한 가슴을 가진 몸매가 선망의 대상이다. 자연적으로 갖추어 지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체형이다. 여성들은 미디어에서 그러한 이미지들을 접하며 마른 허리를 더욱 조이고 가슴수술을 한다.

우리 주변에도 ‘S라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 원해서 예뻐지고 싶은 것인가? 미디어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귓가에 속삭인다. 예쁜 연예인처럼 ‘S라인’이 아닌 네 몸은 돼지 몸뚱이라고. 우리는 어쩌면 아름다움을 강요받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지 한번쯤 고민해보자.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