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작 - 양혜은(국어교육 4)

손에 잡히는 대로 옷가지 몇 벌을 여행 가방에 구겨 넣었다. 지갑과 여권 정도만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건물 현관에서 관리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 아침에 별 일 이라는 듯 말을 건넸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못 들은 척 무심히 지나쳤다.

거리는 제법 쌀쌀했다. 아직 어스름이 깔려서였을까. 매일 매일 지나가던 이 거리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 생경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으슬으슬 기분 나쁜 오한이 온 몸으로 밀려왔다. 머플러와 코트자락을 다시 추스리고 여행 가방 손잡이를 꼭 쥐었다.

공항의 터미널은 아직 한산했다. 항공사 직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공항에서 밤을 지새운 노숙자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 남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인종도, 나이도 가늠할 수 없는 묘한 인상이다. 보라색 가디건 위에 붉은 빛 담요를 걸치고 한 손에는 살 나간 무지개 우산을 들고 있었다. 어쩌면 전형적인 노숙자의 행색이다. 그러나 그의 눈만은 유난히 깊고 시리도록 푸르다. 그러나 불안하고 공허했다.

일 년 전, 한국으로 가는 그의 눈빛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때 그를 혼자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다. 기다릴게. 그의 마지막 말만이 나의 귓가를 맴돈다.

비행기 안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단체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끊임없이 귀 속을 파고드는 한국말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누군가 송곳으로 왼쪽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찔러 대는 듯, 편두통은 더욱 더 심해졌다. 승무원에게 얻은 상비약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창가 좌석에는 대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눈빛이 반짝 거린다.

그와 나도 딱 저만 할 때 비행기를 탔었다. 우리는 천사원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행운아였다. 적어도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프랑스로 유학가는 대학생 언니에게 우리를 맡기며, 글라라 수녀님은 내 목에 옥색 묵주를 걸어 주었다.

“경아, 은수 오빠 손 놓지 말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았지?”

“응.”

수녀님의 한숨과 눈물의 의미도 모른 채, 비행기를 탄다는 것에 마냥 설레었던 다섯 살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름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마냥 신기하여 한참을 주절 거렸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나도 곧 시들해져, 입을 다물었다.

“미수야, 아직도 안 잤어? 이리와, 엄마가 안아줄게.”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물끄러미 창가를 바라보고 있던 아이를 품 속에 안았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뜻밖에 빙그레 웃는다.

“몇 살이야?”

“여섯 살.”

아이는 손을 내밀어 내 뺨을 쓰다 듬었다.

“우리 미수가 옆에 앉은 언니가 좋은가 봐요. 죄송해요.”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아이의 스스럼없음이 너무도 생경했다.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 조그맣고 발그레한 아이의 손은 보드랍고 따뜻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아이의 충만함은 묘한 질투감에 휩싸이게 하였다. 가만히 맑고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내 안의 상처받은 영혼이 고개를 들었다.

집 안은 늘 쿠키 굽는 냄새로 가득했다. 온 가족이 거실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으면 엄마가 접시 한 가득 아몬드 쿠키를 내어오곤 했다.

그 날은 근처에 사는 친척들이 다 모여 집안이 떠들썩했다.

“얘가 한국에서 온 아이야? 남자 아이는 어디 갔어?”

“어머...얘는 웃지도 않네.”

“이름이 뭐야? 불어는 할 줄 아나?”

“당연히 못하지.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거 봐요.”

주위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나를 바라보는 푸른 눈들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순간 나는 한국에서 날아온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어 버렸다.

쿠키 가운데 얹어져 있는 아몬드만 떼 내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쿠키 하나를 집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엄마, 맛있어요.”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듯,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엄마는 손님 접대를 하느라 분주하게 부엌을 오갔다. 그 사이 나는 조용히 다락방으로 숨어 들었다. 2층 다용도실 위로 난 다락방 구석의 조그만 벽장. 이 곳에 숨어 있으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겠지. 뜻 모를 말, 낯선 냄새,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이 컴컴한 벽장 뿐이었다. 주머니 속에 있던 옥색 묵주를 굴려 보다 컴컴한 벽장 안에서 잠이 들었다.

수녀님이 ‘경아, 경아’ 하고 불렀다. 수녀님을 찾아 맨발로 뛰어 나갔다. 굳게 잠겨진 천사원 철문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저 멀리 수녀님이 서 있다. 목이 터져라 불러 보지만 수녀님은 더욱 더 멀어지고 만다.

벽장이 열렸다.

“경아.”

애처러운 눈빛으로 나를 불렀다. 오빠는 벽장에서 나를 꺼내 안았다.

“한참 찾았어.”

오빠를 보자 그제서야 눈물이 터져 나온다. 은수 오빠는 천사원에서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였다.

“어디 갔었어? 오빠가 없어서 너무 무서웠어.”

그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나를 품에 안고 벽장 안을 바라보았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벽장 안과 나를 번갈아 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안그럴게.”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이불 속을 비집고 들어가 그의 품에 안겼다. 따뜻하고 고요했다.

“오빠, 어젯 밤 너무 무서웠어.”

“또 무서운 꿈 꿨어?”

“응...”

“할머니가 거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래서 내가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내 훌쩍거리기 시작해 말을 잇지 못했다.

“오빠한테 오지 그랬어.”

“그러려고 했는데, 몸이 안 움직여졌어.”

가만히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머리를 쓸어 주었다.

“괜찮아. 이제 오빠가 옆에 있으니까.”

기류 변화에 비행기가 다소 흔들렸다.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아이팟을 꺼내려고 가방을 열다가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정말 짙푸른 바다네요.”

아이 엄마가 발 밑에 떨어진 사진을 주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내 준 사진이었다. 보고 싶다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모니터가 흐릿해질 때까지 멍하게 바라보았었다. 한 발짝만 더 가면 끝을 알 수도 없는 바닥까지 곤두박질 칠 것 같은 절벽이었다. 그 앞으로 짙푸른 바다만이 펼쳐져 있다.

그 때라도 답장을 보냈어야 했다. 나도 보고 싶다고.

M이 초대권 2장을 흔들며 강의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준다. M은 어제 보았어도 10년 만에 재회한 것처럼 뜨겁게 포옹하는 남자였다.

“앨리스! 오늘 저녁 퐁피두에서 설치미술 기획전 하는데 보러 가자. 그림보고 부끼느리에서 화집도 찾아보고.”

“미안해. 오늘은 안 되겠어. 선약이 있어.”

“이런. 어렵게 초대권을 얻었건만. 그런데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온거야? 누구와 약속한거야? 나를 두고 바람 피는 건 아니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오빠 만나기로 했어. 오늘 여행에서 돌아온대.”

“같이 만나면 되잖아.”

“다음에. 오빠가 피곤해할 수도 있고.”

못내 아쉬워 샐쭉거리는 M을 보내고, 급하게 몽파스나스 역으로 향했다.

거리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파업 시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버스는 완전히 거북이 걸음이었다. 조바심이 나서 자꾸 시계만 들여다 보았다.

가방 안에서 거울을 꺼내 들고 붉은 립스틱을 발랐다. 이내 휴지를 꺼내 슥 닦아 버렸다. 주머니 속의 립스틱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결국 립스틱을 다시 발랐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약속시간에 30분이나 늦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가파른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찼고, 평소 신지도 않던 하이힐 때문에 발은 욱신거렸다.

“경아!”

멀리서도 단박에 알아보고 내게로 달려왔다.

“하이힐신고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여자가 어디 있어?”

“아니, 늦어서.”

그가 힘껏 안아 주었다. 그의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보고 싶었어.”

“나도.”

“예뻐졌네.”

괜스레 부끄러워져 그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석 달 전 새하얗던 피부는 검게 그을렸고, 턱 선은 더 날렵해져 있었다. 그의 눈빛도 전에 없이 활기가 느껴졌다.

스튜디오를 옮기고 처음으로 그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였다.

“스튜디오는 언제 옮겼어?”

“오빠가 여행 간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네가 좋아하는 샤또 마고.”

그는 큼직한 카메라 가방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 건네 주었다.

“카메라 가방에서 와인이 나오네. 누가 사진 찍는 사람 아니랄까봐. 이렇게 비싼 건 왜 사와?”

“선물. 너랑 같이 마시려고 무리를 했지.”

그는 늘 소년처럼 수줍게 웃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고, 그는 한참을 스튜디오 곳곳을 둘러보았다.

“좋은데. 아늑하고.”

잠시 정적이 흘러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의 조그만 액자에 머물러 있었다. M과 학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표정이 어두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네가 얘기했던 그 친구구나.”

“응...”

“사랑해?”

“응...”

“...”

“나는...?”

“...”

무거운 침묵 속에서 애꿎은 크림소스만 계속 저어대고 있었다.

“오빠! 이리 와. 준비 완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애써 큰 소리로 오빠를 불렀다. 그가 좋아하는 야채스튜와 크림소스 닭고기 요리였다.

“스페인은 어땠어? 작업은 잘 됐어?”

“저녁 먹고 보여 줄께.”

저녁 먹는 내내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소파에 앉아 그가 사 온 와인을 마셨다. 나는 미니 오디오의 전원을 켜고, 부엌을 오가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경아. 그러지 말고, 여기 앉아봐. 할 말 있어.”

“알았어. 그런데 오빠가 할 말 있다고 하면 괜히 무서워져.”

오빠의 가라앉은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한국으로 돌아갈까 해. 이번에 같이 작업했던 다미앙 선생님이 한국에 있는 제주현대미술관 개관기념 그룹전에 초청되셨어. 스텝으로 참여해도 좋다는 권유를 받았어. 전시회가 끝나면 일자리도 찾아보고, 친 부모님도 찾아볼 생각이야.”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까닭 모를 배신감마저 들었다.

“언제 돌아오는데?”

“글쎄...아직 잘 모르겠어.”

그의 대답에 목안에서 뜨거운 것이 불쑥 올라왔다.

“안가면 안 돼?”

“....”

“가지마.”

“...”

에릭은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바라 볼 뿐이었다.

“같이 가자.”

“우리가 왜 한국에 가야 하는 거야? 우리가 왜 이렇게 밖에 만날 수 없었는지 정말 모르는 거야? 오빠가 지금 가면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다고 해도 갈 거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를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가야해.”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한국에 안 가! 가고 싶지 않다고!”

“기다릴게”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 더 이상 그의 마음을 돌리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눈물이 핑 돌았다. 좀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들썩이는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었다. 그의 심장소리와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내 뺨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키스해도 돼?”

“...”

그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에 나의 시선이 흔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의 뺨을 쓸어 내리며 또 다시 눈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멈칫거리며 내 이마와 눈에 닿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댔다.

칼라부르니의 <누군가 내게 말했지>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말하네요. 우리네 삶은 덧없는 것이라고

장미가 시들어 버리듯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고 사람들이 내게 말하네요.

이 망할 시간은 우리가 슬픔을 껴 입고 살게 한다고.

그런데 누군가 내게 말했어요.

당신이 아직 날 사랑하고 있다고

당신이 아직 날 사랑하고 있다고

누군가 내게 말했어요. 설마....그럴 수도 있을 까요.

깜빡 잠이 들었다가 기내식 카트가 지나가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귀찮기도 하고 입맛이 없어 다시 눈을 감으려는데 아이 엄마가 말을 걸었다.

“안 드세요?”

“아...배가 고프지 않아서요.”

“그럼, 좀 있다 와인 한 잔 할래요?”

더 이상 거절하기가 머쓱하여 알았다고 했다. 아이는 기내식을 먹고 배가 부른 지, 금세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아이 엄마는 눈을 찡긋했다.

“괜찮죠?”

“네...”

“저는 서정윤이라고 해요. 제 생에 첫 홀로서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랍니다.”

“경 미셸 주안입니다.”

가볍게 통성명을 나누고, 그녀가 와인을 따라주었다.

“프랑스에는 무슨 일로 왔다 가세요?”

“아...저는 파리에서 살아요.”

“그렇구나. 부럽네요. 파리에서 살면 어때요?”

“글쎄요. 제가 다른 곳에 가볼 기회가 별로 없어서. 어디든 비슷하지 않을까요? 여행과 일상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요”

“저에게는 파리라는 곳이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아요. 통장 잔고 탈탈 털어 아이와 함께 날아 왔었죠. 이혼하고 도망치듯 떠나 곳 이었는데, 이 길 위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할까? 파리 근교에 스튜디오 하나 얻어 놓고 매일 그림만 보러 다녔어요. 그 흔한 에펠탑 한번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그림은 실컷 봤어요.”

“백 마디 말 보다 한 폭의 그림이 더 큰 위안이 될 때가 있죠.”

“우리 뭔가 통하는 게 있는데요.”

정윤이 빙그레 웃었다.

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면 그와 함께 로트렉 미술관으로 향하곤 했다. 로트렉 미술관은 부모님 댁이 있는 툴루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 고풍스런 적벽의 건물로 가득 찬 알비 시에 다다른다.

로트렉의 그림 속 인물들은 언제나 고독했다. 삶의 고통에 찌든 창녀가 몽마르뜨 변두리 선술집 구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그녀의 텅 빈 눈빛은 상처받은 우리의 영혼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미술관에서 로트렉의 그림을 보고 뒤뜰로 나가면 마을을 관통하는 타른 강을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 보았다.

“내가 왜 로트렉을 좋아하는 지 않아? 로트렉의 그림을 보면 내 안의 추한 모든 것들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곤 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로트렉은 너를 사랑해도 된다고 말해줄 것 같아.”

“...”

그의 눈에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눈물을 닦아 주려는데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그의 파르라니 떨리는 손과 괴로운 눈빛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까, 그 사진 참 멋있던데. 어디서 찍은 거예요?”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정윤이 물었다.

“부산의 태종대래요.”

“직접 찍은 줄 알았어요. 혹시 사진 작가이신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제가 찍은 것은 아니지만, 사진 작가가 찍은 것은 맞네요.”

“그 작가분은 어떤 분이세요?”

“음...사랑하는 사람이예요.”

생전 처음 본 여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 얘기를 하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음, 어쩐지...”

그녀가 웃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매일 매일이 전쟁 같았다. 그가 그리우면 그리울 수록 더욱 더 스스로를 괴롭혔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바쁜 일상만이 그를 잊고 그리움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학회지 논문을 쓰거나 교수님 연구실에서 책을 정리했고 주말에는 퐁피두에서 인턴으로 일을 했다.

불면증과 편두통의 시작도 아마 이 때부터였을 것이다. 설핏 잠이라도 들면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며 울던 부산역의 모습과 그의 사진 속 태종대의 짙푸른 바다가 교차하였다. 꿈에서 깨면 좀처럼 다시 잠들 수 없었다.

녹초가 되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스튜디오 현관 앞에 M이 담배를 물고 앉아 있었다. 거의 한달 만에 만난 M은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무슨 일이야?”

“전화는 왜 안 받아?”

“말을 해야 알 것 아냐.”

대답할 틈도 없이 속사포처럼 쏘아 붙었다. M은 부쩍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 그가 안쓰러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알잖아. 요즘 많이 바빠.”

뻔한 거짓말을 M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의 쓸쓸한 눈빛을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알았다.

“오빠 때문이니?”

“모르겠어.”

“정말 대단한 남매구나.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거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럼 어떤 식으로 말할까? 더 이상 모른 척 넘어가는 것도 힘들어.”

“다음에 얘기하자.”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M이 손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 손 놔!”

갑자기 나를 복도 벽으로 밀어 넣고 입을 맞추었다.

“무슨 짓이야?”

그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미셸...”

M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안되겠다. 우리 헤어지자.”“...”

M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헤어지지구!”

 

헤어지자는 채근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으로 간 후에 연락 한번 하지 않았어. 널 사랑하지 않아.”

“연락을 하든 안하든. 그가 날 사랑하든 안하든, 내가 그를 사랑해!”

“미셸. 너 진짜 잔인하구나.”

배신감과 모멸감으로 가득 찬 M의 쓸쓸한 눈빛과 뒷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날이, 내 생애 처음으로 오빠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날이었다.

고양이 라니의 눈빛만이 어두운 빈방을 비추고 있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은 라니 밖에 없었다. 라니의 새하얀 털에 얼굴을 묻었다.

“어디 아파요?”

편두통이 자꾸만 심해져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나 보다. 계속 신경이 쓰였었는지 정윤이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니요, 머리가 좀 아파서. 괜찮아요. 오래된 습관같이 익숙한 편두통이랍니다.”

“오래된 습관이라...”

“그럼 그 작가 분 만나러 가는 길이신가요?”

“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표정이 아니잖아요.”

“너무 늦지는 않았나 걱정이 돼서요.”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너무 오랫동안 그의 마음을, 나의 마음을 외면했다. 왜 진작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얼마나 그를 더 아프게 하고서야 그에게 돌아가려 했던 것일까. 그는 아미 지쳐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사고 소식을 듣고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어쩌면 태종대를 사진에 담고 서울에 올라가는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부모님을 찾아 전국을 누비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괜찮나요? 대체 얼마나 다친 거예요?”

“아직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수술 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답니다. 경이 씨가 오셔야 할 것 같아요. 경이 씨가 오면 더 힘을 내겠죠.”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끝내 그를 외면했던 내가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 때문이었다. 나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가기 위해 일단 학교 일을 정리했다.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연구실을 나오고 있었다. M이 복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S가 여기 있다고 해서. 얘기 들었어. 커피 한

잔 할 시간 있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한국으로 가는 거니?”

“응. 집에 가는 길에 비행기 표 예약할 거야.”

“그렇구나. 며칠 동안 혼자 오르세에 갔었어. 미친 놈처럼 37전시실에서 하루 종일 서있었지.

「침대」속의 두 창녀들처럼, 그렇게 서로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이 사랑인 것인 지도 모르겠다.

 

네가 왜 그 화가를 좋아했는지 조금 알 것도 같

아. 내가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하긴 했나 보다.”

“...”

“걱정마, 그는 괜찮을거야. 미안해. 좀 더 빨리 보내주지 못해서. 행복해라.”

M의 눈을 바라 보며, 로트렉 그림속의 두 창녀가 나누는 눈빛을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미안해. 고맙고.”

그 말 밖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정윤이 아무 말 없이 내 잔에 와인을 채워준다.

“늦지 않았을 거예요. 경이씨는 결국 용기를 냈어요.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경이씨가 얼른 와주길.”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주위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이미 터져버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가 가만히 손수건을 건넸다.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경이 씨, 힘내요. 경이 씨가 힘을 내야 사랑하는 사람도 힘을 내죠. 그의 곁으로 가면 다 괜찮아질 거예요. 주제 넘은 말이지만, 가서 엄마도 꼭 찾구요.”

정윤이 옆에서 자고 있던 미수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정윤, 아직은 그럴 용기까지는 못내겠어요. 가끔은 모든 게 날 버린 엄마 때문인 것 같아, 용서가 안돼요.”

“경이씨, 아이를 낳아보니 엄마 마음이란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더라구요. 엄마도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잖아요. 그렇지만 엄마 마음은 다 똑같아요. 한 순간도 자식을 잊는 엄마는 없어요.”

“...”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아 엄마의 마음이란 것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엄마 마음은 다 똑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이를 버리는 엄마가 있고 버리지 않는 엄마가 있으니까. 다만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왜 나를 버려야만 했는지 궁굼했을 뿐이었다.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음 해요.”

정윤의 눈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내 안의 웅크린 영혼과 마주 설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태종대의 짙푸른 바다를 보면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에게로 돌아가는 딱 20년이 걸렸다. 멀리도 돌아 돌아 여기까지 왔다.

‘제발 기다려줘.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줘’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승객 여러분, 인천국제공항 착륙을 위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좌석을 바로 하시고, 안전 벨트를 매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 벨트를 매고, 반쯤 내려져 있던 창문을 활짝 열었다. 도시는 이미 어둠이 걷히고 새벽 어스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잠시 후 새벽 어스름은 붉고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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