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작 - 문소미(서양화전공 4)

멈추지 않는 눈물이 있다면 어떨까? 눈물이 1초에 삼만 방울 씩 떨어진다면? 그러면 눈꺼풀이 한 번 깜빡 거릴 때 마다 십만의 눈물방울들이 얼굴을 적시겠지, 슬프고 괴로운 이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동안 울어서 눈물로 방안을 가득 채우고 슬픔과 함께 둥둥 떠올라 자신의 눈물 속에서 헤엄을 쳐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눈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걸까?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는 걸까?

뭐 어쨌든.

내가 그 편지를 처음 발견하게 된 것은 일주일하고도 반나절 전이었다. 나는 휴일인 주말을 맞아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았고, 할머닌 나에게 “여긴 너무 갑갑해, 파란 하늘이 보고 싶구나.”하시면서 모네의 화집을 빌려다 달라 부탁하셨다. 그래서 일주일 전 쯤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미술 서적 코너에서 모네를 찾고, 그의 화집 중에서도 푸른 하늘이 그려진 ‘바닐라 스카이’와 ‘포플러 나무’시리즈의 연작이 있는 책을 골랐다. 모네의 하늘은 눈이 부실 만큼 푸르고 아름다웠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빛들을 뭉쳐놓은 것 같았다.

내 이름이 모네인 것도 실은 할머니가 모네의 그림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렇게 붙여주신 거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미대에 다니는 나는 내 이름이 모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그 날 본 모네의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할머니께 전해드릴 그 책을 가슴에 안고 열람실을 돌아 나와 소설 코너 쪽으로 갔다. 한참을 훑어보다가 문득 눈길이 가는 책 한 권을 발견 하였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어째서 제목이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일까?’하고 생각하면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씁쓸한 아몬드 향내는 언제나 그에게 짝사랑의 운명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6월의 마지막 달리아 향기를 풍기는 다른 도시로 나왔다. 그곳은 젊은 시절에 과부들이 5시 미사를 마치고 나와 어둠 속을 줄지어 걷고 있던 모습을 보았던 거리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눈물을 보지 못하도록 길을 건넌 사람은 과부들이 아니라 바로 그였다. 그는 그 눈물이 한밤중부터 흘러내린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51년 9개월 4일 전부터 참고 있던 눈물이었다......’

 

왜 누구나 사랑을 할까? 한 남자가 오직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51년 9개월 하고도 4일을 기다릴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일까?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할까? 물론 소설일 뿐이겠지만 정말이지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내 침대 위, 콜레라 시대의 사랑 밑에서, 우주의 모든 것과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운 동시에 엄청나게 혼자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난생처음으로, 사랑 같은 단어에 의문이 들었다. 살기위해 요구되는 그 많은 일을 다 해야 할 만큼, 51년 9개월 하고도 4일을 상사병으로 고통 받아야 할 만큼, 사랑이 가치 있는 것일까? 정확히 무엇 때문에 사랑이 그만한 가치를 갖는다는 걸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똑바로 앉았다. 그리고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는 불가능한 사랑에 빠진 연인의 역할을 자기와 페르미나 다사에게 남겨두곤 했다. 또 다른 밤에는 고통의 편지를 쓰곤 했고, 그 편지는 나중에 조각이 되어 그녀를 향해 쉬지 않고 흐르는 물속으로 흩어지곤 했다......’

 

다음 책장을 넘겼다. 그 때였다. 하얀 종이봉투가 내 무릎 위로 떨어졌다. 그것은 편지 같아 보였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수신자도 발신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그 봉투를 그냥 둘까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종이위엔 편지글이라 할 수도 없을 만큼의 짧은 한 마디가 쓰여 있었다.

‘나의 눈물을 그려주세요.’

그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이걸 누가 여기 끼워 놓았지? 이 책을 읽은 사람일까? 누구에게 보내려던 것일까? 왜 눈물을 그려 달라는 거지? 눈물의 이유가 뭘까?

울고 있는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어느새 플렌티노 아리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혹은 그녀도 그처럼 가혹한 짝사랑의 운명을 타고 난건 아닐까?

다시 잠을 청해보려 했으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마구 뒤엉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노란 잠수함을 타고 있었다. 잠수함 안에 나 있는 동그란 창문으로 바닷속 세상을 구경했다. 신비로운 산호초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수백 마리의 물고기 떼들. 그들은 너무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여 마치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저기 멀리서 둥둥 떠다니는 종잇조각 들이 보였다.

‘사랑이 어떻’ ‘가끔씩은’ ‘눈동자를’ ‘거라고 생각 하고’ ‘불쌍한 저를’ ‘한번만’ ‘악몽같은’ ‘당신의’ ‘당신이’ ‘여길지 모릅니’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달랜답’ ‘기다립니’ ‘사랑하는’ ‘당신의’‘다!’ ‘아리사’ ‘그대의’

갈기갈기 찢겨진 아리사의 편지들은 각자의 단어들을 품고 물결을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사랑하는 모네에게.

나는 지금 병실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그것도 앞에 건물 때문에 거의 반쯤은 가려진) 하늘을 바라보면서 네게 편지를 쓰고 있단다. 언제 다시 내가 너의 이름을 오늘처럼 또렷이 불러 보겠니. 점점 모든 게 낯설고 무섭게 느껴지는구나. 하늘은 왜 푸른색인지 기억이 안 난다. 어젯밤엔 자려고 누웠는데 ‘산은 산이요, 물은 셀프다’라는 엉뚱한 말로 나를 웃겨주던 네가 생각나 한참이나 웃었지 뭐냐. 벌써 네가 그립구나, 모네야. 너와 함께 있을 때조차 네가 그리웠단다. 그게 늘 내 문제였어. 곁에 있는 것조차 그리워해서 늘 그리움에 파묻혔지. 뭐라도 말하고 싶어. 너에게 내 모든 걸 들려주고 싶어. 내 이야기들을. 하지만 어디서 부터시작을 해야 할까?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일까?

 

“예술에서 창조하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느낌이다. 예술에서 시발점과 주요 역할은 느낌에 속한다. 여기서 생각이란 순수한 의미로서의 부수적이고 보조적일......”

N선생님은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에게 예술가로서의 자기 역할창조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너무나 열정적인 나머지 안경이 거의 반쯤 흘려 내려 코끝에 간신히 걸쳐진 것도 못 느끼시는 것 같았다.

N선생님은 칼로 자르듯이 그리고 톱니바퀴가 맞물려 들어가듯이 눈에 보이는 것들의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예술도, 사람도. 그리고 판단력과 탁월한 말재주를 가진 내 친구 A도 설명을 잘 해낸다. 종종 그것은 명쾌하고 잘 짜진 작품과도 같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느낄 때도 많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자 방식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연하게 설명을 잘 못 하는 나는 기본적으로 뭐든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하려고는 하지만 설명하는 재능이 부족하고, 그리고 애당초 그것은 모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N선생님의 열정적인 강의가 끝나고 오랜만에 A와 난 소녀처럼 학교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떨어지는 가을 낙엽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본 A의 얼굴은 전보다 더 수척해져 있었다.

“무슨 일 있니?” 내가 물었다.

“아냐, 그런 거 없어.”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라는게 뭔가 물어 보는 거잖아.”

“눈물을 그려 본 적 있니? ”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야?”

나는 가방 속에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꺼내고 그 사이에 끼워 둔 편지를 그녀에게 건냈다.

“이게 뭐야?”

“열어봐.”

“나. 의. 눈. 물. 을. 그. 려. 주. 세. 요? 대체 이게 뭐야?”

나는 그녀에게 할머니의 부탁으로 도서관에 가게 된 일이며, 우연히 빌린 책 속에서 그 편지를 발견하게 된 일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말해 주었다. A라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장 최선의 방법을 알려 줄 것만 같았다. A는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니까. 적어도 내가 어젯밤 궁금해 잠 못 이루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날 이해시켜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A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예상치 못한 반응 때문이 아니라, 침묵이 괴로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놀랍지 않니?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51년 9개월 하고도 4일을 기다렸다니. 정말이지 굉장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우리가 살아온 날들 보다 곱절은 더 많은 세월이야.”

“.......그러게. 정말 놀랍다.”

“나중에 이 남자는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온 여자의 남편 장례식 날, 그녀 앞에 나타나. 그리고 반백년이 지나도록 지켜온 자신의 사랑을 고백을 해. 진짜 소름끼치지 않니?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워. 아니 실은 잘 모르겠어. 어쨌든 사랑이라는 거 참 대단한 건가봐.”

“......” A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뭔가에 깊이 몰두한 것처럼 머리를 기울인 채 애꿎은 잔디만 한 주먹씩 쥐어뜯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사랑이란 게 뭔지 궁금해 졌어, 그리고 그 편지의 주인도 꼭 찾고 싶어.”

“......안됐어라.” 한동안 침묵하던 그녀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내가 물었다.

“그 남자 말이야, 너무 가엾어. 얼마나 아팠을까.”

내가 A의 옆모습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녀는 울고 있었다.

떨어지는 낙엽들.

떨어지는 눈물들.

흩어지는 감정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울어야 할 사람은 난데......”

 

할머니가 잠이 들고 난 후에야 나는 병실을 나와 혼자 있을 수 있었다. 할머니와 떨어져 혼자 있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혼자 생각할 공간이 필요했다. 병원 로비에 줄지어 있는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한 쪽 벽면에는 커다란 벽걸이 티브이가 걸어져 있었다. 티브이에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는데, 열 살 쯤 돼 보이는 자폐아 소년이 취재의 주인공인 듯 했다. 그는 뭔가 억울하다는 것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울다가 자기 자신을 때리기도 하고, 벽에 머리를 부딪쳐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었다. 짐승의 소리 같은 그 울음은 그의 가족 말고는 어느 누구와도 소통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럴 수 있다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알아보고 싶었다. 지금 그가 울고 있는 이유가 무언지. 무언 갈 원하는데 아무도 알아채 주질 않아서 일까? 아니면 하고픈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가족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을 할 수도 없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였을까?

취침 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은 분주하게 각자의 방으로 흘러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지쳐있는 사람들. 어딘가에 병이 들어 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 멍이 드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병들어 버린 것에 반쯤은 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은 납처럼 무거워져 멍이 더 커지는 것이었다.

어릴 적 나는 왕따였고, 바보였고, 울보였다. 초등학교 이후론 학교에 갈 수 가없었다. 내게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이야기였고, 그것을 들려주시던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읽어주던 책 속에 시나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를 양육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외롭고 고독한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매번 새로운 이야길 요구하는 나 때문에 할머닌 늘 새로운 책들을 찾아 헤매야 했다, 내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수집해야 하는 건 어느새 의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당신의 손녀를 위해 허비했던 시간들을 자신을 위해서 썼더라면. 좀 더 휴식을 취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더라면. 지금보단 더 많은 단어를 기억했을까? 적어도 전화길 꽃병이라 부르고, 당신의 딸인 우리 엄마를 간호사로 기억하는 일 따윈 없었을 텐데.

 

그림을 온통 머리카락처럼 수많은 갈래로 오려내고, 그 다음 날에도 오려내고, 그러다보면 처음에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지도 생각나지 않고 혼자 연못가에 앉아있는 것처럼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격리되어 오로지 나 홀로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내가 그린 그림 뒤에서 내가 하고픈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락가락 더디게 움직이는 손, 종이를 갈갈이 오려서 무작위로 뿌려놓은 패턴들. 그 위에서 선명해지는 색과 모서리. 예뻐라. 수녀복 같은 검정색과 포도 속 껍질색. 아직은 투명한 나뭇잎 그림자들. 지금도 내 앞에는 그 편지 한 장이 놓여 있다.

 

오랜만에 브로콜리 수프를 먹었고, 네가 빌려다준 모네의 화집을 보고 있단다. 새로운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나는 네 할아버지를 생각해. 그의 단정한 눈썹. 옹골진 손톱. 다 내가 아주 아주 사랑하던 것들이었지. 그의 손은 조각을 한 세월만큼이나 단단하고 거칠었단다. 그래서 난 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을 때면 모든 위험한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안전한 기분이 들었어.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언젠가 너도 꼭 느껴보길 바란다. 네 할아버진 날 지켜주었지. 하지만 끝까지 지켜주어야 했었는데 그러질 못했어. 내가 네 할아버지보다 곱빼기로 더 살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니. 우리가 살아야 한다는 건 치욕이야, 하지만 우리 삶이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은 비극이란다. 다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더 많은 단어를 잃어버린대도 그에게 달려가서 말해볼 텐데. 네 할아버지가 보고 싶구나. 죽어서야 가는 그 곳에서도 그가 우리의 결혼반지를 끼고 있을지 궁금해.

 

토요일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이 떠지자마자 학교 도서관으로 갔다.

모네의 화집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반납기 안에 넣고, 2층 소설 코너 쪽을 돌아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꽂혀 있던 자리로 갔다. 편지의 주인이 왔다 갔을 법한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데스크에 앉아 있는 도서관 사서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책의 대출자 리스트를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건 개인 정보라서 공개가 안 됩니다.” 그녀는 나 쪽으론 쳐다보지도 않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사무적인 말투로 대꾸했다.

“흠, 어쩔 수 없군요.”라고 말하고 속으로는, 이 얄미운 호랑나비 개나리 같은 여자야. 라고 말하면서 코너를 돌아 나오려는 찰나, 나는 무엇인가에 충돌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처음엔 벽인 줄 알았는데 그건 사람이었다. 그쪽도 바닥에 쓰러져 겨우 일어나고 있었다. 들고 있던 책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의 주위에는 사방팔방으로 흰 종이들이 나뒹굴었다.

“아, 죄송합니다.”나는 얼른 일어나 그를 일으켜 주었다.

“아니에요. 괜찮으세요?” 그는 몸을 툭툭 털면서 말했다.

“아, 네. 전 괜찮아요.”

그제야 나는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도 나를 보았다. 우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책과 종이들을 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요, 두세요. 제가 주울게요. 하고 한사코 말리는 데도 나는 종이를 주워 모으고 먼지를 털어 그에게 건넸다. 우리는 같이 책과 종이를 수습했다. 그런데 그때 저기 모서리에서 익숙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어?”

그건 내가 찾고 있었던 콜레라 시대의 사랑 2편 이었다. 그럼 혹시 이 남자가 그 편지의 주인일까? 속으로는 천 가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그에게 무슨 말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

“왜요?” 남자가 물었다.

“이 책. 제가 찾던 책이에요. 누가 빌려 간 건지 궁금했는데. 정말 딱 만났네요.”

“아, 그래요? 전 이제 반납하려던 참이에요. 제가 반납하면 그 쪽이 대출하면 되겠네요.”

“......네, 좋아요.”

그는 그 책을 반납기에 넣는 대신 아까 그 데스크에 앉아 있던 사무적인 여직원에게로 가서 반납을 요청하고 하고, 바로 내가 빌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도서관에서 나오면서 나는 그에게 또다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잠시 같이 좀 걸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는 좋다고 했다.

학교 안에 산책로는 떨어진 은행잎이 만들어 놓은 비현실적인 노란빛 때문에 더욱 아득한 느낌을 갖게 했다. 세상은 온통 노랑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인가요?” 그에게 물었다.

“네, 불문과 4학년이에요. 이름은 K. 그쪽은요?”

“전 모네라고 해요. 서양화과고 올해 신입생이에요.”

“아... 좋네요, 스무 살.” 그는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책 읽는 거 좋아 하세요?” 내가 물었다.

“보통 이런 연애소설을 좋아 하죠.”

그는 내 무릎위에 놓인 콜레라 시대의 사랑 2편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런 일이 가능 하다고 생각 하세요?”

“뭐가요?”

“오직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51년 9개월 하고도 4일을 기다리는 일.”

“물론 가능 하죠.” 그는 확신에 차 대답했다.

“그 사람은 한 평생을 고독과 그리움으로 살았을 거예요. 이런 고통스러운 나날을 50년 동안 되풀이 하다니, 바보 같은 짓이에요.”

“......사랑하니까요.” 그는 땅바닥으로 시선을 돌린 채 희고 연약한 소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까 보다도 더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선. 나는 자신을 방비할 수 있는 옷을 입지 않은 것 같은 그 적나라한 얼굴에서 이상한 연민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가 마치 플랜티노 아리사처럼 느껴졌다.

“영화 연출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그의 손에 들려진 ‘영화 연출 론’이란 책을 보고선 내가 한 말이었다. 침묵이 시작될 것 같아 나는 재빨리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그냥 관심정도에요. 프랑스 영화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겼어요. 프랑스 영화 좋아 하세요?”

“아멜리에. 좋아해요.”

“아, 아멜리에! 그러고 보니 모네씨, 아멜리에랑 닮았네요. 그 엉뚱한 꼬마 숙녀, 머리 모양이 너무 귀여웠는데.”

“어, 그러고 보니 그 쪽은 장 삐에르 주네 감독이랑 닮은 것 같아요. 험상궂게 생긴 외모하며.......”

“뭐라 구요?”

“풉, 농담이에요.”

삐에르 장과 나는 학교 정문까지 쉬지 않고 이야기 하면서 걸었는데 나중에 와 생각하니 무슨 얘길 했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몇 가지 프랑스어를 내게 가르쳐 주었을 때, 예를 들면, Bonjour(안녕)를 ‘봉주르-’가 아닌 ‘봉쥬흐-’로 발음해야 한다는 것과, le bonbon(사탕)을 ‘르 봉봉’으로 읽는 다고 말해 주었을 때, 그의 모아지는 입모양 따위가 매우 프랑스 사람 같이 느껴졌으므로, 삐에르 장이란 이름이 더욱 그에게 어울리게 느껴졌다. 그는 간혹 가다 웃고 있을 때조차 울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곤 했는데, 어떠한 상처가 그의 웃음을 가면처럼 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 날 이후, 삐에르 장과 나는 급격하게 가까워 졌다. 매주 토요일이면 도서관에서 그와 만나 책을 읽거나 이야길 나눴다.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어요, 그렇죠?” 내가 물었다.

“......그렇게 보여요?”

“어쩌면 실연을 당했다거나.”

“어떻게 알죠?” 그는 장난처럼 피식 웃으며 대답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웃고 있어도 입꼬리가 안 올라가는지 궁금했어요. 웃어도 눈으로만 웃잖아요. 웃고 있을 때조차 울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건 몰랐죠?”

“난 단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는데......”

“세상에, 말도 안돼요, 이 세상에 울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요?”

“전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어요. 눈물 같은 건 원래 없어요. 울고 싶었던 적이야 있었죠. 하지만 진짜로 눈물을 흘리진 않아요. 꼭 울어야 한다 해도 속으로만 울 거예요. 피를 흘려야 한다면 멍들게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에요. 눈물이 원래부터 없는 사람은 없어요. 눈물은 창피한 게 아니라구요.”

“언제부턴가 난 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고 산 것 같아요. 그저 마음속에만 묻어 두었죠.”

“감정을 묻어 두다니, 무슨 말이에요?”

“아무리 많은 감정이 생겨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거예요. 죽을 만큼 슬프고 괴로운 일이 생겨도 세상 사람들한테는 입을 꼭 다물 거예요. 말해봤지 남의 인생까지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뿐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자꾸 자신의 감정을 묻어두기만 한다면 그건 진짜 당신이 아니게 될 거에요.”

“그래서요?”“당신에게 눈물을 그려 주고 싶어요.”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에요?”

“눈물을 그리게 해주세요. 제발......”

 

가방을 뒤져 펜을 꺼냈다. 그의 희고 연약한 소녀 같은 얼굴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깨지기 쉬운 얼굴을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뺨을 조심스럽게 들어 눈가 언저리에 눈물방울 하나를 그렸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눈물방울 밑에 또 다른 눈물방울 그렸다. 그 밑에 하나 더, 그리고 또 밑에도.

“눈물을 그리니깐, 이제야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내가 말했다.

“거울을 보여 드릴 까요? 자, 여기 있어요.”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침묵을 지켰다. 나도 내가 왜 눈물을 그려주겠다고 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를 여태껏 가두고 있던 마음속의 벽을 본능적으로 부숴버리고 싶다고 생각 했을까? 왠지 바보짓을 해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니까.

“푸하하하”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숨 넘어 가도록 깔깔 거리며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하도 웃어서 그는 이제 눈물이 나는 듯 했다. 한번 눈물이 나더니 둑이 터진 듯 점점 더 많이 흘렀다. 내가 그려 논 눈물방울 때문에 그의 얼굴은 온통 검정색으로 범벅이 되었다. 우리는 눈물을 닦으며, 울다가 웃다가 하였다.

 

그날 밤, 병원에서는 비상사태가 일어났다. 할머니는 중환자 실로 옮겨 가셨다가 다시 원래 병실로 옮겨졌다. 응급실에 갔다가 몇 시간 만에 다시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의미가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은 심각했다. 호흡을 호홉 하는 사람처럼, 마치 온 우주의 공기를 들이마시려는 사람처럼 깊은 숨을 들이 쉬었다. 할머니가 어느새 숨 쉬는 법까지 잊어 버리셨나? 얼마 후면 내 이름도, 그녀 자신이 누군지조차 모르게 돼 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할머니의 병은 그런 것이었다. 어쩌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인 숨쉬기마저 할머니의 뇌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한 번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을 때마다 온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마른입 속으로 내 눈물방울들이 쉬지 않고 뚝뚝 떨어졌다. 병원 근처 학교에서는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할머니의 마른입을 적셔 드리기 위해 일회용 분무기를 사러 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런 밤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문을 연 상점을 찾아 헤매는 것뿐이었다. 나의 발은 어느새 찢어지고 피가 났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나를 더 아프게 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내 온 몸을 멍들게 하고 싶었다. 그날 밤 내내 옆 학교 운동장에선 폭죽놀이가 계속되었다. 터지는 불꽃들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타고 공중에 뿌려졌다. 나는 생각 했다. 웃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어딘가에는, 그래도 할머니와 내가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으려나?

 

입관식이 있던 날, 나는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 할머니는 자외선을 받은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그 모습을 스케치 했다. 어디선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모네의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푸른 대기를, 할머니가 즐겨 듣던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을, 그렇게 오랜 세월 살아 오셨지만 기억하고 있는 단어들 보다 잃어버린 단어들이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할머니와 나눈 수천 번의 이마 키스를 떠올렸다.

 

오늘 아침엔 아무런 단어도 떠오르지 않아 믿을 수 없을 만큼 두려웠단다. 침묵이 암처럼 나를 덮쳤거든, 죽는다는 건 이런 걸까. 죽고 싶었단다. 그의 곁으로 가고 싶었어. 하지만 죽음이란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어. 네 이름, 사랑스럽고 귀여운 나의 작은 새. 오로지 너 뿐이었어. 너밖에는 기억나지 않았어. 너만은 기억했지. 모네야, 내가 이 말을 했었나? 네가 뭘 사랑한다 해도 그 마음이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은 못 따를 게다.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나 자신보다도 더 너를 사랑해. 너를 만나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이 필요했던 거야.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만큼 이 할미는 너를 사랑한단다.

 

올해 나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완전히 엉뚱한 곳에서 온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전혀 엉뚱하게도 나는 흘러갈 수도 있는 참이다.

 

갑자기 혼자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모든 게 낯설다. 그래서 늘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는 아무 경험도 하지 않은 것 같고 내겐 아무 것도 없는 것만 같다. 할머니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다. 오늘 아침엔 남원에서 삐에르에게로부터 소포 하나가 왔다. 거기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부각과 귤, 자주색 덧양말과 보라색 스타킹 양말, 얼굴을 씻는 유기농 쌀겨, 설탕 덩어리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는데 쌀을 뻥튀기한 큰 봉지도 하나 들어 있었다. 그리고 편지. 편지에는 ‘나 프랑스로 떠나요. 더 이상은 내 마음 깊이 내 감정을 숨겨두지 않을 거예요. 가서 그녀를 만날 거야.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해 보려고. -당신의 친구, 삐에르 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무 것도 먹지 못 해서 배가 고프기도 하고 그냥 속이 너무 헛헛했기 때문에 그걸 풀어서 한주먹 입안에 집어넣자 죽고 싶었을 때처럼 갑자기 울음이 나왔다. 약을 한주먹 입안에 털어 넣는 것 같았던 것이다.

지금은 내 마음 속에 바위 하나가 생긴 것 같다. 그것은 무감각하고 무거운 것이다. 하지만 조금 씩 시간이 지나면서 가벼워 질 것이라 믿는다. 지금 쯤 할머니는 그토록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계실까? 되돌아 갈 수 만 있다면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한 번 만이라도 속삭이고 싶으셨다는 그 말은 전했을까? 그 순간에 할아버지의 왼쪽 약지에는 그들의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을까?

 

할머니, 저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쉬고 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해요.

바닥에는 망각처럼 자그락 자그락대는 검은 모래. 할머니 방 안에는, 할머니가 입었던 옷들을 전부 오려내서 방안 가득 목걸이를 만들고 할머니가 몇 번이나 잃어버리는 바람에 마침내는 내가 목걸이로 묶어서 목에 걸어 드렸던 그 열쇠들을 모두 매달아요. 삼백 개나 되는 검은 열쇠를 가느다란 버들가지 끝마다 모두 매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오래된 방안에는 시간도 망각도 슬픔도 멈추고 크고 그늘진 누긋함만이 남을 거예요.

이 말을 언제나 해야 했는데. 사랑해요, 할머니.

-언제나 할머니의 작은 새, 모네올림.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대에 흘렀을 플렌티노 아리사의 눈물은, 공기 중을 떠돌다가 우리들의 슬픔을 감지하곤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눈치 채지도 못한 채 그것들을 호흡하고 내뱉는다. 그의 눈물은, 어느 날은 A에게서 흐르고, 또 어떤 날은 삐에르 장의 눈가를 적실 것이다. 또 할머니가 너무 너무 그리운 어떤 아침이면 나의 눈물이 되어 강 하나를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니까. 우리를 뜨겁게 만들었던 그 감정들은 눈물방울 이 되어 흩어지고 어느새 차갑게 식어 하늘 위로 증발할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그 눈물들은 공기 중을 떠돌다 다른 이의 눈물이 되어 흐르겠지. 우리는 모두 어느 곳에 어느 쯤에 각자 있는 걸까. 쉬지 않고, 아니 쉴 수 없이 살아오면서 느낀 커다란 한 가지는 우리는 철저히 혼자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외롭고, 모두가 쓸쓸하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를 잃어야 한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더 많이, 더 자주 이 말을 해야 한다. 망설이는 틈새로 그 모든 것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할머닌 나에게 이 말을 하기 위해서, 그 모든 고통을 감수하셨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게 속삭이셨던 그 말,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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