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식 없이 인생의 성공은 없다

▲ 배우 박상원

 문득 ‘그린마일’(The Green Mile)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그린마일은 사형수의 방에서 전기의자로 이어지는 녹색 타일의 복도를 말한다. 곧 사형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러 가는 길인데 레드마일이 아니라 그린마일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곧 죽더라도 살아있는 순간은 초록빛 같은 아름다운 순간의 의미로 그린마일’이라고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늘 그린마일에 서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즉 시간에 대한 애착을 가졌으면 한다.
 연기생활로 31년의 시간을 보냈다. 무대는 관객과의 전쟁터이다. 준비가 소홀해 관객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지는 거다. 관객을 감동 시키려면 나만의 무기를 써야 한다. 언제나 배우는 관객을 이겨야 한다. 준비가 소홀하고 무기가 없어서 관객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그 배우는 서 있을 자리가 없다. 처음 배우로 대중들을 만날 때는 외모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배우로서 경쟁력 있는 얼굴은 아니다. 스스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위기의식을 느껴 연기에 더욱 몰입했다. 위기의식은 버려할 대상이 아니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채찍질이다. 지금은 관객에게 지기 싫다는 생각을 위기의식으로 갖고 있다. 야유와 조소를 받았을 때의 창피함을 생각한다면 하기 싫어도 열심히 하게 된다.
 미술과 사진을 좋아한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펜과 크레파스들로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주변의 일상적인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도 좋아한다. 사진 촬영을 할 때에는 ‘배우의 상상’으로 찍는다. 인생이 흘러가는 동영상이라면 사진은 한순간을 표현한다. 찍을 당시의 시공간을 압축하는 묘미가 있다. 제가 울릉도 방파제에서 갈매기의 비상 장면을 찍었다면 그 사진에는 제 오감이 느꼈던 감정이 사진에 담긴다고 보는 거다. 사진에는 없지만 방파제를 때리면서 부서지는 짠 파도 냄새부터 갈매기가 날아간 허공에 이르기까지 그 갈매기 사진 한 장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찍는다. 첫 번째 사진전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전시했던 사진 48점은 4년에 걸쳐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찍은 것이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표정들이 잡혔다. 전시를 위해 작품들을 모아놓고 보니 시간으로 따져서 총 1초도 안된다. 1/125초, 1/60초로 찍다 보니 48점을 모아도 1초가 채 안 되는 거였다. 전시 뒤에 ‘1분이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었을까. 또 그게 하루였다면, 한 달이었다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다양한 시간들, 아름다움이 스쳐지나갔던 거다.
 배우는 카메라 안에 담기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동영상이든 사진이든 담기는 입장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카메라 메커니즘을 알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나중에 촬영된 내 모습과 서로 비교할 수 있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됐다. 굳이 설명한다면 배우의 시선 같은 것이 있다. 바로 ‘상상과 망상’이다. 저에겐 큰 틀인데, 제가 연극을 하면 연극적 상상과 창조적 망상으로, 사진작업을 하면 사진적 상상과 창조적 망상이 작업의 화두가 된다. 상상과 망상은 비슷할 수도 상반된 것일 수도 있다. 벚꽃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그려볼 때 ‘봄날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벚꽃’이 ‘일반적 상상’이라면 어제까지 화려하게 폈지만 며칠 만에 수명을 다해 나무 밑에 떨어진 초라한 모습에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이나 삶의 허무 아니면 아직 살아있는 벚꽃에 대한 소중함도 느낄 수 있다. 이를 ‘사진적 상상’이라 하고 상식을 뛰어넘어 뒤집는 것을 ‘창조적 망상’이라 부르고 있다. 제가 하고 있는 드라마, 연극, 사진에서 이런 ‘상상과 망상’이 나를 이끌어 가는 힘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교수는 상당히 지루하고, 반듯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교수가 그런 것은 아니다. 청바지 입고 염색한 교수들도 많다. 연극적 상상을 펼치면 형식적인 배역을 뛰어넘는 다양한 창조가 이뤄질 수 있다. 연극적 상상은 두 개의 날개처럼 훨씬 높은 곳으로 올려다 주고 더 넓고 깊은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서울예술대학에서 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성인이 된 사람들은 이름이 나를 보여주긴 보다는 나의 행동, 역량, 능력, 스타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행동과 표정을 통해 내 이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 이름 석 자를 더 괜찮은 이름으로 갈고 닦는 것이 지금 제 상상의 범주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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