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Morning! Korea!

▲ 지난 1일 우도와 성산일출봉에서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하는 제주여행 ‘Good Morning! Korea’가 진행됐다. 즐거운 표정으로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위)과, 성산일출봉에서 찍은 단체사진,

 지난 1일 우도와 성산일출봉 일대에서 ‘Good Morning! Korea!’행사가 열렸다.  부제는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제주여행’.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후원하고 YWCA(Young Women Christian Association)에서 주관한 이 행사는 도내 외국인 근로자와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즐거운 여행길에 기자가 동행했다. 그들의 행복한 여행을 함께 따라가보자.                            <편집자주>

 버스는 바빴다. 행사에 참여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일일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픽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버스 여기 도착했는데 지금 어디세요?” 약속장소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참가자와 통화하던 스태프의 눈이 커진다. “자전거 타고 오신다고요?” 잠시 후, 바다와 접한 시골도로를 유유히 달려오는 자전거가 보였다. 중국인 쑤춘후이씨다. 자전거를 아무데나 세워 놓는 모습에 한국인 스태프들은 “저거 분명히 누가 훔쳐갈 텐데” 전전긍긍. 그러나 정작 자전거 주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겉모습만으로는 국적을 구분하기 힘든 동양인. 그러나 불안한 듯 남겨진 자전거를 자꾸 돌아보는 한국인들과 대비되는 그의 느긋하다 못해 초탈하기까지 한 표정에 새삼 실감한다. 아, 저 사람은 정말 다른 나라에서 왔구나.


Good Morning! Korea!
 행사에 참가한 신경인 제주YWCA 회장은 본 행사를 두고 “평소에 힘들게 일하시는 제주의 외국인 근로자 분들께 하루 동안 즐거움을 선사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드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됐다”며 “행사에 참가한 봉사자들에게도 외국인 근로자들을 향한 올바른 시선을 가질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 제주여행은 이미 여러 해  계속돼 온 행사다. 제주에서 6년을 살았다는 인도네시아 수나르코 씨는 YWCA의 프로그램 덕에 이번 행사를 포함해 제주 관광을 5번이나 다녔며 만족감을 표했다. 제주YWCA는 이전에도 제주에 외국인지원센터가 없던 시절 이주여성들을 위한 친정어머니 되어주기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


영어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영어, 참 중요하다. 특히 대한민국은 멋들어진 영어발음 한 어절만으로 그 사람의 대외정체성이 좌지우지되는 나라 아니던가. 영어만능주의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기자가 한 번 친해볼 요량으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Can you speak English?” 베트남 청년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예? 잉시? 뭐?” “No, No, English. English! 영.어! 영어!” 그의 일갈. “아 그냥 한국어로 해요 한국어로.”
 몇 년을 제주에서 보내 잔뼈가 굵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잘했다. 그런데 영어는 몰랐다. 어딜 가서 누굴 만나든 영어만 할 줄 알면 다 잘 될 거라고 믿고 있던 한국인 참가자의 컬쳐쇼크는 제법 컸다.
 자원봉사로 참가한 김미진(화학 1)씨는 “스리랑카나 베트남 같은 곳에서도 인도처럼 영어를 당연히 쓰는 줄 알았는데 놀랐다”고 말했다. 행사 현장에선 그 흔한 토익점수보다도 도리어 김미진씨의 중국어 회화능력과 손에 들린 베트남어 회화 책이 빛을 발했다. 나머지 봉사자들은, 뭐, 팔다리로 대화하는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어딜 가도 영어는 예외가 있다. 하지만 바디랭귀지는 예외가 없다.


8282 안 좋아요
 중국, 스리랑카, 베트남, 인도네시아... 국적은 다양했지만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징하게 느긋하다는 것!
 자꾸만 행렬에서 뒤쳐져 사진을 찍거나 풍광에 흠뻑 빠져드는 참가자들의 행동에 수시로 인원을 점검해야 하는 봉사자들은 애가 달았다. 빨리 일행들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재촉하니 인도네시아 청년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괜찮아 괜찮아. 빨리 안 가도 돼요.”라고 웃기만 한다. 하긴, 어차피 길이 하나뿐이니 미아가 될 일은 없다. 게다가 모처럼 일터를 떠나 바람 쐬러 놀러 나왔는데 시종일관 초조하고 불안해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미안해요.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좋아하거든요.” “어우, 8282 안 좋아요~”
 이국 청년이 질린다는 얼굴로 손사레를 치는데 앞선 행렬에서 스태프 한 명이 뛰어온다. “빨리빨리 안 오고 뭐해요!” 기막힌 타이밍에 다같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러분들 참 행복해 보여
 그들은 시종일관 즐거워했다. 성산일출봉의 드넓은 벌판과 우도 등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경에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들을 더욱 많이, 더욱 환하게 웃게 만든 건 한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이었다.
 “자! ‘으랏차차’를 더 크게 외치는 사람이 승자입니다. 외쳐주세요~ 으!랏!차!차!”
 “으라따따!” “우라타타!” “으라타차아!” “으라쟈자자자자자!!” 동료들의 어눌한 발음에 폭소를 터뜨리는 그들의 모습은 ‘외국인 근로자’라는 호칭의 씁쓸함에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외국인 근로자라 하면 보통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게 열약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허리 하나 제대로 펴기 힘든 먼지로 찬 닭장 같은 회색공장에서 죽어라 일만 하는 그런 이미지의. 그런데 이들은 너무나 밝다. 봉사자들에게 먼저 다가와 한국어로 통성명을 하고, 어깨에 팔을 둘러 같이 사진을 찍으며, 자기들 몫으로 제공된 바나나나 초콜릿을 학생들 먹으라며 나눠준다.
 자원봉사자 문효진(화학 1)씨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솔직히 외국인 근로자라고 하면 인식이 별로 안 좋잖아요. 그런데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어보니까 예전에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더라고요.” 일찌감치 외국인 근로자들과 핸드폰 번호까지 교환했다며 들뜬 얼굴로 자랑까지 한다. 옆에서 친구인 미진씨도 “동남아시아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젠 어떤 곳이고 어떤 사람들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라며 한 마디 거들었다.
 기자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삶에 대한 기존 인식과 충돌해야 했다. “숨기지 않아도 돼요. 뭔가 문제가 있다면 전 오히려 그걸 알고 싶은 거니까. 제주에서 일하는 거 힘들진 않으세요?” 기자는 사회 전반에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필자는 뭐 하나라도 문제요소를 발굴해내야 된다는 서투른 의무감에 불타올랐다. 하지만 이게 웬걸. 거꾸로 들고 탈탈 털 기세로 물고 늘어져도 진짜 불만 한 톨 없단다.
 인도네시아 청년 미스바는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한다. 일요일은 매주 쉬고 한 달에 이틀 휴무가 있다. 일이 많아 힘든 감이 있긴 하지만, 식사든 산재보험이든 다 잘 돼있어서 생활에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또 제주도민들 역시 차별 없이 인간적으로 대우해준다고.
 “진짜 안 힘들어요? 고향 안 가고 싶어요?” “언제든 갈 수 있어요. 미리 말만 하면 돼요.” 동료들이 다가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의 직장을 옹호했다. “좋아요, 진짜 다 좋아요.” 까맣게 빛나는 웃음이 우도의 바닷바람에 실려 만파로 퍼졌다.
 돌아오는 버스 안, 얼떨결에 인도네시아 청년 수나르코와 술약속이 잡혔다. 그런데 당신 무슬림 아니었나요. 점심 때 돼지고기도 안 먹더니. “1병은 돼요. 안 취하면 돼요.” 그는 애교있게 웃었다. 아, 끝 모를 분방함이여. 까맣고 탱탱한 일꾼 피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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