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하려고 대학 온 게 아닌데”… 돈벌이에 힘겨운 방학나는 청춘

▲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문대학의 한 학생이 계산을 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방학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도서관 대신 아르바이트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두 달이라는 긴 방학 기간, 잠시 숨을 돌릴 법도 한데 오히려 학생들은 학기 때보다 더 분주해진다. 바로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때문이다. 요즘 교내 홈페이지의 생활 게시판은 알바를 구하는 광고와 이를 찾는 학생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이들이 이토록 알바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등록금’에 있다. 학생의 신분으로 감당하기 힘든 등록금은 그들을 여지없이 노동 현장으로 내몰아 넣는다. 쉬지도 못하고 알바에 매진하는 대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알바 후 녹초가 되면 공부도 하기 힘들어요”
주점 알바-해양대학의 한 학생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그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제주 시청 인근의 모 주점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 그는 “여기가 그나마 시급을 많이 줘서 일하게 됐는데,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는 손님들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내내도 손님이 계속해서 들어와 제대로 진행하기조차 힘들었다. 하다가 끊기고, 다시 하다가 끊기는 상황이 반복됐다. “부모님이 버는 월급만으로는 등록금 내기에 빠듯한 형편이라 내가 직접 알바에 나서게 됐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서빙 탓에 무척 고단하고 지쳐 보였다.
 그는 “알바 도중에 틈틈이 공부를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보라”며 “한 달에 여섯 번밖에 쉬지 못하다 보니 공부는커녕 그나마 남는 시간에 잠시 토익 책을 들여다보는 게 전부”라고 답했다.
 그의 근무 시간은 오후 7시에서 새벽 1~2시. 학기 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새벽 2시 이후 밖에 없고, 방학 기간인 지금도 낮에 학원과 헬스를 다니다 보면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긴 마찬가지다. 새벽에 공부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손쉬운 알바도 아닌, 힘들기로 유명한 주점 서빙을 하고 난 뒤 정신이며 체력이 온전히 남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새벽에라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알바가 끝나고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에게서 일상의 자유란 뜬구름 잡는 소리나 다름없다.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학과 행사나 과모임 같은 데도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최근 열린 초등학교 동창회도 꼭 가고 싶었는데 알바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주대 등록금 낮은 편이라지만 부담돼요”
편의점 알바-인문대학의 한 학생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는 여학생을 찾아갔을 때, 그는 소위 ‘진상’이라 불릴 만한 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손님이 나가고 그는 “편의점은 유난히 이해 못할 손님이 많은 것 같다”며 “아직 학생일 뿐인 내가 이런 식의 홀대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게 서럽다”고 말했다.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알바를 시작했다는 그는 방학이 되자 시청 단기 알바까지 병행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왜 안 힘들겠는가”라는 푸념 섞인 대답과 함께 “제주대 등록금은 타 대학보다는 싼 편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돈을 마련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돈을 버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더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돈을 벌기 위해 택했다는 야간 알바. 그러나 현실은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였다.  
녹초가 된 몸으로 학교에 가면 원치 않아도 잠은 쏟아지기 마련이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시 또 알바로 나서는 일상이 반복됐다. 자연히 학업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남은 건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 뿐이었다.
 그는 “야간 알바는 후유증이 굉장히 크고 길다”며 “내가 마치 인간이 아닌 기계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간의 사람들은 어리석은 방법이라며 비웃겠지만, 막상 그만두기에는 내 자신이 불효녀가 될 것 같은 느낌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도 말했다.
 방학이 되자 학기 중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시청 알바와 병행하다 보니 여전히 공부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에게는 요즘 새로운 각오가 생겼다. 이달 중으로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고 학업에 열중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니는 게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더 좋은 일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어떤 결연한 의지까지 엿보였다. 그는 “다만 나처럼 그래도 어느 정도 집안 형편이 되는 학생들은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이러한 선택의 여지조차 없을 수가 있다”면서 “그런 학생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알바에 뛰어들어야만 한다”며 안쓰러운 심정을 내비쳤다.

“장학금 놓치면 방학 내내 알바만 해야 돼요”
연구소, 식당, 편의점 알바-공과대학의 한 학생


 무려 3개의 알바를 뛰는 학생도 있었다. 학기 중에는 주말에 있는 편의점 알바만 하다가, 방학이 되자 연구소, 식당, 편의점 이 세 가지 알바를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는 연구소에서, 오후 7시에서 새벽 12시까지는 식당에서, 그리고 주말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그는 “하루에 적게는 15시간, 많게는 18시간 이상을 알바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입학한 이래 B급, 혹은 C급의 장학금을 꾸준히 받아왔음에도 알바를 멈출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받는 한 달 알바비는 고작해야 100만 원 남짓,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으로 인한 턱없이 적은 액수인 것이다. 그나마도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 없다면 그의 삶은 한층 더 수난에 가까워지고 만다. 그는 “만약 장학금을 놓치면 다시 방학 중에 꼼짝없이 여러 개의 알바를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며 자조했다.
 최근에는 장학금이 C급일 경우를 대비해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놓았다는 그는 “졸업하고 나면 이자가 붙어서 졸업 전까지는 다 갚으려고 한다. 그 때문에도 알바를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입학할 때 대출받은 것까지 합하면 현재 그가 총 대출받은 금액은 무려 400여 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학생에게 있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액수. 이렇든 저렇든 결국 졸업하기 전까지는 ‘알바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등록금 벌기 위해 하루하루가 고역인 학생들
정부, 등록금 문제 해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이 이야기는 비단 위의 세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우리대학 신입생 중 300여명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취업 후 되갚는 ‘학자금 대출(ICL)’을 신청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루하루를 알바에 쫓겨 사는 수많은 학생들은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등록금 인하에 관한 문제다. 제주대의 등록금은 한해 평균 402만원이다. 한해에 수의학과가 597만원으로 가장 많고, 교육대학이 292만원으로 가장 적은 편이다.
 강유나(국어국문 1)씨는 “제주대의 등록금이 수도권 사립대와 비교해 높은 등록금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지만, 제주도민 1인당 개인 소득이 전국 평균에 비해 크게 적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며 “이를 감안한다면 제주대 등록금이 결코 싸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 지역 농가 부채가 항상 전국 1, 2위를 차지한다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러한 제주의 열악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정부가 적극적으로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즉, 정부가 등록금 인하를 유도하고 고등교육예산을 OECD 국가 수준으로 증액해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적 부담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것.
 양혜정(환경공학 1)씨는 “무엇보다 정부에서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고등교육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OECD 국가 평균 고등교육 예산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그의 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알바에 내몰리는 현 실태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부하기 위해 들어온 대학.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의 등록금 때문에 이들은 정작 해야 할 공부를 하지 못한 채 돈벌이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학생’이라는 자각 이전에 ‘알바생’이란 말이 더 귀에 익어버리고 만 이들. 오늘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수많은 학생들은 쉬지도 못한 채 부지런히 아르바이트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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