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쫓겨도 시인의 마음 지녀야

▲ 도종환 시인

제주대학교(총장 허향진)는 JDC·제주의소리와 함께 학생들에게 국제화 시민의식을 고취시키고 미래지향적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대학생 아카데미를 마련했습니다. 국내의 명강사를 초청해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국제교류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학생 아카데미는 지난달 14일까지 1학기 동안 총 13강좌가 열렸습니다.

 

 시는 쓰는 사람들은 주위를 발견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다. 남들은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시인은 눈여겨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려고 한다. 어려서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주로 시골마을에서 지냈다. 그런 생활과 경험 때문인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다. 자연을 바라볼 때는 그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변화를 읽어내려고 한다. 내륙에서는 매년 4월 20일을 전후로 변화가 가장 심한 시기이다. 이때는 모든 나무가 연둣빛 잎을 만들어내고 산꽃들이 파스텔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 모습들을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그림을 그리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기에 자연을 감탄하게 된다. 무릇 동물의 새끼들은 모두 예쁘다. 작고 동그란 머리 모양에 앙증맞은 입, 어미 눈에는 새끼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4월 20일 전후에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나무들도 초록의 잎들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예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두는 초록의 어린 새끼다. 나무의 변화를 시작하면서 땅 밑에는 아주 작은 꽃들이 돋아난다. 냉이꽃, 꽃다지, 민들레꽃, 제비꽃 등 인사를 나눈 적 없는 곳까지 찾아가 이름을 부른다. 소설가 박완서님은 자신의 정원에 핀 꽃들을 향해 출석을 불렀다고 한다. 올해도 자신의 마당에 다 왔는지 이름을 불러보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출석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나도 앞마당에 핀 꽃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출석을 부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꽃들 중에 제일 큰 꽃이 민들레꽃인데, 그 보다 작은 꽃다지, 제비꽃을 향해 ‘지금 피운 꽃이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이 꽃들은 ‘네. 최선을 다해서 피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지난 겨울 대단히 추웠다. 우리 집 앞마당에 밤나무는 얼어 죽었다. 팽나무도 냉해 때문에 지난주에야 잎을 피웠다. 팽나무 옆에서 박수를 쳐줬다. “잘했다. 잘했어”. 여러분에게 꽃과 나무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관심을 주면 그들도 나에게 관심을 갖는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꽃과 나무에게 이야기를 건네면, 그들도 우리한테 대답을 해준다. 꽃이 피어있으면 기쁘다. 그 옆에서 같이 있고 싶어주는 것은 법정 스님이 말한 ‘인간 내면에 꽃다운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고은 선생님은 책을 정말 많이 낸다. 지난해에도 만인보라는 30권의 시를 쓰셨다.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아주 간단한 시이다. 그러나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같은 꽃인데 왜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을까. 열심히 올라가다보니까 밑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려올 때는 여유가 생기니까 꽃이 보이는 것이다. 여유가 있으면 꽃이 꽃으로 보이는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사람이 고맙고 소중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올라갈 때는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신없이 바쁠 때는 주위의 고마운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우리 주위에는 내가 살아가는데 내가 고마워야 할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내가 올라갈 때 쫓기는 인생을 살 때는 주위를 살펴보지 못한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일에 쫒기고 고마운 것을,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삶인지를 되물어봐야 한다. 인디언 사람들은 말을 타고 빠르게 갈 길을 재촉하더라도 갑자기 멈춰 선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의 영혼이 빠른 말을 쫒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아무리 세상을 급하게 살더라도 정신과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생진 시인의 <벌레 먹은 나뭇잎>이라는 시를 보자.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이 잘못인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보통 사람들은 벌레 먹은 나뭇잎을 아름답게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생진 시인은 벌레 먹은 나뭇잎을 예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남을 먹여가며 살아가려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시인의 눈을 회복하면 주위가 세상이 고맙고 예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은 시인의 눈을 회복하길 바란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보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는 참 짧다. 단지 32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용은 강렬하고 뜨겁다. 타고 버려진 연탄 한 장. 길가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창백한 연탄 한 장은, 그러나 한 때는 누군가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방 아랫목을 뜨끈하게 덥히며 ‘배 부르고 등 따뜻한’ 행복을 누리게 해주었던 소중한 존재였다. 눈 쌓여 미끄러운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마음 놓고 걸어 다니라고 마지막 몸을 산산이 부숴 기꺼이 재가 되어주던 고마운 존재였다. 살아오면서 나는 과연 한 번이라도 누구를 위해 그토록 뜨거워 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온기를 제공해주고 누군가에게 아늑한 행복을 선물하는 그런 고마운 존재가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뜨겁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한 줌의 재로 돌아가기 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세상에 기여하고 공헌하며 살아가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세상에 기여하거나 헌신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삶을 추스르기조차 힘겨워 존재의 이유를 망각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기에 급급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아직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재발견하고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삶의 가치는 자명하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삶을 불태워 세상에 온 이유를 온 몸으로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오늘을 생의 마지막 하루인 것처럼 뜨겁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연탄재 같은 사람들이 많다. 바로 우리의 어머니다. 이 분들을 생각하면서 언젠가는 남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시인은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남들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을 눈여겨보는 사람이다. 그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인생의 좌절이 나를 여기까지 밀고 왔다. 2009년 직장인 103만 명이 뽑은 ‘내 인생의 시’인 ‘담쟁이’를 비롯해 해마다 5000부에서 1만부 가까이 팔리고 있는 시집 ‘접시꽃 당신’ 등의 인기의 바탕에는 좌절이 있다.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시는 남들도 울어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문학은 나의 울음이다. 부모와 떨어져 가난을 안고 살아온 어린 시절, 대학 졸업 후까지도 이어진 방황, 결혼 후 2년 반 만에 암으로 떠난 아내, 그에게 찾아온 병과의 투쟁 등. 왜 나한테 시련이 끊이지 않을까 원망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곧 이를 고맙게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했다. 몸에 병이 들어 깊은 산 속에 들어가 5년 정도 고독하게 지내야 했던 시절에도 평화롭고 고요한 곳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데 대해서 감사하자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벌을 받는 것일까? 이런 생각도 부질없는 생각인 것이다.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항변도 무의미한 것이다. 그저 가만히 고통의 시간 앞에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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