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라

▲ 오은선 산악인

 수원대 산악부 출신이다. 1993년에는 서울과학교육원 전산직 공무원이었으나, 에베레스트 등정 여성 산악인 대원에 뽑힌 뒤 산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후 2001년에서 2004년까지 7대륙 최고봉 등반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돈 후, 8000m급 등반에 자신감이 붙어 히말라야 14좌에 도전했다. 14좌 등반을 위한 17년간의 고행이 시작된 셈이다. 산을 향한 열정에는 밥줄도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14좌 정복이 목표는 아니었다. 기회가 날 때마다 한 산 한 산 오를 뿐이었다.

 히말라야 14좌 등정이 대단한 기록은 아니다. 1986년 이탈리아 출신의 라인홀트 메스너가 인류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이후 히말라야 8000m 14좌의 신비는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여성 산악인들은 단독 등정, 무산소 등정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엄홍길, 고 박영석, 한완용씨 등 3명이 먼저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랐을 뿐이다. 그들의 발자취가 선명해 꿈을 키우고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신이 허락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14좌 완등을 이뤄낸 데는 도전정신과 강철 같은 의지, 강한 승부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산은 자연과의 싸움이다. 낯선 곳에서의 고독함과 외로움, 눈사태와 심한 눈보라와 눈의 반사로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화이트아웃,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인 크레바스 등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위협, 마의 구간, 날씨에 대한 기다림 등이 그렇다. 그렇게 17년 동안 14좌를 완등하기까지 히말라야 산맥을 20여회 넘었다. 에베레스트(2004년)와 K2(2007년) 등정때 2번 빼고는 산소를 안 썼다. 그때만 해도 두 봉우리는 산소를 안 쓰면 죽는 줄 알았다. 그때 다른 나라 여성 산악인들이 무산소로 오르는 것을 알았다.

 지난해 4월 히말라야 8000m 14좌 중 마지막으로 정복한 안나푸르나 등정할 때 KBS 중계팀이 함께 올라 역사적인 현장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당시 50여명의 스텝이 함께 했다. 이들이 두 달 정도 함께 생활하기 위한 물량과 실시간 생중계를 위한 방송장비만 20톤에 이르렀다. 새벽 5시 기상, 오전 7시 출발 후 8시간에서 10시간을 등정하는 강행군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바닥이 2-30m 깊이로 갈리는 크레바스와 집채만 한 눈덩이가 떨어지는 눈사태의 위협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게다가 안나푸르나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눈사태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하루라도 먼저 정상에 서겠다고 베이스캠프에서 이틀 먼저 나선 것이 오산이었다. 오금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추워 등정을 포기해야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 때 내 옆에 나타난 것은 산 등정 때 언제나 내 뒤에서 묵묵히 걸어오던 폴란드의 여성 산악인이었다. ‘긴가’라는 이 여성 등반가가 거북이걸음만큼 느린데도 계속 앞으로 나가 나를 앞질렀다. 너무 성급했던 내 자신을 반성했고 그 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등정을 시도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 등반 중 유념했던 것이 욕심을 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마음이 발걸음보다 앞서 가면 안 된다. 발 보다 마음이 한 걸음 뒤에서 좇아가면 정상이 어느덧 생각지도 못한 순간 나타난다. 마음을 추스르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세 명이 함께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다. 형편없어 보이는 사람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그 영감을 준 것이 내가 한심하게 생각했던 그 폴란드 여성 산악인이었다.

 그 동안 히말라야 봉우리를 오를 때 수많은 동료와 산악인과 동행해 함께 정상을 밟는 셰르파의 죽음을 곁에서 보았다. 내 자신도 등정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그분들의 비극적 사고를 통해 자신을 더 연마한다. 그들의 죽음 앞에서 많이 배운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정상을 목표로 삼지만, 최후의 목표는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환희만을 상상해서는 정상에 설 수 없다. 다만 한 걸음 한 걸음 욕심내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여러분도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환희에 젖어선 안 된다. 목표에 다가서기 위한 확실한 경로와 방법을 정하고 자기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 이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니다. 꿈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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