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도봉에 올라가면 우도마을의 전경과 바다와 맞닿은 해안선을 볼 수 있다.

 초겨울의 문턱을 넘어서인지 제주 본섬의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이렇게 쌀쌀한 날씨에도 성산항 여객터미널에는 우도로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제주에 오는 관광객들의 약 20%가 우도를 들른다고 한다. 제주본섬의 해안길이가 254km이고 우도의 해안길이가 17km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작은 섬이 얼마나 들썩일지 상상된다.

 제주의 모든 곳이 그렇듯 우도도 제주 신화의 흔적이 묻어 있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고 우도를 빨래돌로 삼아 빨래했다는 이야기, 성산과 우도가 내륙이었는데 어느 날 설문대할망이 외출하다 소변이 마려워 보았는데 그 소변 줄기가 새서 육지가 파이고 땅 한쪽이 분리돼 섬이 된 게 우도라는 오래된 신화의 조각은 그 퍼즐에 맞춰 우도를 바라보게 한다. 우도의 완만한 지형을 보며 설문대할망의 빨래판 역할을 했을 거라 상상하게 하고, 성산에서 배타고 10여 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서 딱 소변의 줄기로 밀어난 만큼 떨어진 거리라고 상상하게 된다.

 우도에서 가장 높은 곳은 132m의 우도봉이다. 이곳에 올라가면 우도 정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겨울이 되면서 본섬은 잿빛으로 변했지만 우도에선 여전히 초록빛을 볼 수 있다. 돌담을 경계로 나뉜 쪽파와 마늘밭, 마을의 해안선을 따라 유독 파랗게 빛나는 바다가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하다.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은 외지인은 그 새 섬사람이 된다. “아!”하고 감탄의 외마디를 지른 초면의 행객에게 호밧엿과 귤을 건네며 넉넉함을 보인다.

우도의 비경, 우도팔경

 제주에 영주십경이 있듯이 우도에는 ‘우도팔경’이 있다. 우도팔경에는 우도봉의 남쪽 기슭 동굴 안으로 낮에 햇빛이 쏟아져 천장에 달 모양을 만들어 낸다는 주간명월, 여름밤에 무리지은 어선들의 불빛인 야항어범, 우도 도항 관문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천진관산, 지상 최고의 잔디 빛깔이라는 지두청사, 제주와 우도 사이 바다에서 바라보는 우도 앞쪽의 경관인 전포망도, 우도 뒤쪽의 아름다운 단층의 결을 자랑하는 후해석벽,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동안경굴, 햇빛에 눈부시게 반사하는 서빈백사가 있다. 우도의 낮과 밤, 하늘과 땅, 앞과 뒤, 동과 서를 표현한 것이다. 결국 언제 어디를 봐도 우도 전체가 아름답다는 얘기다.

▲ 하얀 모래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우도의 서빈백사. 이국적인 풍광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랑을 부르는 섬

 우도는 전체가 한 폭의 수채화 같지만 특히 푸른 빛깔의 우도잔디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다는 하얀 모래의 서빈백사는 이국적 풍광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영화 시월애에서 전지현이 바닷가를 거닐던 장면,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송승헌과 손예진이 첫키스를 하는 장면의 배경지다. 영화와 같은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과 신혼부부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경기도 부천에서 왔다는 서정운, 편선희 부부는 결혼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들은 “우도는 시간도 멈추게 하는 곳이라, 이곳에서 결혼을 기념하면 영원한 사랑의 맹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젊은 부부의 얼굴은 섬 안에서 빛나 보였다.

 햇살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해변에서 제주 쌀 막걸리를 마시는 두 여성도 보였다. 친한 친구라는 그들은 날짜를 맞춰 같이 서울에 있는 직장에 휴가를 내서 왔다고 했다. 애초에 우도에는 한나절만 있다가 제주 본섬에서 여행할 계획이었지만 우도의 햇볕이 좋아 충동적으로 1박 하기로 했단다.

 문혜경씨는 “제주에 내려올 때 서울은 한파주의보가 내렸는데 이곳은 겨울이 없는 남국처럼 따뜻해 딴 세상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주 출신 남자와 이별을 겪은 적이 있는데 따뜻한 모래에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 검멀레 해안에 있는 해녀상. 우도 곳곳에는 다양한 해녀상들이 세워져 있다.


모든 이들의 마지막 고향

 “남자는 태어나면 매를 때리고, 여자가 태어나면 돼지 잡아 잔치를 한다.”
 우도는 해풍이 많이 불고 토양이 척박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작물이 제한적이다. 제주 본섬은 물질보다 농사를 더 선호했지만 우도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그만 섬에서 고만고만한 살림에 물질은 살기 위한 생계수단이었다. 그래서 특히 우도에서는 여성의 노동력이 귀했고, 미래 해녀의 탄생은 섬의 축복이었다.

 우도는 480여명의 해녀가 있는데 전국에서 가장 높은 해녀밀집지역이다.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신의 어머니도 해녀다’라는 자랑을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섬 전체가 해녀를 자랑으로 여겨 우도를 ‘해녀의 마지막 고향’이라 부른다. 늙고 지친 해녀도 바다 한 구석을 내주는 우도의 분위기가 해녀가 마지막으로 머물 수 있는 고향이라는 인식을 만든 것이다. 우도는 해녀뿐만 아니라 외지인에게도 마지막 쉴 곳을 제공한다. 제주시에서 10년 전 이사를 왔다는 김영성(45)씨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 왔는데 이곳에선 마음이 항상 푸근해져서 좋다”고 말했다. 이처럼 누구나 마음의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섬이 우도다. 느리게 기억을 치유하고 싶다면 우도로 와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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