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편견도 ‘다문화 가정’엔 큰 상처

▲ 이자스민 이주여성 배우

제주대학교(총장 허향진)는 JDC·제주의소리와 함께 학생들에게 국제화 시민의식을 고취시키고 미래지향적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대학생 아카데미를 마련했습니다. 국내의 명강사를 초청해 매주 화요일 오후 4시 국제교류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대학생 아카데미는 오는 12월 6일까지 총 13개 강좌가 열립니다. 학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다문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도 동남아시아 여성과 농촌,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와 공장일 것 같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다문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다문화를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다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사실 그 범주가 매우 큰 것처럼 다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할 때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무서웠던 것이 4가지였다. 그 4가지는 음식의 가짓수, 한국어, 시어머니, 목욕탕이다. 필리핀에서는 한 끼 식사를 할 때 반찬수가 많아야 2가지 정도다. 무더운 날씨와 냉장고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음식을 보관하기가 어려워 반찬가지수가 많지 않다. 그런데 한국은 식사할 때 많은 반찬 가짓수에 놀랐다. 또 한국어는 한 단어에 너무 많은 뜻이 있어서 배우기가 어려웠다. 시어머니는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던 나를 가르쳐야 하기에 처음 무섭게 느껴졌다.     

 지난해 영화배우 송강호와 강동원이 주연한 영화 <의형제>에 이주여성 뚜이안 역으로 출연했었다. 정말 우연이었다. <의형제>에는 캐스팅 담당자로 참여했다. ‘베트남 신부’로 출연할 배우를 찾아야 하는데, 대사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결국엔 제작진이 제안해서 얼떨결에 출연했다. 나는 첫 영화 출연에서 대사와 이름까지 얻어 기뻤다. 한국의 인기배우 송강호, 강동원씨와 한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개봉 후 감독님의 인터뷰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사람들은 외국인을 큰 화면으로 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 외국인 여성을 타이트하게 잡은 장면이 있었지만 최종 편집 단계에서 먼거리 촬영으로 대체했다’고 했다. 내가 더 큰 화면에 나올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영화에는 괴물에 외계인, 귀신까지 나오는데, 스크린에서 외국인이 나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외국인들만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는 대체 어떻게 보는지 의아했다. 

 <완득이>도 <의형제> 제작진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았다. 사실 <완득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내가 이 역할을 해도 될까’ 의구심이 들었다. 영화 속 완득이 엄마는 너무 답답한 여자다. 완득이 엄마가 젖먹이 아들을 두고 집을 나가는 설정이다. 아들을 떠난 마당에 왜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한 건지 아쉬웠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많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차마 아이들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인내하면서 사는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자칫하면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에 대한 나쁜 인식, 편견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득이>의 결론이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내용이라서 출연을 결심했다. 완득이에는 몸이 불편한데다 옥탑방에 살 만큼 가난한 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슴 따뜻한 영화다.

 17년 전인 1995년에 한국인 남편을 만나 1년 반의 열애 끝에 결혼해 한국에 왔다. 이후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다 이주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방송일을 시작했다. 이후 다문화 가정 네트워크인 ‘물방울 나눔회’를 결성했다.

 하지만 왜곡된 다문화에 대한 미디어의 시선은 늘 불만이다. 방송은 웃기거나 울리거나 둘 중 하나이다. ‘다문화 가정’에 대해선 감동을 전해야 하다 보니 이주여성은 항상 가난한 나라에서 왔고, 문화, 사회, 언어 부적응자이고,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는 이미지를 심어 놓는다. 또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왕따이기 일쑤고, 이들의 아빠는 농촌 출신의 노총각이고, 학력이 낮은 데다 경제적 능력도 부족하게 비추고 있다. 정부기관이 만드는 공익광고를 보자. 왜 여기 등장하는 여자는 동남아 출신이어야 하고, 허름한 한옥집에 살며, 영상은 짠한 느낌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늘 회색 위주의 세피아 색으로 덮여 있다.

 다문화라는 꼬리표가 아쉽다. 처음 다문화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우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에 반가웠다. 그런데 지금은 기존의 혼혈아와 같이 정상적인 그룹과 구분 짓는 단어가 됐다. 앞으로 사람들의 편견에 균형을 맞추는 일에 노력하고 싶다. 다문화 가정을 언제나 적응하지 못하고, 항상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본다면 주저앉고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짠하고 불쌍하다는 마음이 든다는 이유로 무심코 던지는 잘못된 배려도 많다. 다문화 가정 아이를 둔 부모에게 ‘정말, 잘 키웠다’는 말조차 편견에 기초한 문제의식을 갖고 바라본 것이다. 그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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