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어린이들이 보인다. 모두가 무리지어 신나게 놀고 있다. 아무런 걱정 없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과 공차기, 눈싸움, 술래잡기를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반면 10살 건희는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다. 아프기 때문이다.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건희는 면역력이 약해질 때로 약해진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쉽게 만나지 못한다.

 2011년의 마지막 날, 건희네 집을 찾아갔다. 길을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제주시 이도2동에 위치한 자그마한 국민임대주택.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세요’ 하는 어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건희와 건희 어머님께서 반겨주셨다. 13평 남짓한 작은 집에 들어가니 냉기가 느껴졌다. “이런 곳에 직접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건희는 현재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빈혈이 아니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골수에서 산소운반을 하는 적혈구, 온갖 감염에 대항하는 백혈구, 피의 응고를 촉진하는 혈소판 등의 혈액세포가 충분히 생산되지 못하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빈혈, 호흡곤란, 당뇨, 아토피, 고열 등 합병증을 일으키며 심할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재생불량성 빈혈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골수이식이 필요하다. 이런 병을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 된 건희가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건희는 2년 전에 골수를 이식받았다. 하지만 건희는 골수 이식만으로 건강해질 수 없었다. “골수를 이식받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건희는 지금까지도 많이 아파요” 건희 어머님은 건희가 골수이식만 받으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골수를 이식받기는 했지만 골수가 아직 건희 몸에 적응이 안돼서 건희는 현재 많은 부작용을 겪고 있다. 건희의 당뇨수치는 기계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건희의 피부에는 아토피로 인해 생긴 흉터가 가득하다. “얼마 전에는 항문에서 피가 터져 멈추지 않아 서울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다녀온 적도 있어요. 물만 먹어도 토하고 설상가상으로 대상포진까지 걸려 큰일 날 뻔 했어요.”

 제주도에서는 건희를 치료할 수 없다. 단지 응급조치를 취해줄 뿐이다. 건희가 앓고 있는 병은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다.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서울에 가야만 한다. 다행히 의료보호 1종인 건희는 치료비를 나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항공비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약제비, 검사비에 대해서는 건희 어머님이 지불해야 한다.

 건희네 집엔 3명이 산다. 건희 어머니인 고명순(45)씨와 백건희, 그리고 건희의 누나 이렇게 셋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머니는 한숨을 내쉰다. “건희 아빠는 연락이 안돼요. 건희가 입원해 있을 때 병원에 와서 자식포기각서를 쓰고 갔거든요”

 건희네 가정은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이다. 매달 89만원의 수급비를 받는다. 이것은 건희네의 유일한 수입이다. 건희 어머님은 일을 하러 집 밖을 나갈 수가 없다. 하루 종일 건희 옆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희가 아프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목욕탕, 호텔, 골프장 청소를 하면서 세 식구의 생계를 유지했었다. 하지만 건희가 아프면서부터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됐고 빠듯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건희가 앓고 있는 병은 예측할 수 없는 병이다. 언제 어떻게 잘못될지 모르기 때문에 옆에서 계속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뇨가 심한 건희는 2시간 마다 혈당체크를 해야 하고 하루 4번 인슐린 주사를 놓아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어머니가 하고 있다.

 건희 어머니는 힘들었다. 건희에 대한 희망과 절망이 어머니를 괴롭혔다. 지난 7월, 건희 어머니의 손에 쥐어진 것은 온갖 알약이었다.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 알약을 자신의 입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이런 상황에 놓일 줄은 저도 몰랐죠. 제 자신이 미쳐버릴 것만 같았어요.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희망과 절망 때문에 너무 아팠어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 죄책감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려고 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한다며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그의 얼굴엔 슬픈 빛이 가득했다.

 2012년의 시작 1월이다. 나눔으로 2012년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하나를 쪼개 더 가치 있는 백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나눔이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모여 더불어 행복한 시작이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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