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 현재화 된 4・3의 현장을! 응원경찰, 통행금지, 해안봉쇄, 무차별 체포연행, 예비검속, 생명의 파괴와 학살, 그리하여 공동체와 제주도민의 자존이 파괴되고 있는 이 역사적 현실을!"

▲ 12일 오전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에 들어간 한 평화활동가가 구럼비 바위에서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그 뒤로 바위를 폭파하기 위한 고공 크레인의 모습이 보인다. <조성봉 영화감독 제공>

정부는 제주도민의 자존을 짓밟으며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일사천리로 강행하고 있다. 4・3으로 제주도민들을 학살하고, 이제는 43톤의 화약으로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고 있다. 제주4・3이 현재의 강정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강정이 4・3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자들이 있다.

▲ 김경훈 시인/제주작가회의
누가 강정을 4・3 아니라고 말하는가. 눈 못 감고 죽어간 영령들이 부릅뜬 눈으로 강정을 호곡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강정을 4・3 아니라고 말하는가. 4・3에서 평화와 인권을 배웠다는 이들이여. 인권이 낭자히 유린되고 평화가 처참히 깨지는데, 왜 강정은 4・3이 아니라고 하는가.

정부는 해군기지 설계 오류에 대한 재검증을 위해 일시적으로 공사를 중단하자는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도민사회의 의견을 일언지하에 묵살해버렸다. 그러고는 불법엄단 운운하는 케케묵은 위협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제주도의 자존은 바람에 날리는 구겨진 휴지처럼 비참하게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

국가안보라는 무소불의의 힘으로 제주도민들을 고착하고 억압하고 있다. 제주도의 천혜의 자원이나 도민들의 의견은 단지 쓰레기로 취급될 뿐이다. ‘우리도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우리를 벌레로 보지 말라!’는 강정 주민들의 절규는, ‘사건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다.’라는 4・3 당시의 미군정의 말에 묻혀 버린다.

그들이 보기에 4・3당시 제주도민들은 파묻어야 할 악성 전염병 보균자였다.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징그러운 해충이었다. 국책사업을 반대하는 강정주민들 또한 한 표 아쉽지 않은 3등 국민이자 귀찮고 성가신 티눈이나 다래끼 같은 존재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4・3당시에는 무조건 무차별 학살이 자행되었다. 지금 강정에서는 2만 원짜리 경범죄에 대해서도 체포 연행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구럼비에 들어갔다고 현행범 체포해서 달랑 2만원의 벌금을 매기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웃지 못 할 코미디다.

보라! 지금 강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을! 이 현재화 된 4・3의 현장을! 응원경찰, 통행금지, 해안봉쇄, 무차별 체포연행, 예비검속, 무수한 생명의 파괴와 학살, 그리하여 공동체와 제주도민의 자존이 파괴되고 있는 이 역사적 현실을! 제주도민의 피와 살과 뼈로 기초된 대한민국이 이제는 강정이라는 처녀 하나 제물로 상납하라는 이 강요된 국가주의의 참상을!

이렇게 불의의 권력이 폭력으로 억압해도 강정주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모든 양심세력들은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들을 저들은 소위 ‘외부세력’이라 폄훼하며 마치 주민들을 선동하는 ‘전문 시위꾼’으로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외부세력이야말로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이타적인 가치를 실천하려는 의로운 사람들이다. 의인義人들이다.

제주4・3의 광풍이 몰아치던 집단 광기 속에서도 무고한 희생을 막으려 온몸을 던졌던 의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을 막기 위해 힘썼던 독일인 ‘쉰들러’가 있었다면, 제주4·3사건 때에는 ‘김익렬 연대장’과 ‘문형순 경찰서장’이 있었다. 지금 강정에는 양윤모가 있다.

해군기지 건설공사를 막으려다 구속된 후 무려 71일의 단식을 결행했던 그. 이제 다시 구속된 이후 옥중에서 38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강정 구럼비바위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것이다. 옳지 않은 일을 우겨대는 것들에 맞서 목숨 건 창의倡義의 단식이다. 모든 생명을 위해 자신을 던져 그대로 역사가 되려는 것이다. 이 시대 야윈 의義의 부활을 위하여 스스로 야위며 바위가 되려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이라고 말하지 말라. 동시대 팔레스타인에서도 65일 동안 이어진 33세 청년 카데르 아드난의 단식투쟁이 이스라엘의 불법 구금관행에 경종을 울렸다. ‘카데르 아드난을 살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라며 수많은 이들이 지지단식에 돌입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카데르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강정은 역사적 현실이다. 눈앞에서 역사가 쌓여가고 있다. 우리의 족적이 그대로 역사가 된다면 먼 훗날, ‘강정은 평화의 진원지’라고 후손들은 또랑또랑 역사를 읽을 것이다. 그 옛날 제주4・3을 이제 평화라고 이름하는 것처럼.

그렇게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일을 해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형태의 4・3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역사적 현실을 살고 있으면서도 실천에 인색한 우리의 무력감을 벗기 위해, 또한 제주의 자존을 위해 무기한 릴레이 단식에 동참하자. 우선은 나부터 3월 19일부터 3월 25일까지 일주일 단식을 시작한다. 나를 이어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이 적게는 하루에서부터 많게는 일주일 이상 단식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이것은 옥중에서 고립적인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양윤모와 뜻을 함께 하기 위함이다. 구럼비가 죽으면 그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의 아메리카 인디언의 말, ‘미타쿠예 오야신’! 바로 그것이다. 제주도의 자존을 위하여 자강불패自彊不敗의 깃발을 들자. 어디로든 길이 막혀 온통 절망과 죽음뿐이던 그 4・3과는 달리 강정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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