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학생들은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삼삼오오 학생회관으로 모여들었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중앙자치기구들이 준비한 4ㆍ3 기행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오전 9시경, 학생회관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 끝에 도착한 첫 번째 행선지는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제주시 화북1동)이었다. 70여 호의 가구가 살던 평화롭던 마을은, 불시에 들이닥친 토벌대에 의해 초토화됐다. 지금은 과거에 얼마나 끔찍한 참변을 당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한적한 풍경이었다.

▲ 북촌리 너분숭이에서 학생들이 묵념하고 있다.
 
두 번째 행선지는 조천읍 북촌리 너분숭이. 넓은 팡이라는 뜻으로 ‘너분숭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애기무덤 20여 개가 안장돼 있다. 1949년 군인들에 의해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한 북촌리민들은 집단적으로 총살을 당했다. 널브러진 시체들 중 어른들의 시신은 후에 안장됐는데,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임시 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크기도 자그마한 돌무덤. 허무하게 죽어갔을 아이들을 떠올리며 몇몇 학생들은 무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낙선동성이었다. 1948년 선흘리가 초토화 작전으로 불타고, 인근 동굴이나 들판에 움막을 짓고 살던 마을 주민들은 은신했던 굴까지 잇따라 발각되면서 무차별적인 죽임을 당했다. 겨우 살아남은 몇몇 주민들은 1949년 봄 낙선동에 성을 쌓고 강제적인 집단 거주를 했다. 성을 쌓는 것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었다. 지금은 마치 문화유적처럼 남아 있는 낙선동성. 거기에는 당시 주민들이 흘려야 했을 땀과 눈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4ㆍ3 평화공원은 4ㆍ3사건 발발 이후 50여 년간 해원되지 못한 4ㆍ3 희생자들의 넋을 위령하고 4ㆍ3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조성됐다. 처음 들리는 학생들은 다양한 볼거리를 통해 4ㆍ3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고, 이미 와본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다시금 4ㆍ3의 상처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 참여했던 신지인(국어국문학과 1)씨는 “처음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무척 좋은 경험이었다”며 “다시 한 번 4ㆍ3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 뜻깊었다”고 말했다.
 
정준호 총학생회장은 “4ㆍ3에 대해 무지한 대학생들이 많아 매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아지는 것 같아 만족스럽고 감사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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