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라 국어교육 2

“성폭행당하지 않으려면 헤픈 여자(slut)처럼 입지 말라.”
 
캐나다에서 열린 안전교육에서의 한 경찰관의 발언이 발단이 되어 ‘슬럿워크(Slut Walk) 운동이 시작됏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대 성추행 사건이후 슬럿워크 1인 시위가 시작되었고 지난해 7월 16일 ‘잡년행동’이라는 이름으로 행사가 열렸다. 여성들이 과도하게 야한 옷을 입고 행진을 하는 슬럿워크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잘못된 인식에 대한 저항운동이다.
 
여성의 옷차림을 보고 성욕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성욕이 ‘성폭행’이라는 범죄로 나타날 때 그 책임은 여성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관점으로 이러한 사건들을 보고 있다. 성폭행은 야한 피해자의 옷차림, 피해자의 부주의가 주된 원인이고, 가해자가 순간적인 성욕을 참지 못해 일어난 실수라고 사건을 옹호하는 발언들이 그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야하게 입은 여성을 ‘싸게’보인다고, 그렇다고 성폭행 당할만 한 대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단지 옷차림으로 한 대상을 싸게 보인다고 타인이 판단할 근거와 기준은 없다. 또한 성폭행을 당할만 하다는 말은 피해자를 하위계층적인 객체로 전락시키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돈이 탐난다고 은행을 터는 행동이 정당화 되는 것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고 있다는 불편한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슬럿워크는 남성이라는 집단을 ‘적’으로 돌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성폭행은 가해자의 본능이 아닌 권력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성 억압적인 구조의 존재를 인정하고 개선해 나가자는데 취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슬럿워크는 일차적 슬로건인 “내 몸에 대해서 만질 권리가 없다”라는 말을 넘어서 성 소수자, 군대 성폭행 피해자 등의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권리를 주장한다. 슬럿워크를 단순히 ‘벗은 여자들의 행진’이 아니라 성에 대한 주체적 결정권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봐야할 것이다.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가해자도 인권이 있다며 옹호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비판과 피해자에 대한 물리적, 사회적 보호와 안전 보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옷차림이 야해서, 평소 행실이 문란해서 그래도 마땅하다는 비난은 피해자를 더욱 멍들게 할 뿐이며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과 관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성범죄는 사라지기 어렵다. 이제는 잘못된 성관념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때다.
 
성범죄에 대한 기사 댓글란에서 피해자의 부주의와 옷차림 등을 탓하는 댓글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슬럿워크 사진이 있다. 긴팔 긴바지를 입고 행진하는 그 여성이 들고 있는 피켓은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긴 바지에 스웨터를 입고 있었어. 그것도 내 잘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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