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피에타>에 등장하는 두 모자. ‘엄마’ 역의 조민수(좌),‘ 강도’ 역의 이정진(우).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고, 또 어디까지 선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은, 또는 선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베니스 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작품 <피에타>. 감상하고 난 뒤에 한없이 찝찝하고 꺼림칙하면서도, 무엇인가 쓴 여운이 계속해서 뇌리에 남았다. 영화 <피에타>는 지극히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싹트는 인간애,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와 맞물렸을 때 생겨나는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아로 30년을 살아온 강도(이정진 역)는 채무자의 돈을 무자비한 방법으로 갈취하고 다니며 삶을 연명한다. 그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자비도 없다. 그저 원금과 10배로 불린 이자를 받아내지 못하면, 손이라도 하나 잘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인간성이 완전히 상실돼 버린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반영한다.
 
조금의 희망도 구원도 찾아볼 수 없음직했던 극악의 환경 속에서, 놀랍게도 악인 그 자체였던 강도에게서 변화가 일었다. 30년 만에 나타난 엄마를 만나면서부터 인간애를 회복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너도 엄마가 있을 것 아냐!”라는 한에 섞인 채무자의 외침에도 콧방귀 한 번 끼고 말던 그가, 엄마를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까지도 마다치 않게 됐다. 어둡기만 한 사회 속에서 강도와 엄마 둘은 서로를 만나 서로를 통해 구원받고, 인간성을 되찾았다. 그 과정이 너무나 처절하고 서글펐다. 둘은 빛났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끝도 없이 어두웠기에.
 
극중 강도가 엄마(조민수 역)에게 묻던 장면이 있다. “돈이 뭐냐”고. 엄마는 대답했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지.” 인간 사회의 시작과 끝이 인간이 아닌 ‘돈’. 자본주의 앞에서, 인간 존재의 존엄은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다. 돈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나 마찬가지였다. 돈 대신 손 하나 내줘야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줘야 하는. 불편하지만,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는 우리 사회의 이면이기도 하다.
 
<피에타>가 제시하는 빈곤층의 생활상은 실로 비참하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져, 그만 눈을 돌리고만 싶고 외면하고 싶다. 그러나 실은 그런 삶도 있는 것이다. 빚을 다 갚지 못해 죽으러 가는 아저씨가 남긴 마지막 말 “죽음이 뭐야?”처럼, 삶과 죽음이 크게 다르지 않은, 아니 사느니 죽는 게 더 날 법한 삶도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도 악착같이 인간애를 간직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 애처로웠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자기 손으로 자신의 팔목을 잘라야만 하는 어린 가장의 모습. 한심하기만 한 남편인데도 끝까지 그를 버리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느 아내의 모습. 놀이공원에서 어린 아이마냥 순수하게 웃던 강도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엄마의 모습까지도.
 
영화 말미,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새벽길은 우리 사회에서 상처받는 이들의 끝나지 않을 고통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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