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사는 노래가 있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엔딩을 장식한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은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다시금 회상케 했다. 영화 ‘써니’의 메인 테마 음악 ‘써니’는 7080세대들에게 잊고 있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제주대신문>에서는 대학 구성원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 한 편씩을 가지고, 그 안에 깃든 그들의 애틋한 추억과 사연에 귀기울여 보았다.

 

음악 통해 ‘나이 듦의 미덕’ 깨달아 -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실렌치오」

▲ 고호성 교수
고호성(법학과) 교수에게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실렌치오(Silencio, 조용히 하라는 뜻)’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나이가 드는 것은 쓸쓸한 일입니다. 젊은 학생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여러분의 부모님들에게도 꽃다운 젊은 시절이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성공과 좌절도 있었고, 이제 나이가 들며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부모님을 나와 같은 하나의 인생, 하나의 삶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실렌치오」
내 뜰에는 꽃들이 잠들어 있네
글라디올라스와 장미와 흰 백합
그리고 깊은 슬픔에 잠긴 내 영혼
난 꽃들에게 내 아픔을 숨기고 싶네
                …………………
깨우지 마라 모두 잠들었네
글라디올라스와 흰 백합
내 슬픔을 꽃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내 눈물을 보면 죽어버릴 테니까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실렌치오」 중


쓸쓸한 감정이 반드시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고 교수는 이 노래를 통해 깨달았다고 한다. “슬프고도 아름다워라, 인생이여”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슬픈 것마저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면, 사람들의 모든 삶은 나름대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이 노래는 쿠바혁명으로 사교클럽에서의 음악생활이 중단된 후, 밑바닥에서 어렵게 생활하다 40여년이 지나 늙은 몸으로 다시 옛 동료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가사는 한없이 아름답고, 노래를 부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매는 참으로 그윽하더군요.”
 
그는 어느 날 야간 수업을 끝내고 피곤한 심정으로 무심코 TV를 틀었을 때 이 노래를 접하게 됐다고 한다. 그때 느꼈던 충격과 감동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노래도 초월일 수가 있구나, 생각했지요. 제가 느낀 감동을 전해주고 싶어, 지금 이 노래를 옛 친구들과 나누고 있어요. 페이스북을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짝사랑에 가슴앓이했던 추억 새록새록 - 델리 스파이스「고백」

▲ 고경하(좌)씨, 한혜원(우)씨
한혜원(26ㆍ국어국문학과 조교)씨와 고경하(26ㆍ철학과 조교)씨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을 들으며, 서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친목을 쌓았다.
 
“그때 둘 다 짝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우리는 이 노래를 들으며 함께 애닲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했죠.”
 
애끓는 짝사랑은 사춘기 시절 작지 않은 공간를 차지했다. 둘은 항상 함께 다니며 그에 대한 희노애락을 함께 나눴다.
 

▲ 델리 스파이스「고백」
중2 때까진 늘 첫째 줄에
겨우 160이 됐을 무렵
쓸만한 녀석들은 모두 다
이미 첫사랑 진행 중
                ……………
널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상처 입은 날들이 더 많아
모두가 즐거운 한 때에도
나는 늘 그곳에 없어

-델리 스파이스, 「고백」 중

 

“우리의 추억을 생각할 때면, 자연히 그 노래가 생각나더라고요. 어찌 보면 저희를 연결해 준 끈이기도 하잖아요.”
 
짝사랑은 결과적으로, 둘 다 잘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단다. 사랑보다 더 값진 우정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연애감정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다 추억의 일부분인 것 같아요. 연애감정보다 지금 더 기억에 남는 건, 그 감정을 교환하며 조잘조잘 얘기를 나누던 그 시절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최근 방영되며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이 노래가 OST로 삽입되면서 다시금 잊혀졌던 이 노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오랜만에 ‘고백’을 ‘듣노라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해요. 그 시절부터 이어진 우리들의 우정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랍니다.”

 

힘든 길, 혼자 가는 게 아님을 느껴 - 루시드 폴「국경의 밤」

▲ 황보희원 씨
황보희원(국어교육과 2)씨는 루시드폴의 ‘국경의 밤’을 들을 때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고3 시절 저는 의무적으로 12시 야간자율학습을 했어요. 물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죠. 저는 졸음을 참기 위해 CDP를 챙겨가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곤 했는데, 그때 들었던 노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가 ‘국경의 밤’이에요.”
 
12시 야자가 끝나면 학생들은 다들 셔틀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수능에 가까워질수록, 조잘대는 소리로 가득하던 버스 안의 분위기는 우울하게 바뀌었다. 어떤 학생은 영어단어를 외우기 위해 버스 안에서도 필사적이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학생도 있었다.
 
희원씨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그 당시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 풍경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했다.
 
 

▲ 루시드 폴「국경의 밤」
너를 떠나기 전에 고향 떠나기 전에
독서실 문틈 사이로 밀어넣은 네 결심
바라보는 것만큼 어쩔 수 없던 우리
다같이 무기력했던 우리 고3의 바다
………………
앞으로 돌진하는 내 현실
전투하듯 우리 사는 동안에도
조금도 바꾸지 못한 네 얼굴

 -루시드 폴,  「국경의 밤」 중

 

"‘아, 다들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말은 못해도 서로 다 힘든 상황이잖아요. 모두 같이 가는 길임을, 혼자 가는 길이 아님을 느끼면서, 저도 모르는 새 마음의 위안을 얻었죠.”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는 고3이라는 실타래로 연결된 공동의 기억을 더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그때의 우리들은 속상해하는 코드도, 위로받는 코드도 비슷했어요. 저에게 이 노래는 고3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떠오르는 그 공동의 기억 자체와 같아요.”
 
가만 생각해 보면 힘들었던 기억만 있던 것은 아닌 그때 그 시절. 서로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보내온 고3 시절을, 희원씨의 CDP 속 ‘국경의 밤’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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