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설 까지만 하더라도 눈이 수북히 쌓여 날씨가 제법 쌀쌀하더니 어느새 화창한 봄 날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쉴 세 없이 바뀐다. 그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내 나이도 어느덧 쉰이다. 세월이 이렇게도 빨랐던가…
그 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 그리고 즐거움이 항상 부대끼던 나의 삶은 ‘희로애락(喜怒哀樂)’ 그 자체였다. 생활에 치여, 살아가는 것에 바빠 내 할 일 제대로 못해보고 살아온 인생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내 아들 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동안의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지금 나에겐 큰 딸 정녀, 작은 딸 정은이, 막내아들 정석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자식이 없다. 다른 부모들도 다 그러하겠듯이 눈에 넣어 아프지 않은 것이 내 자식들이다.
자그마한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던 내 아이들이 어느덧 내 키를 훨씬 넘겨 대학생이 되고 그 아이들이 벌써 졸업을 한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스스로 ‘수능’이란 힘든 관문을 거치고 대학에 들어와 무사하게 졸업을 하는 내 딸을 보면 정말 기특할 따름이다.
이번에 졸업을 하는 막내딸 정은이는 큰 딸 정녀와 함께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쉽지 않은 시험공부에 힘이 들기도 했겠건만 전혀 내색 안하고 묵묵히 할 일을 해내는 내 딸들.
특히 둘째딸 정은이는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취업난 속에서 많이 헤매지 않고 취업을 하게 돼 부모로서 얼마나 자랑스럽고 다행인지 모른다.
명문대를 나와도 취직이 힘들다는 요즘 취업난은 대학 졸업생을 둔 부모로서는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대학 내내 열심히 공부하고 전공을 살렸건만 취직은 좀처럼 되지 않는 자식들을 보다 보면 부모 속은 시커멓게 탄다.
어디 맘 고생하는 것이 부모들뿐이랴? 당사자들은 오죽 할까? 내 딸 정은이도 시험을 합격하기 전에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젠 더 이상 학생은 아니고 어떻게든 취직을 해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하는데 시험에 떨어져서 취직이라도 못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을 거다.
우리 딸 애 말을 들어보면 요즘 대학생들에게 가장 걱정거리인 것은 ‘취업문제’라고 한다. 물론 졸업생을 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대학생들에게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린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서 몇 배는 더 힘든 모양이다.
어째서 우리 아들, 딸들이 다른 것도 아닌 ‘취업’이란 벽에 쌓여서 걱정을 해야 하는가. 대학생활을 성실히 마쳤건만 전공을 살리지도 못하고 엉뚱한 곳에 취업된다거나 아예 취업난에 허덕이는 내 딸 또래의 젊은이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보기에는 다들 예쁘고 밝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아들, 딸들인데…
졸업시즌인 이맘때 학부모들은 대학이란 곳을 떠나 ‘사회’에 낯선 걸음을 내딛는 아들, 딸들에 대한 격려와 축하로 숨돌릴 겨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취업문제로 숨돌릴 겨를이 없다.
이제 몇 년 뒤면 막내딸의 뒤를 이어 내 막내아들도 졸업생이 된다. 우리 아들이 졸업할 때쯤에는 내 아들의 취업 걱정 대신 ‘아들 졸업식 때 어떤 옷을 입고 갈까’ 하는 걱정을 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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