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하라

제주대학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ㆍ제주의소리와 함께 국제화 시민의식을 고취시키고 미래지향적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대학생 아카데미를 마련했습니다. 국내의 명강사를 초청해 매주 화요일 오후 국제교류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JDC 대학생 아카데미는 오는 12월 4일까지 총 13개 강좌가 열립니다. 학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최일구 / MBC 앵커
어릴 적 내 꿈은 소설가와 가수였다. 세 번째 꿈꿨던 것이 기자였다. 신문을 보는 데 알림에 ‘본사 아무개 기자가 워싱턴 기자로 발령 났다’는 기사를 읽고서 ‘기자가 된다면 해외 취재도 다니고 재미있겠다’며 막연하게 기자를 꿈꾸게 됐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총장께서 자기 꿈을 이야기 할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처음에 손들기가 쑥스러워 두 번째로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자가 꿈입니다’라고 말을 했다. 당시 내 생각을 말한 이유는 ‘처음 대학동기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최일구라는 녀석은 기자가 된다고 하더라’고 각인시키면서도 한 편으론 내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해서였다.
 
병역을 마치고, 4학년 2학기가 된 1985년부터 언론사 시험을 치렀다. 어느 곳 하나 합격하는 곳이 없었다. 그해 마지막 MBC에 최종합격해 보도국 기자로 입사했다. 기자가 되고 나서 ‘앵커도 한 번 해보자’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기자 중에서 열 명 정도를 추려 오디션을 봤다. 생방송이 제일 두려워 한 달 동안 홀로 연습을 했다. 2003년 주말 뉴스 앵커로 발탁됐다. 첫 날 방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 투표로 재신임을 받겠다는 중대발표가 있던 날인데 말을 더듬고 말았다. 뉴스를 진행하면서 방송사고가 많았다. 두 달 쯤 되니 안정이 됐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변화였다. ‘뉴스는 왜 변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딱딱하고 근엄했던 기존의 앵커 스타일을 깨고, 대화형 문장을 사용하고 통쾌한 논평을 가미해 새로운 앵커 스타일을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첫 번째는 ‘시청자에게 말을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보통 신문은 문어체, 방송은 구어체라고 한다. 그런데 뉴스를 진행하는 걸 보면 ‘다, 나, 까’로 끝나는 딱딱하고 근엄한 말을 사용한다.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이야기 할 때는 ‘그랬잖아요’라는 일상어를 많이 쓰는 법이다. 이 같은 형식 파괴는 뉴스에 관심이 없는 젊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중점을 둔 것은 ‘시청자와 공감하기’였다. 뉴스진행이 갖는 특징은 파격과 솔직, 통쾌 등으로 집약된다. 뉴스앵커는 근엄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친근한 대화체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멘트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4년 불량만두 파동이 났을 때 시장 골목에서 성실히 장사하는 손만두도 장사가 안됐다. 만두집 주인들도 자녀들을 키울 텐데 저렇게 장사가 안 되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만두 파동으로 손만두집들까지 휘청거립니다. 만두의 옥석이 가려지고 있으니 이제 만두 먹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저희도 저녁에 만두 시켜먹었습니다”는 멘트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세 번째는 ‘유머 있는 뉴스 전달하기’다. 지난 2010년 서울대공원을 탈출한 말레이 곰에 대한 소식을 전하다 재치 있는 멘트를 날렸다. “저는 말레이 곰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꾸 도망 다니지 말레이”. 최근까지도 포털 사이트에서 최일구 연관검색어로 ‘말레이 곰’이 붙을 정도로 회자됐다.
 
뉴스에서도 충분히 언어유희를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뉴스를 보면서 웃으면 왜 안 돼’냐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에 가면 3000원짜리 유머 책을 파는데 그것을 사 보는 게 취미다. 하지만  ‘뉴스가 장난이냐’는 비판부터 ‘이 정도 농담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반응 등 시청자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나의 좌우명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이다.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군자의 도리다’라는 공자의 말씀을 새기면서 언젠가는 시청자들이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긍정적으로 소통하자’이다. 나는 수많은 동물 중에서 돼지만큼 긍정적인 동물이 없다고 생각한다. ‘되지 되지’ 하면 안되는 게 없다.
 
사람들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 불통즉통 통즉불통(不通則痛 通則不痛)이라 하여 ‘기운의 소통이 정체되면 통증이 생기고, 소통이 잘되면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만큼 몸과 외부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신체가 그러하듯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소통을 잘해야 한다. 오늘날 사라져야 할 불통문화 세 가지로 ‘권위주의’, ‘유머 부재’, ‘남존여비’를 꼽을 수 있다.
 
20세기엔 수직형인 리더십이 통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따라와’ 이런 식이다. 21세기는 그렇지 않다. 리더를 따라갈 때 본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따른다. 앵커가 되면서 권위주의를 내려놓고자 했다. 부국장으로서, 뉴스 앵커로서의 권위에 순응했다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뿌잉뿌잉’ 애교를 선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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