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담겨 있는 창의성 끌어내기

제주대학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ㆍ제주의소리와 함께 국제화 시민의식을 고취시키고 미래지향적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대학생 아카데미를 마련했습니다. 국내의 명강사를 초청해 매주 화요일 오후 국제교류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JDC 대학생 아카데미는 오는 12월 4일까지 총 13개 강좌가 열립니다. 학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한명수 / SK커뮤니케이션즈 이사
옛 것을 볼 줄 알아야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에 나온 제품과 최신 제품의 디자인을 비교해 보면 20년 전에 쓰던 TV 리모컨과 최신의 스마트폰 모양이 비슷하다. 디터 람스의 오디오를 보라. 60년 전에 만든 디자인이다. 그러나 이것을 촌스럽다고 얘기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 패턴이 돌고 돌아 촌스러워졌다 세련됐다 또 새로워지는 법이다.
 
수십 년 전 과학기술 포스터는 기술을 눈에 보이게끔 형상화 하는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의 포스터는 기술을 감추고 인간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이 대세이다. 포스터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지만 그 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패턴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문제를 푸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전 세계 만화가들에게 기본서로 꼽히는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를 통해 삶의 패턴을 깨달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얕은 위기에 손을 놓는다. 어려움을 딛고 헤쳐 이겨내서 먹고 살만해지면 거기서 사람들은 멈춰버린다. 그러나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를 원하는 거다. 이것을 ‘거룩한 불만족(Holy discontent)’이라고 한다. 거룩한 불만족으로 인해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이야 말로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힘을 지닐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는 익숙함, 안도감이다. 사람들은 흔히 윤기가 흐르는 사과의 겉모습에 끌린다. 나 역시도 디자이너가 멋있어 보여서 이 일을 시작했다. 속살에 파고들어 씨앗까지 가기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인간의 게으름은 무섭다. ‘이 정도면 되겠지’하고 안도감이 들면 그만두고 만다.
 
틀은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 있지만 생각의 크기를 가둬놓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따라가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해 ‘말랑말랑 이론’을 생각해 냈다. 인간이 태어나던 때는 말랑말랑하다. 부모는 아이를 보면서 ‘뭐가 될까’, ‘어떻게 클까’ 궁금하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틀에 의해 견고해지면서 결국 로봇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해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의식이 있다. 대기업에서 창의성을 잃지 않으려면 뭔가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직원들의 성과를 칭찬할 때 책상 위에 올라서서 상장을 준다. 이같은 행동을 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난 1989년에 나온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인상 깊은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주인공인 로빈 윌리엄스가 책상에 올라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땐 책상 위에 올라가라. 사물을 다른 각도로 보라’고 학생들에게 조언한다. 두려움이 아무것도 못 보게 한다. ‘남들의 이목이 무서워서’, ‘속된 말로 얼굴 팔려서’ 높은 곳에서 보지 못하고 낮은데 머무르게 한다.
 
1997년부터 디자이너 일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딱 15년이 됐다. 30대 초반까지는 유명해지기 위해, 잘 살기 위해 무언가를 디자인했다. 매일 밤을 새고 기계처럼 일하며 허무함이란 게 밀려들었다. ‘대체 내가 하는 게 뭘까’라고 스스로 자문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일본 유명 가구디자이너의 인터뷰 기사가 나의 생각을 뒤바꿨다. 그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업을 ‘의자를 디자인 하는 것이 아니라 앉는 것을 디자인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앉는 것’과 ‘의자’는 틀이 다르다. “의자 한 번 만들어 볼래?” 듣는 순간 내가 봐왔던 의자 밖에 떠올리질 못한다. 그러나 앉는 것을 만들려고 하면 온갖 모양이 다 나오게 된다. 당시 웹디자인을 열심히 했었다. 레이어 고치고, 색깔 조합하고, 카피 문구를 넣는 일이 전부였다. 이 기사를 접한 후 나는 ‘웹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마음을 먹었다.
 
남들은 결과만을 놓고 평가를 내리지만 나는 내 작업의 정의를 다르게 내린다. 누구도 뺏어가지 못할 나만의 즐거움이다. ‘디자인 경영’이라는 단어가 싫다. 디자인 경영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 그런 식으로 일하면 누군가를 따라가게 돼 있다. 스스로 정의를 내리면 누군가가 평가를 해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질문이 많아야 한다. 익숙함, 편안함,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깨트리는 질문을 계속 해야 한다. 질문을 하다 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여기에 덧붙여 갖춰야 할 태도는 ‘탐구와 관찰’이다. 기본이 없으면 파격이라는 걸 할 수 없다.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스타일에 의한 스타일, 형식을 위한 형식을 고집한다면 가벼워진다. 그러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면 스타일은 알아서 따라온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탐구와 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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