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지 편집국장

우리들에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가 아닌 ‘지금’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고통과 비굴을 참고 견딜 필요는 없다. 바로 지금이 중요하다. 미래를 위해 노예로 살지 말고 지금 자유로운 주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 노예로 살면 영원히 노예로 사는 것이고, 지금 주인으로 살면 영원히 주인으로 사는 것이라고.”
 
이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강신주 저)이란 제목의 도서에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에 대해 나온 구절이다.  니체는 본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원회귀성에 대해 논했다. 그에 의하면, 생(生)은 원의 형상을 띠면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고, 피안의 생활에 이르는 것도, 환생(還生)하여 다음 세상에서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것도 모두 부정하고, 항상 동일한 것이 되풀이된다는 사상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현실의 삶에서 고뇌와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만큼은 충실하게 생활하는 데에 생의 자유와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이 책의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의 20대를 향해 니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20대는 사회의 강자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로 인해 20대들은 매일 힘들게 살고 있다. ‘고액대학등록금 사회’, ‘스펙경쟁 사회’, ‘학벌 사회’, ‘승자독식 사회’ 등이 바로 그 것이다.
 
이 가운데서 청년들의 경제적인 고통을 살펴보자. 많은 대학생들이 전공 및 취업공부에 매진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등록금’마련 때문이다. 대학생으로서 적지않은 대학 등록금은 학생들에게 대학 캠퍼스를 뒤로하고 아르바이트 가게로 안내한다.
 
한 학생은 “아르바이트 도중에 틈틈이 공부를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쉴 기회가 많지 않아 공부는커녕 그나마 남는 시간에 잠시 토익 책을 들여다보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공부를 해야 할 학생들이 그 시간에 대학 수업교재가 아닌 식당 메뉴판과 생활정보지를 손에 들어야 하다 보니 그 몸으로 학교 강의실에 가면 비몽사몽이 되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또다시 일터로 나서는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이 반복된다.
 
일부에서는 제주대의 등록금이 수도권 사립대와 비교해 높은 등록금이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주도민 1인당 개인 소득이 전국 평균에 비해 크게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대학 등록금이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일상을 논하는 자체도 지겨워진 세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일부의 기성세대와 정치권은 “많이 힘들지만 조금만 참고 버텨라, 조금만 더 희망을 가져라”하며 희망고문만 일삼고 있다.
 
그 진부한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20대들은 죽어가고 있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20대 사망원인 중 절반 이상이 자살이 차지한다고 나와 있다. 청년자살 문제를 전문가들은 사회불안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도 잘 버텨왔지만, 이제 우리 청년들은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청년 각자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문제에 직접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 밖에 없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면 행복은 오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할 때이다.
 
비단 등록금 문제만이 아니다. 그저 사회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직접 고쳐야하는 주체이다. 찾아보면 제주에도 청년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공감하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모임은 있다.
 
다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미래를 위해 노예로 살지 말고 지금 자유로운 주인의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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