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을 높여라

제주대학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ㆍ제주의소리와 함께 국제화 시민의식을 고취시키고 미래지향적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대학생 아카데미를 마련했습니다. 국내의 명강사를 초청해 매주 화요일 오후 국제교류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JDC 대학생 아카데미는 지난해 12월 4일까지 총 13개 강좌가 열렸습니다. 다음달부터 새롭게 여는 JDC 대학생 아카데미에 학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상고를 졸업한 후 대기업 재무팀에 취직해 10년을 일했다. 대기업 생활은 인생에서 기본을 배우는 시기였다. 모든 것이 정확한 숫자로 떨어져야 했다. 분명한 원인과 결과를 판단하고 사고하는 그런 것들이 몸에 배었다. 야무진 일솜씨로 회사 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10년마다 새롭게 인생을 디자인하겠다는 결심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바야흐로 벤처 열풍이 불던 때, 투자 컨설팅업에 발을 디뎠다. 투자결정과 인수합병 등 컨설팅 업무를 맡았다. 원칙대로 일을 해야 했던 대기업과 달리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세 번째 인생은 예기치 않게 ‘영화’로 기울었다. 투자컨설팅 고객이던 영화사와 인연이 돼 2000년대 중반 엔터테인먼트사 제작총괄본부장으로 일하게 됐다. 그러던 중 2008년 제작사 삼거리 픽쳐스를 차려 독립했다. 삼거리는 ‘놀거리’ ‘볼거리’ ‘재미 거리’ 등 세가지를 담고 있다. 영화는 간절함과 절박함, 순발력과 판단력이 종합적으로 갖춰지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나의 사고 자체를 전환해야 하는 일이기에 가장 힘든 10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영화계에 입문하고서 19편의 영화에 참여했지만 우리 회사를 알린 작품은 <도가니>와 <러브 픽션>이다.
 
개봉은 <도가니>보다 늦었지만 <러브 픽션>이 삼거리 픽쳐스의 창립작이나 다름없다. 영화 <러브 픽션>은 연애가 천편일률적으로 다뤄지는 것을 보며 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보자며 전계수 감독과 의기투합해 만든 작품이다. 당시 많은 영화 투자사들이 시나리오를 보고서 투자를 꺼렸다. 투자가 난항을 겪으면서 4년 반이나 영화 제작을 미뤘었다. 다행히 뜻이 맞는 투자사를 만나며 18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였지만 그동안 재정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번이나 제작이 무산되자 살던 아파트를 내놓고 아내와 3남매를 데리고 월세 단칸방으로 옮겨야 했다. 경제적으로도 심적이나 모든 상황이 최악에 치달았지만 다시 <도가니>를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집회에 거의 매일 나가던 ‘촛불 시민’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 무엇도 이 사회를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너에겐 영화가 있으니 희망이 있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40대에 들어서며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던 때였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우연히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읽었다. 당장 손에 쥔 돈 없이 <도가니> 판권을 살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집념’ 덕분이었다. 타 업체에서 1~2장짜리 기획서를 보냈을 때 구구절절 편지에 가까운 28장짜리 기획서를 보냈다. 공지영 작가가 만나자고 했다. 8장 계약서를 가지고 나갔다. 보통 판권을 살 때는 원작자에게 일시불로 비용을 지불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전체 금액의 20%를 계약금으로 드리고 두 달 반 후에 80%를 치르겠다고 제안하자 공 작가는 흔쾌히 승낙했다. 밑천보다 진심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판권을 샀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혹여 영화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몰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촬영에 들어갔다. 흥행을 떠나 이 영화만큼은 반드시 세상 밖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제작진 모두가 일심동체가 됐다. 그렇게 해서라도 진실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마케팅 비용이 없어 ‘입소문’에 기대야 했지만 반응은 그 것 이상이었다. 어느 순간 9시 뉴스에 나오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영화가 종영하기 전날 도가니법이 개정됐다.
 
이처럼 두 편의 영화가 흥행을 거둘 수 있었던 건 나의 ‘포기하지 않는 습관’ 때문이었다. 자신의 모든 인생 경험 중에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쓸데없다 여기지 말고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고졸이지만 어떤 장벽에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이 위기를 타고 넘으려 애썼다. 대기업과 벤처 기업에서 보냈던 20년이 무의미한 시기가 아니다. 대기업에서의 10년은 원칙과 기준을, 두 번째 10년에서 창조적인 활동과 근성을 배웠던 것이 세 번째 10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된다. 포기하는 사람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음으로만 그치지 말고 포기하지 않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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