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그 이후 나의 대학생활 이야기

▲ 강경식(경제학과 86학번)씨
사회에서 이름을 떨치며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처음 대학 입학 당시에는 모두 새내기였다. 그러나 새내기가 된 이후부터 그들이 펼쳐낸 대학생활에는 남들과 조금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이들의 대학생활을 돌아보며 대학생으로서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고민해 보자


강경식(경제학과 86학번)씨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으로 일하며 제주지역의 행복과 발전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대학에 입학한 건 아니었어요. 육지권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오게 된 거였거든요.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다 대학선배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대학생활이 즐거워지기 시작했죠.“
 
강씨는 1학년 때 선배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광주민주화운동, 군부독재체제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학년 2학기 때 과대표를 하고 과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시사동아리를 만들어 사회현상이나 철학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논의하기도 했다. 또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서클 소그룹에서 역사교육에 대한 수업을 벌이기도 했다.
 
“제가 1, 2학년일 때는 학생운동이 태동되기 시작한 때였어요. 초반에는 학교 내에서의 학생운동이 주를 이뤘죠. 어용총장 문제, 학생 권익 보장, 학자금 상승 저지 운동 같은 것들요. 6월에 민주항쟁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어요. 저도 중앙로에 가서 열심히 호원철폐 독재타도를 부르짖었죠.”
 
3학년 때는 경상대학의 학생회장이 돼 다른 단과대학들과 뭉쳐서 시위를 주도했다. 전두환ㆍ이순자 구속투쟁, 송악산 군사기지 저지운동 등을 벌였다. 4학년 때는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제총협(제주지역 총학생회협의회)의 사무국장을 맡기도 하고, 탑동 불법매립과 관련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렇듯 학생운동은 그의 대학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다.
 
“대학 졸업 이후 맥주회사, 호프집 사장, 전문건설협회 등 여러 직장에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사회운동을 계속했어요. 그러다 제가 속해있던 단체들이 힘을 많이 잃어서 해산을 했죠. 저는 직장을 그만두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강씨는 사회의 민주화와 제주지역의 발전을 위해 힘쓰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 정계에 입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2006년 한 번 고배를 마신 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도의원에 당선됐다.
 
“제가 내건 슬로건은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 어르신들이 공경받는 사회였어요.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죠. 무상급식, 친환경 급식, 학자금 이자 지원, 노인정 활성화, 도심지 텃밭 사업 등 수많은 조례를 발의했어요. 제주도가 사람ㆍ생명ㆍ자연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전되고, 도민 중심의 행복한 지역사회가 되도록 앞으로도 활동할 수 있는 나잇대까지 최선을 다해 일하려고 합니다.”
 
그를 이렇듯 제주사회의 발전을 위해 쉬지 않는 일꾼으로 만든 것은 대학시절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대학때 갖게 된 사회와 세상에 대한 관심이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것이다.
 
“우리 때는 사회적 관심을 많이 가지면서 대학생활을 보람되게, 다방면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보냈습니다. 요즘은 대학이 너무 취업 중심의 공부만 하는 곳, 직장의 도구가 된 것 같고 학생들도 거기에만 매몰돼서 안타까워요.”
 
그는 대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곳임을 강조한다.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진리뿐 아니라 한국사회와 제주사회, 세계사회의 각종 현상을 탐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가치관을 잘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동아리 활동이나 학과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신이 살아갈 미래의 방향을 잘 설정할 필요가 있어요. 다방면의 책도 많이 읽어두어야 해요.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소중한 과제를 성실히 해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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