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

▲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김광석의 불후의 명곡 ‘그날들’의 노랫말 중 한 부분이다. 우리는 이따금 우리가 저지른 어떤 일에 대해 사무치도록 후회하며, 그 일이 잊혀지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후회하는 일, 정말로 잊혀졌으면 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더욱 깊게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것 때문에 부질없이 아파하고, 일생 동안 그 아픔을 반복한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너무 큰 아픔과 상실감에 매몰된 나머지 잊고 싶은 기억 앞에 벽을 쌓아버리기도 한다. 아픈 기억을 완전히 가둬버린 채 왜곡된 기억을 창조해내고서, 그것을 마치 자신의 진짜 기억인 양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2010년 개봉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데니스 르헤인의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바탕으로 각색 제작된 작품이다. 연방보안관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가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들을 격리시킨 고립된 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환자 실종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섬을 방문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런데 병원의 의사, 간호사, 관계자들의 무언가 석연치 않은 증언과 행동으로 인해 수사는 예상 외로 쉽게 진척되지 않는다. 설상가상 폭풍이 불어닥쳐 테디와 함께 온 동료 척(마크 러팔로 역)은 섬에 고립되게 되고, 그들에게 괴이한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자기방어기제’ 또는 ‘자기합리화’. 영화는 자신 앞에 놓인 끔찍한 기억을 망각, 왜곡, 재창조하는 한 ‘정신병자’의 모습을 치밀한 계산속에서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때문에 그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는다). 잊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방어기제’를 통해 망각하고야 마는 인간의 처절한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내는 것이다. “괴물로 평생을 살겠나, 선량한 사람으로 죽겠나.” 자조하는 물음 속 그는 끝내 진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선량한 사람으로, 왜곡된 자아로 사는 것을 택한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다. 간혹 사람들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의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전쟁의 피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실연의 아픔 등. 그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으며, 그로 인한 아픔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감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리라. 여기 제주만 해도 4ㆍ3이라는 거대하고 끔찍한 비극을 체험한 사람 가운데 어느 한 명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누구나 잊고 싶다고 잊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에서처럼 방어기제로써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 다른 기억을 안고 사는 허위의 삶이 과연 맞는 삶일까?

우리의 삶은 아픔이 있기에 거듭나고, 아픔을 딛고서 성장하기에 가치가 있을 것이다. 글머리에 적은 ‘그날들’의 노랫말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끊임없이 아픔과 싸우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있기 때문은 아닐까. 좋은 것만, 아프지 않은 것만 기억하고 산다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그런 삶을 진실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으로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강호순 사건으로 살해당한 피해자의 오빠는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경찰이 됐다. 스포츠 선수 김연아는 끊임없는 육체적ㆍ정신적 고통과 싸워가며 마침내 피겨의 여왕이라는 최고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또 현재 최고령 위안부 할머니 김복득씨가 눈물로 증언한 증언록은 경남 모든 초중고의 정식 교육자료가 됐다.
 
어떻든 잊지 말아야 한다. 설령 그것이 너무나도 떨쳐버리고 싶은 큰 아픔일지언정 말이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다른 어떤 사람들은 아픔을 발판 삼아 새로운 길을 열고, 수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아픔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얻지 못하는 소중한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더불어 앞으로 닥쳐올지 모를 또 다른 아픔을 막아낼 수 있다. 아픈 기억, 그로 인한 상처의 진정한 극복은 망각이 아닌 승화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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