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신문은 지난 1월 13일부터 5일간 ‘평화의 섬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오키나와를 현지 취재했다. 오키나와의 비극적 숙명과 현재를 통해 제주도의 현실과 관련해 평화의 의미와 중요성을 되새기자는 취지다. 후텐마 기지, 카데나 공군기지, 사키마 미술관, 치비치리 가마, 안보가 보이는 언덕, 구 해군사령부, 히메유리 평화기념관, 평화기원자료관, 류큐대학 등 미군기지와 전적지를 방문했다. 이번 해외 기획이 ‘평화의 섬’에 대해 상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후텐마 기지는 미국의 동북아의 전략적 기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공군뿐만 아니라 해군기지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사키마 미술관 옥상에서 후텐마 기지를 볼 수 있다. 사진 왼쪽에는 전투기가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2차대전 후 동북아 전략적 기지로 활용
기지내 자급자족 가능… 미국이나 다름없어

오키나와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에메랄드 해변, 아름다운 자연경관, 따뜻한 기후 등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흔히 생각하는 만큼 좋은 부분만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의 중심지였고 현재는 아시아의 미국이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당시 일어난 오키나와 전쟁으로 폐허가 됐다. 또한 주민들의 다수는 전쟁으로 희생당했다. 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아닌 미국이 한동안 관리했다. 오키나와는 1972년에 일본으로 반환됐지만 미군기지는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는 카데나 기지와 후텐마 공군기지 등이 있다. 오키나와 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3만 7500여 명에 이른다. 미군기지는 오키나와의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군이 일으키는 범죄 등 부정적인 측면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먼저 후텐마 기지는 오키나와 혼도(본섬) 기노완 시에 위치하고 있다. 비행장 면적은 총 4.8㎢ 정도로 기노완 시 전체 면적의 약 25%에 달하고 있다. 기지 내에는 활주로와 관제탑, 해병대 기숙사와 교육의료센터 및 체육관 등이 갖춰져 있다.
 
미군은 태평양 전쟁 종료 후인 1953년 후텐마 기지 내 활주로를 2400m에서 2700m로 연장했다. 또 나이키 미사일(요격용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후텐마 기지를 동북아의 전략적 기지로 활용했다. 미군은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이후에도 비행장을 계속 운영했다. 현재 후텐마 기지는 미국 해군들과 군함이 주둔하고 있다. 이 해군과 군함들은 한국에서 한ㆍ미 연합연습에도 참여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사키마 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앞에 나무들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수시로 전투기가 이륙하고 착륙했다. 전투기가 내는 굉음들을 듣노라니 괜히 불안했다. 미군들에게는 훈련이지만 전시상황 같은 분위기라고 느껴졌다. 주민들은 자국 훈련도 아니기 때문에 더 불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데나 공군기지는 1943년 9월 구 일본 육군항공본부 북비행장(현재의 요미탄 비행장)과 함께 건설을 시작했고 1944년 9월에 구 일본군 비행장으로 개설됐다. 하지만 1945년 4월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은 즉시 기지를 점령해 미군 소유가 됐다.
 
1950년 6ㆍ25전쟁 이후 미국의 군사적 보급기지로 점점 규모가 커졌으며 월남전에서도 미국의 수송기지로 활용됐다. 1967년에는 2개의 활주로가 완성되는 등 극동지역의 미국의 중요한 군사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 기지는 현재 면적이 19.95㎢에 달하며 가데나정(町), 오키나와시(市), 우루마시(市), 요미탄촌(村), 온나촌(村) 2시, 1정, 2촌에 걸치고 있다. 기지는 군사적인 시설 외에 행정시설, 사법기관, 거주 기구 등이 따로 마련돼 있다. 거주 지구에는 유치원, 학교, 도서관, 야구장, 골프장, 영화관, 슈퍼마켓, 시추장 등이 완비돼 있다. 현재 거주 지구 내에는 미군과 미군 가족 등 약 9000명 이상 생활하고 있다. 시내로 나가지 않아도 자족적인 기능이 있어 군사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
 
가데나 공군기지는 미치노에끼 카데나 전망대를 통해 바라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기지는 후텐마 기지에 비해 매우 넓어 보였다. 기지 내에는 전차, 전투기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런데 굳이 전차가 오키나와 내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는 미국 내에 생산하고 있는 전쟁용품을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들은 주민들에게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다. 미군이 일으키는 성폭행 사건 등 다양한 범죄로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으며 전투기의 굉음 소리도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또 가데나 공군기지의 경우 면적의 90%가 사유지일 만큼 토지를 강제 수용한 부분도 있다. 기지 내에 땅은 주민들의 재산이지만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미군기지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하지만 미군기지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미군이 오키나와의 경제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다. 오키나와는 관광 수입이 가장 많지만 미군과 그들의 가족들의 소비도 경제에 한 몫하고 있다. 기지 근처에는 영어로 돼 있는 쇼핑몰이나 오락 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민들의 경제활동과도 연관이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 중 미군기지 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 기지가 이전할 경우 오키나와 경제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가 지주에게 미군기지의 토지사용료를 경작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매년 주고 있다. 때문에 다수의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 철수를 주장하지만 미군기지가 있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는 주민들도 많은 상황이다.
 
이와 함께 지역마다 미군기지에 대한 관심이 다르다.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대부분이 중부에 위치하고 있어 중부 지역 주민들은 미군기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남부와 북부 지역 주민은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자기 일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서다.
 
더불어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미군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군의 필요성을 못 느꼈지만 중국과 대치 관계가 되면서 오키나와를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생겨났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 본토에 대한 신뢰가 많지 않다. 오키나와 전 당시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을 지켜준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일부의 주민들은 미군이 필요하다는 근거를 중국에서 대고 있다.
 
물론 근래들어 조금씩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축소되고 있다. 냉전 시대가 종결되면서 예전처럼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병력을 많이 배치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10월에는 미국과 일본이 오키나와 주둔 미군 해병대 7천명을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미군기지로 속해 있다 반환된 땅들은 개발됐거나 진행 중이다. 사키마 미술관도 미군기지가 반환되면서 지어진 건물 중 하나다. 미군들도 예전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미군기지는 오키나와에 깊숙이 박혀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미군철수를 외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미군철수를 위해 적극적으로 시위하는 주민들의 상당수는 사회에서 은퇴한 노인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다음 세대들에게는 미군기지를 물려주기 싫다는 강력한 소망에서다.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는 자신들이 감수해야 될 몫이고 미래 세대에게는 평화를 물려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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